“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로마서 8:26)
페이지 정보
본문
* 약 10년 전쯤 기도에 관해서 쓴 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로마서 8:26)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 지가 30년이 넘었지만, 제 자신의 기도를 살펴볼 때 한심하게 생각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면서 헷갈리는 마음, 잡념을 가질 때가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것인지 나혼자의 독백인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인지 스스로의 생각인지 아니면 그 중간같은 것인지, 등 등., 기도에 대한 혼동이 가끔 제 마음을 괴롭힐 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사도바울이 “우리”란 표현을 썼으니까, 자신을 포함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기도할 때 헷갈릴 때가 많다란 의미로 이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뭏든, 사도바울같은 분도 기도가 어려운 것임을 표현했다는 사실에 제 자신도 위로를 받습니다.
아직까지 기도에 대해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면서도, 한가지 분명하게 기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나님 앞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모른다면, 차라리 자꾸 말을 하려기보다는 주님께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고 주셨고 또 주시기를 원하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주님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주님! 제가 감사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꼐서 제게 주시고저하는 말씀 혹은 해답은 무엇입니까?
물론, 주님께 질문을 한다고해서 그 분의 대답을 분명하게 들게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주님이 대답하셔도 우리가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알아 들어도 오해해서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대답을 안해주시는 것같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주님께 물어보고, 주님께서 내게 대답하는 내용이나, 내 스스로 물어보고 내가 생각한 답이 같은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어 보았을 떄와, ”내가 회개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 대답이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이것이 기도응답이냐 아니면 스스로의 생각이냐의 혼동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로 주님께 드려지고 받은 것이든 내 스스로 물어보고 생각한 것이든, 분명한 것은, 주님의 뜻에 따른 질문과 생각이란 점에서는 틀림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 기도하는 듯 하다가, 그냥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을 보며, 내가 기도하지 않고 뭐하고 있지라는 죄책감까지 가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 주님의 말씀과 뜻에 관한 것이라면 이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생각이지만, 단순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나의 생각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깨닫게되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스스로의 생각의 경로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든 주님의 음성을 통해서든 그 주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기도의 목적도 하나님을 통해서,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저하는 데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로마서 8:26)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 지가 30년이 넘었지만, 제 자신의 기도를 살펴볼 때 한심하게 생각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면서 헷갈리는 마음, 잡념을 가질 때가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것인지 나혼자의 독백인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인지 스스로의 생각인지 아니면 그 중간같은 것인지, 등 등., 기도에 대한 혼동이 가끔 제 마음을 괴롭힐 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사도바울이 “우리”란 표현을 썼으니까, 자신을 포함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기도할 때 헷갈릴 때가 많다란 의미로 이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뭏든, 사도바울같은 분도 기도가 어려운 것임을 표현했다는 사실에 제 자신도 위로를 받습니다.
아직까지 기도에 대해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면서도, 한가지 분명하게 기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나님 앞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모른다면, 차라리 자꾸 말을 하려기보다는 주님께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고 주셨고 또 주시기를 원하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주님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주님! 제가 감사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꼐서 제게 주시고저하는 말씀 혹은 해답은 무엇입니까?
물론, 주님께 질문을 한다고해서 그 분의 대답을 분명하게 들게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주님이 대답하셔도 우리가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알아 들어도 오해해서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대답을 안해주시는 것같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주님께 물어보고, 주님께서 내게 대답하는 내용이나, 내 스스로 물어보고 내가 생각한 답이 같은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어 보았을 떄와, ”내가 회개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 대답이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이것이 기도응답이냐 아니면 스스로의 생각이냐의 혼동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로 주님께 드려지고 받은 것이든 내 스스로 물어보고 생각한 것이든, 분명한 것은, 주님의 뜻에 따른 질문과 생각이란 점에서는 틀림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 기도하는 듯 하다가, 그냥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을 보며, 내가 기도하지 않고 뭐하고 있지라는 죄책감까지 가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 주님의 말씀과 뜻에 관한 것이라면 이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생각이지만, 단순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나의 생각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깨닫게되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스스로의 생각의 경로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든 주님의 음성을 통해서든 그 주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기도의 목적도 하나님을 통해서,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저하는 데 있을 테니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