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이의 신앙고백
페이지 정보
본문
약 두 달 전에 몽골에 사는 진영이가 이 곳을 방문하는 중에, 진영이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앞으로 대학은 어디로 갈 생각이냐라고 물어보니까, 진영이의 대답은 California에 있는 대학을 갈 계획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어느 특정한 대학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왜 California에 있는 대학에 다닐 생각이냐라고 물어보았더니, 진영이의 대답은 21세기교회 다녀야되기때문이라고 제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진영이의 대답을 너무 감사하게 기특하게 그리고 놀랍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 최목사님께 여쭈어 보았는데, 최목사님 내외분이 진영이에게 대학을 선정하는 기준을 교회중심으로 할 것을 따로 말씀하지 않았음에도 진영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하게된 것이었읍니다. 사실 진영이는 몽골에 있으면서도 자주 우리 교회 웹싸이트 (특별히 어린이들이 보는 란)에 자주 들어와서 글을 남기곤합니다. 그리고 진영이가 남긴 글 속에서 21세기교회에 대한 소속 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불행이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귀하게 생각하면서도 교회를 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말로는 귀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실지로 교회문제는 저들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권이 아님을 보게됩니다. 주님을 우선권으로 삼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우선권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할만합니다. 우선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 및 지도자들부터, 주님의 교회라고 진정으로 믿고 섬기는 지 아니면 자신들의 교회 혹은 사역지라고 섬기는 지 혼동을 주고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21세기교회가 주님의 교회요, 우리가 함께 이 세대에 지어나가야할 방주라는 의식을 갖고 삶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런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 저들을 사랑하며 아끼며 교육하며 섬김으로 저들이 그런 소속감을 가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진영이와 같은 고백이 있게되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교역자의 한사람으로서 책임을 전혀 감당치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다시 한번 일어서는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런 진영이의 대답을 너무 감사하게 기특하게 그리고 놀랍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 최목사님께 여쭈어 보았는데, 최목사님 내외분이 진영이에게 대학을 선정하는 기준을 교회중심으로 할 것을 따로 말씀하지 않았음에도 진영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하게된 것이었읍니다. 사실 진영이는 몽골에 있으면서도 자주 우리 교회 웹싸이트 (특별히 어린이들이 보는 란)에 자주 들어와서 글을 남기곤합니다. 그리고 진영이가 남긴 글 속에서 21세기교회에 대한 소속 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불행이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귀하게 생각하면서도 교회를 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말로는 귀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실지로 교회문제는 저들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권이 아님을 보게됩니다. 주님을 우선권으로 삼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우선권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할만합니다. 우선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 및 지도자들부터, 주님의 교회라고 진정으로 믿고 섬기는 지 아니면 자신들의 교회 혹은 사역지라고 섬기는 지 혼동을 주고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21세기교회가 주님의 교회요, 우리가 함께 이 세대에 지어나가야할 방주라는 의식을 갖고 삶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런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 저들을 사랑하며 아끼며 교육하며 섬김으로 저들이 그런 소속감을 가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진영이와 같은 고백이 있게되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교역자의 한사람으로서 책임을 전혀 감당치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다시 한번 일어서는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댓글목록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대화 때에 옆에 있었던 증인으로서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최목사님 가라사대: "누가 가르쳐 주었겠습니까?"
이상의 말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최목사님의 의도: "누가 그런것을 가르쳐주겠습니까? 진영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요..."
2. 박목사님의 해석: "아빠인 나(최목사님)말고 누가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겠습니까?"
한 가지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잘 동역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