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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훈련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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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성경에는 경건의 훈련이란 말을 "discipline yourself for the purpose of godliness"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닮기 (godliness)위한 목적으로 훈련받고 연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단련처럼 연습 혹은 훈련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실 때에  의도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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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진님의 댓글

no_profile 양미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육체의 단련과 같은 원리라는 말씀이신지요?
여기서 말하는 연습, 훈련은 극기훈련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그리고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할 때 어떻게 성령님께 의지하여 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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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질문 1: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육체의 단련과 같은 원리라는 말씀이신지요?

저는 Yes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도바울이 육체의 훈련과 비교해서 말씀했기 때문이지요.
육체의 훈련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어로 제자란 말 (disciple)은 discipline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자의 삶을 군사로, 운동선수로, 농부로 비유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hardworking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닮으라 (사랑과 용서, 용납 등 등)라고 명령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 (영적성숙)이 그냥 가만히 앉아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고 새각합니다.  우리들의 지속적인 순종이 필요할 것입니다.


양사모님의 2번 질문의 의도를 제가 파악 못하겠습니다.

질문 3: 그리고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할 때 어떻게 성령님께 의지하여 할 수 있는지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경건의 훈련이란 것은 결국 삶의 전 영역에서 성령님께 의존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우리 의지를 무시하면서 우리를 따르게하고 훈련시키는 분은 아닐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 분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 그 분에게 물어보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공부와 기도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의지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따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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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요한님의 댓글

no_profile 노요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경건의 훈련이란 (물론 말씀공부와 기도를 포함한)

실제 매일의 삶에서 나타나고 해야만 하는 주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닌가요?

물론 자기를 쳐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삶.

훈련과 동의라면 자기의지가 얼마나 필요한가요?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대로 자기의지가 있으면 안되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만 받아야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요?

만일 자기의지를 사용하여야 한다면 어디까지가 한계입니까?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성령님만 의지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실제로 자기 의지로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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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진님의 댓글

no_profile 양미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이해하기로는...
자기 의지는 성령께 순복하겠다는 결단을 하는데 까지만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단할 수 있는 힘도 없어 순종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도 많지만요.

그리고 실제로 성령님의 뜻을 행하는 힘은 내가 성령님의 컨트롤에 들어갔을 때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약 그 부분을 내 의지나 힘으로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고, 그 일의 크레딧과 영광은 당연히 나의 것이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부인하고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께 백기를 들며 굴복합니다.
그러나 용서 하기로 결단했다고 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생각을 바꾸려 해도 잠시 용서한 것 같지만 정말 잊은 듯이 용서할 수는, 그 사람을 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도...

이때 우리가 정말 성령님의 컨트롤 앞에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을 내어 드리면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새로운 힘과 새로운 desire를 주십니다. 반드시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일이 쉽고 자연스럽게 현실화 됩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용서하고 나면 그 용서는 나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분명히 압니다. 성령께서 맺으신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만할래야, 자기 의를 내세울래야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의 크레딧과 영광은 하나님께서 취하십니다.

우리가 애쓰기 전에 성령님을 좀 더 신뢰하고, 좀 더 기다리고, 좀 더 의존한다면... 성령께서 지금 나를 돕지 않으시면 나는 선을 원하기는 하나 행할 수는 없는 비참한 자라는 매달림이 있다면...
버젓이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 계시지만은 안을 것입니다.

만약 큐티나 기도를 하기 싫은 것을 참고 나를 이기며 결단하고 노력하여 실천한다면 다른 종교의 참선이나 금욕, 극기훈련...등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저의 질문입니다. (힘의 원천에 있어서 말이지요)

결국 실패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새로운 힘, 새로운 원함을 성령님께서 우리가 구할 때마다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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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의 의지와 성령님의 역사와의 관계를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성령님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라는 가르침이 오히려 혼동을 주는 것을 경험하기도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성령님의 역사와 성도들의 의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개의 것은 아니다란 생각을 갖고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내가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란 사실과
하나님께서 선택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이,  다른 표현이지만 별개의 것이 아니둣이 말입니다.

성경에는 단지 성령님에게 의존하라라는 명령보다는 구체적으로 (성령님의 시대를 묘사하는 신약성경에도)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많이 합니다.  용서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물론 그런 모든 명령들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자들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일을 너무 따져서 어디까지가 성령님에게 의존하고 아니고를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성령님께서 감정까지도 다스려주셔서 진정으로 용서하게하신다라는 것을 간증할 수 있지만, 또 반면에 감정이 따르지 않지만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더 성령님의 역사요 성령님을 의존하는 것이다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큐티나 기도를 하기 싫은 것을 참고 나를 이기며 결단하고 노력하여 실천한다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 이런 결단과 노력자체가 가능치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결단이기 때문에, 노력자체는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동기도 목적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겠지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참선이나, 금욕,극기훈련 등은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그 목적이나 동기에 있어서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비슷한 면도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로서의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가정이라고 해서 자녀들이 자동적으로 반듯하게 자라고, 불신자의 가정이라고 해서 다 잘못나가는 것이 아니듯이 (일반도덕적인 면에서 말이죠) 예수님을 믿는 가장이나, 불신자의 가장이나 부모됨에 관해서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그목적, 동기, 최종적인 결과는 다르겠지요.


물론 앞에서 보면 비슷하게 보여도, 뒤에서 보면 전적으로 다른 것이 되겠죠.
우리 신앙생활의 대부분이 앞에서 보면 우리가 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래서 때로 타종교와 별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뒤에서보면 주님의 손길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그들의 순종치 않고 회개치 않음에 있었음을 계속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제도 결국 순종치 않음 그리고 홰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볼 때의 우리의 문제이고 뒤에서 볼 때의 문제는 성령님께 의존치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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