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기대에 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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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의 다섯가지 특징 (워렌 위어스비씀- 번역: 박바나바)
4. 히브리서는 기대에 관한 책입니다.
히브리서의 강조점은 미래에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이 앞으로 올 세계 (2:5)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앞으로 올 세계란 주님과 함께 그 분의 성도들이 통치할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상속하신 (만유의 후사 1:2) 분이시며 또 우리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은 자들입니다. (9:15)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칭송을 받았던 족장들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미래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1:10-16, 26)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이방인이요 순례자여야할 것입니다. (11:3) 바로 이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 주위의 모든 것들을 흔드시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것을 놓고 세상 것에 의지하는 것을 멈추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앞으로 올 세상에 우리가 신경을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이말은 하늘에 속한 일에만 신경쓰고 세상에서는 전혀 쓸데 없는 삶을 살아도 된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말은 세상에 관해서는 긴장하지말고 혹은 차분하게 생각하고 (hang loose) 앞으로 올 세상을 염두에 두고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살기 시작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에 관한 이야기 이 두가지 다른 자세에 대해서 잘설명하고 있습니다. (창 13-14) 아브라함은 부자였기 때문에 자기 원하는 어느 곳에서든지 좋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종이었고 이방인이요 순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장막에 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롯은 순례자로서의 삶을 포기했고 소돔이란 사악한 도시로 옮겨가 살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까? 도시에 살고있던 롯이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아브라함보다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전쟁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를 구출해야만 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롯은 다시 그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창 19) 롯은 구원받은 자였지만 (벧후 2:7)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보다는 세상 것을 의존했습니다. 롯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의존하고 그런 것을 위해서 살다고 영원한 것을 박탈당한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순교를 당한 짐 엘리엇 (Jim Elliot)이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언급했습니다: “어차피 간직하지 못할 것을 주므로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을 얻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He is no fool to give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미래에 있게될 상급에 대한 약속이 있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경우에서 보게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결정이 내일의 상급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는, 앞으로 받게될 상급에 대한 기대가 우리가하는 결정의 중요한 동기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히 11:10)
모세도 상급의 보상을 생각하면서 이집트의 향락과 보물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11:26)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11:31,35) 미래 속에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세상과 육체가 주는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극한의 고뇌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이런 마음의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 (12:2)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이 세상이 오늘 너에게 약속하는 것을 위해서 살지말라! 하나님께서 너의 미래를 위해 약속하는 것을 위해 살라! 이 세상에서는 이방인이 되고 순례자가 되라!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살지말고 믿음으로 살라!”입니다.
히브리서는 응석받고 밥을 떠먹여 주어야하는 영적인 아기들이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5:11-14) 히브리서는 오히려 단단한 고기 같아서 씹고 맛을 보기위한 영적인 어금니가 필요한 그런 내용입니다. 히브리서의 강조점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일에 관한 것 (the “milk”)이 아니라, 지금 현재 주님께서 하늘에서 하고 계신 일 (the “meat” of the Word) 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행할 수 있게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은 또 그 분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훈련시키시는 위대한 목자이십니다.(13:20-21) 그 분은 그 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놀라운 일에 참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A.W. Tozer 박사님은 우리 각자는 자신의 세계를 선택한다고 말씀하곤 하였습니다.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맛보았고 장차 올 세계의 능력을 맛본자들입니다.(6:5) 이 사실은 우리에게 죄의 현 세상구조에 대해서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해야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올바른 세계를 선택했고 믿음을 가진 자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잘못된 세계를 선택했고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인 자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창 19:30-3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고 (역대하 20:7) 롯은 세상의 친구가 되었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롯은 구원을 받았지만 불가운데서 받은 것 처럼 받았고. (고전 3:15) 그의 상급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