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일: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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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의지적 행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지체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들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교회, 그리고 소그룹에 보내 주신 다른 지체들을 적극적으로, 계속적으로, 그리고 깊이 사랑해야 한다.
1.사랑은 명령이다.- 사랑하기로 하는 우리의 결단은 순종의 행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must do it!’ 한다고 말씀하신다(요일4:21-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And he has given us this command: Whoever loves God must also love his brother.).
그래서 사도 요한이 언제나 사랑과 순종을 동의어(Synonymous)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요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3-2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일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이1:6/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
진정한 사랑이란 좋은 생각(nice thoughts)이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느낌에 근거한다는 신화를 깨트려야 한다. 사랑은 학교 교정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낭만도 아니고, 상대방이 나와 똑같이 되기를 강요하는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지친 모습으로 아기의 침대로 달려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는 침몰하고 있는 배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구명보트의 자리를 포기하는 이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가 아닌, 오직 사랑하는 일을 선택해야할 뿐이다.
2.그래서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동체란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 마약 중독자, 마음이 상한 자..
사람들의 마음도 다 다르다- 맞지 않는다, 같이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알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 쉽게 잘 지낼 수 있고,
어떠한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른 생각과 필요를 가지고 각자가 다른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갈등들을 잘 극복하고 승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3.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가지 사랑해야 하는가? 그 기준이 무엇인가? -예수님
예수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희생적이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사랑이다.
그분의 사랑은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며,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다.
물론 주님의 기대는 너무 높아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가 없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함께 읽어보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서 ‘산다’는 표현대신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보자.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라’
목적이 이끄는 공동체의 성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큼만 사랑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사랑받을 만한 사람만 사랑하겠다고 해서도 안된다.
진정한 사랑을 위한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요일4:10,1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 sacrifice to take away our sin...since God loved us that much, we surely ought to love each other.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기대가 크신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존귀함, 우리의 능력을 높여 주시는지를 알게 된다.
주님과 함께 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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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 작성일
"서로 사랑하라"라는 주님의 명령은 일반적인 사랑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다른 자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순종하려면, 상호간에 예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성 즉 교회에 소속되어야함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 적이요, 의도적 희생적이요,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이셨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No matter what) 끝까지의 사랑이다.
주님께서 이런 사랑을 기억하고 믿고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교회가 탄생되도록 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믿는 공동체를 주시고 내가 그 공동체에 소속하게 하셔서 "서로"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허락하신 주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두고 두고 감사할 일이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항상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심지어 설교도 많이 했으면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항상 느끼고 있다.
이번 40일 Better Together 캠페인을 통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기를 소원한다.
우선 이번 주에 만나서 같이 교재를 읽기로 할당된 그룹끼리 서로 잘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을 잘해야겠다.
오히려 김문섭 성도님이 전화를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벌써 밤 11시라 오늘은 좀 글른 것 같지만, 연락을 못한 분들에게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라도 격려해야겠댜.
양에릭님의 댓글
양에릭 작성일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라’ (갈 2:20)
사랑의 기준과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이 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노요한님의 댓글
노요한 작성일
제2일에 우리조는 신용덕/희영 자매님 댁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참석인원은 노요한/영희, 신용덕/희영, 유승준, 그리고 신현승 형제님 총 6명이었습니다.
금주 목요일 저녁 7:15에 다시 저희 집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갖기로 하였고 그 사이에는 부부와 또는 시간이 허용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모두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차원 높은 사랑인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시고 기대하는 사랑이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인지 새롭게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특히 신현승형제님은 일단 참석하기를 거부하였는데 집에 돌아가 책을 읽어보곤 심경에 변화가 있어 다시 참석하기로 결단하였다고 합니다.
신용덕/희영 자매님은 더 이상 소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사랑을 베푸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단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좋은 나눔의 시간을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 작성일
day2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사랑은 의지적인 행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기로 결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지체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들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교회, 그리고 사랑방에 보내 주신 다른 지체들을 적극적으로, 계속적으로, 그리고 깊이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사랑하기로 결단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한다고 말씀하신다(요일4:21). 우리는 사도 요한이 사랑과 순종을 같은 의미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순종을 사랑과 연결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성도들의 하나님 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하나님 나라 사역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교회와 소그룹 내의 성도들의 영적인 하나 됨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요일3:11) 그리스도는 사랑이 좋은 생각이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느낌에 근거한다는 신화를 깨뜨리신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와 믿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보다 놓은 수준에서 사랑의 개념을 정의하신다. 사랑은 캠퍼스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낭만도 아니고, 상대방이 나와 똑같이 되기를 강요하는 관계도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지친 모습으로 아기의 침대로 달려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는 침몰하고 있는 배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구명보트의 자리를 포기하는 이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다.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이시다(롬5:8)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우리의 시간과 관심과 정력을 바쳐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보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인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가 아닌, 오직 사랑하는 일을 선택할 뿐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알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 쉽게 잘 지낼 수 있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절충안을 통해 어떠한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른 생각과 필요를 가지고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것을 아신다. 어떤 소그룹이든지 상처 입은자, 마약 중독자, 마음이 상한 자 등에 의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갈등들을 잘 극복하고 승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은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희생적이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때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며,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필요를 채워 주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은 너무 높아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가 없다. 오직 우리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충실히 적용할 때만 가능하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서 ‘산다’는 표현 대신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 보자. “이제는 내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라”
목적이 이끄는 공동체의 성도로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랑받을 만한 사람만 사랑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사랑을 위한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생각할 점 – 사랑은 의지적인 행동이다.
☆ 외울 말씀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 묵 상 일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