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iots of Fire 믿음의 사람 에릭 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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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리들은 중국선교사로서 사역하던 부모님에게서 중국에서 태어났다. 이제 영국에 살면서 육상을 하게된다. 여러해 동안의 육상훈련을 받은 뒤에, 1924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에 참가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를 향해 대서양을 건너가는 배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100m 달리기 예선 경주가 주일날로 (7월 6일) 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는 그 일정표를 알게되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을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영국의 황태자와 영국 올림픽위원회의 압력도 있었지만, 그는 그 경주에 참여할 것을 거부한다.
물론, 에릭 리들의 100m 출전포기 소식을 들은 영국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고 비난하였다.
에릭 리들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6일 주일에는 파리에 있는 스콧츠 교회에서 간증설교를 하였다. 그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조차도 하지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결국, 에릭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땃고, 400m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원래 400m 경주는 에릭이 참여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나, 같은 팀에 속했던 한 주자가 400m경주에 뛸 기회를 그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럼에도, 에릭은 400m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에 불과하였다. 예선에서 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같은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전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첫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등의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6 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rs me-I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성경에 말하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에릭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처음 200m는 내 힘으로 뛰었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에릭 리들은 고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후 "내가 받은 메달보다 더 위대한 영광의 메달이 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보장된 출세, 안정된 삶 등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떠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돕자 일본군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다. 에릭 리들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감옥에서 신앙 공동체가 생겼다.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지만 숨질 때 얼굴에서 빛이 났고, 찬양과 경배 속에서 인생을 마무리 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해 들은 삶들은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묻었다.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 결국 에릭 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마감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