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후 소감 (특별히 예수님을 닮아가는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교 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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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내가 전한 설교가 그렇지만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는 설교를 통해서 회중을 설득 시키고 확신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증거하는데 막상 설교가 끝나고 나면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할 내용을 설교했음을 깨닫는다.
오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라는 핵심구절을 통해 결국 이 구절의 뜻은 "경건의 훈련" (경건이란 말은 godliness로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닮는 훈련) 이란 말씀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고 나서 설교하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말이 내 마음을 때린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너는 그것을 그동안 왜 안했냐?"
그 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볼때, 회중이 설교를 듣고나서 변화된 생각과 확신을 갖고 행동까지 바뀌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회중을 불평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문제는 설교자 자신부터 자신이 전한 말씀에 충실치 못한 것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란 것을 깨닫는다. (사실 충실치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도 내 자신을 들여다 보면 내가 전한 말씀을 내가 실천하고 있는가란 진지한 질문보다는, 내 설교를 듣는 분들이 내 설교를 들으면서 하품하지 않고 한눈 팔지 않는 것에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혹은 은혜 받았습니다"란 말을 듣는 것에 좀 더 신경을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특별히 경건의 훈련에 관한 오늘의 말씀은, 내 자신의 삶이 전혀 오늘 내가 전한 말씀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에 마음에 죄책감 내지는 허탈함을 느낀다. 오늘도 사실은 주일 예배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Foxnews 그리고 항상 즐겨보는 시리아 내전과 이집트에 관한 유트브를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매주 설교를 한 날은 그 날 주일 저녁에 설교를 정리해서 교회 웹싸이트에 설교란에 실겠다는 결심까지 잊어버릴 뻔 했다.
다행히 기억을 하고 설교를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 설교의 내용과 내 삶의 내용의 동떨어진 부분, 특별히 설교를 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주제에 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진 자 처럼 전하지만 막상 내 삶 자체는 그런 확신과는 상관 없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특별히 오늘 전한 주제가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그 주제 (경건의 훈련)의 중요성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깨달은 대로 전하다 보니까, 그 중요성의 정도만큼 그렇지 못한 나 자신에 관한 허탈감을 느끼게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설교대로 실천해야겠다는 적어도 시도해야한다는 내 양심의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경건의 훈련을 행하는 그리스도를 닮는 훈련을 심각하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하는 내가 되고 교회 식구들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각 훈련 받을 분야를 잘 알고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초청해서라도 훈련을 제대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정말 내 자신이 먼저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삶고 그 것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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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라는 핵심구절을 통해 결국 이 구절의 뜻은 "경건의 훈련" (경건이란 말은 godliness로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닮는 훈련) 이란 말씀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고 나서 설교하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말이 내 마음을 때린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너는 그것을 그동안 왜 안했냐?"
그 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볼때, 회중이 설교를 듣고나서 변화된 생각과 확신을 갖고 행동까지 바뀌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회중을 불평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문제는 설교자 자신부터 자신이 전한 말씀에 충실치 못한 것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란 것을 깨닫는다. (사실 충실치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도 내 자신을 들여다 보면 내가 전한 말씀을 내가 실천하고 있는가란 진지한 질문보다는, 내 설교를 듣는 분들이 내 설교를 들으면서 하품하지 않고 한눈 팔지 않는 것에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혹은 은혜 받았습니다"란 말을 듣는 것에 좀 더 신경을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특별히 경건의 훈련에 관한 오늘의 말씀은, 내 자신의 삶이 전혀 오늘 내가 전한 말씀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에 마음에 죄책감 내지는 허탈함을 느낀다. 오늘도 사실은 주일 예배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Foxnews 그리고 항상 즐겨보는 시리아 내전과 이집트에 관한 유트브를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매주 설교를 한 날은 그 날 주일 저녁에 설교를 정리해서 교회 웹싸이트에 설교란에 실겠다는 결심까지 잊어버릴 뻔 했다.
다행히 기억을 하고 설교를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 설교의 내용과 내 삶의 내용의 동떨어진 부분, 특별히 설교를 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주제에 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진 자 처럼 전하지만 막상 내 삶 자체는 그런 확신과는 상관 없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특별히 오늘 전한 주제가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그 주제 (경건의 훈련)의 중요성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깨달은 대로 전하다 보니까, 그 중요성의 정도만큼 그렇지 못한 나 자신에 관한 허탈감을 느끼게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설교대로 실천해야겠다는 적어도 시도해야한다는 내 양심의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경건의 훈련을 행하는 그리스도를 닮는 훈련을 심각하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하는 내가 되고 교회 식구들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각 훈련 받을 분야를 잘 알고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초청해서라도 훈련을 제대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정말 내 자신이 먼저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삶고 그 것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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