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대한 바람직한 기독교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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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이지만 우리들의 자녀와의 대화에서 좋은 도움이 될것 같아서 이곳에 실렸습니다.
완전히 정독하셔서 내것으로 만든 다음 자녀들과 토론하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이태화
현대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인지,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치열한 이슈가 된 제(諸) 문제에 대해 능동적인 참여보다는 수동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동성애 문제는 나날이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데 반해 한국교회는 극단적인 정죄나 외면으로 일관해 왔다. 동성애는 일종의 문화 트렌드가 아니다. 인류의 생성 이래 계속되어 온 문제이다. 동성애는 주어지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인간의 문화유산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1) 동성애에 대한 문화비평적 이해 - 김종걸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2) 동성애, 새로운 문화로의 변신 - 이요나 목사/ 갈보리채플 서울교회
3) 동성애에 대한 바람직한 기독교적 접근 - 안명준 교수/ 평택대학교 조직신학
4)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처 - 이경직 교수/ 백석대학교 기독교윤리학
동성애에 대한 문제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의 혁명 시대이다. 또한 동성애(homosexuality)에 대한 문제로 뜨거운 담론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문제점과 신학적 대안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동성애는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몇 가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 신학적 비판
먼저 성경은 동성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경에 의하면 성적 활동은 결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서 결혼의 범주 안에서는 동성애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성경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결혼관은 무엇인가? 동성의 하나 됨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창조 질서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반박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동성애를 자유로운 성적 표현으로 주장하는 견해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는 무한정한 자유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두 번째로 동성애를 단순하게 사생활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서는 법과 사회가 단순한 사생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와 관련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 아직까지 동성애 성향이 유전된다는 확고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다만 동성애는 학습된 행동이라는 주장이 더 강하다. 설령 그런 경향이 유전된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네 번째로 포유동물도 동성애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행동 규범으로 볼 수 없다. 대부분 동물의 경우 동성애는 일시적인 것이며, 습관적이거나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동물은 이성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도 않다. 그런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의 규범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로 동성애자들이 동성애가 매춘, 마약, 알코올 중독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학적, 범죄학적, 통계학적 그리고 윤리학적인 근거를 전혀 갖지 못한다. 물론 극소수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삶은 올바르게 모범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볼 때도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이성간의 사랑과 동등하게 두지 않는다.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통해 유지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모든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가 동성애를 죄로 보고 있다.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성경 해석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려고 했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며 생식과 관련하여 결혼의 제도에 맞지 않는다.
2) 동성애에 있어서 자유의지와 책임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의 의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아담의 의지가 죄로 물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은 실패로 끝났다. 인간의 자유는 무한정한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과 그 말씀 안에서의 자유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는 지나친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신다. 하나님이 아담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물었던 것처럼 오늘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도 종말에 재판하실 것이다.
3) 세속 문화에 대한 변혁적 신학
아퀴나스는 동성애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며 출산과 관련된 성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동성애를 반대한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있는 곳에는 사회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한다. 크리스천도 반대해야 한다. 단, 동성애를 병으로 보지 말고 도덕적인 악으로 보아야 한다. 바울이 살던 당시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정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서는 바울이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순리와 역리라는 당시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가 인정하고 죄로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죄악으로 선언해야 한다. 기독교는 세속의 문화에 영향을 주어 잘못된 사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 없는 사랑과 관용을 통하여 스스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파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위대한 사건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전체의 흐름을 통해 동성애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죄악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위반하면 그것은 죄악이다.
4) 성의 신학
우리는 인간을 몸과 영혼의 연합체로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시켜서 성을 이해해야 한다. 성은 거룩한 것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다. 성 도덕의 핵심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성적 연합을 고안하셨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란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한 몸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 완전한 성적 친밀감인 성적 결합을 사용하신다(고전 6:16). 앤드류 그릴리(Andrew Greeley)가 쓴 《신실한 매력(Faithful Attraction)》에 따르면, 결혼 전에 성관계 경험이 많을수록 결혼 후 외도를 더 잘하고, 결혼을 통한 최상의 성 관계를 누리기가 더욱 힘들며, 결혼에 대해 만족하거나 행복하기도 더 힘들다고 주장한다.
5) 동성애와 창조 세계
동성애자들의 주장처럼 세계가 움직인다면 창조 세계에 많은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사회의 유지와 보존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문화적 사명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동성애자들의 삶의 양식은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존 방식은 인공적인 변형을 통하여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며 생태계의 조화를 깨뜨리는 파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파괴된 인간을 회복하시고, 창조 세계에서 왜곡된 문화에 사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셨다. 바로 동성애는 이런 구속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지 않는 인간의 부패한 문화 현상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본 대안들
동성애가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배타적으로 원수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신학적 대안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1) 동성애에 대한 바른 신학의 정립과 교육
동성애는 주로 어릴 적 경험과 환경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본다. 특히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부모에 의해서 학대를 심하게 받은 자들이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교육시켜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동성애 방지를 위하여 크리스천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성의 정체성에 대한 지혜로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조기 교육을 통하여 동성애가 죄악임을 지혜롭게 그들의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주장하는 것에 타협하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
동성애에도 역시 책임이 따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동성애에서 사랑의 행위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사랑은 무제한적 자유 속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거룩성과 책임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이 주로 성을 즐기는 문화로 퇴폐화시킨 점을 비판하면서, 성의 고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신비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동성애가 성경에 위배된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한 청소년 교육이 시급하다. 모방 심리와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에 대한 성경적 성 윤리의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소보다도 후천적·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크리스천의 교육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성애 충동을 승화시키는 데에는 조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전도를 위한 인권의 존중과 사랑의 실천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성애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물론 동성애자들도 자신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은 그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서 전도와 사랑의 대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크리스천의 마음이 다소 냉혹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예로 뉴욕시에 있는 어느 일반 병원에 근무하는 크리스천 간부 회원들이 AIDS가 진행되고 있는 게이들과의 접촉을 꺼린다는 연구가 나왔다. 크리스천들은 동성애 공포증이나 혐오(homophobia)를 가져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핍박한 주요 주체가 기독교인이라고 인식하고 이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성경의 진리로 설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지나친 감정적 증오나 폭력적 방법은 전도의 문을 막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대한 기준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서 근거를 찾아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영역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또한 아담의 타락으로 순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아담의 후손이며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들도 회개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지나친 감정적인 대응 또는 그들을 혐오스런 동물로 취급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못하다. 예수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증오나 혐오를 버리고,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성령의 의한 그리스도의 따스한 사랑과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이 전도의 대상임을 잊지 말자. 기독교 공동체는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이들을 인격적으로 받아 주는 사역이 필요하다.
3) 동성애자들을 위한 실질적 도움의 필요성
동성애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라는 배타적 행위는 그들을 전도하는 데 큰 도움이 못된다. 신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의학적인 검증도 깊이 논의되어야 한다. 과연 동성애는 유전적인 잘못으로 나타나는 병인지, 그런 경우에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동성애자들에게 성경에 근거하여 올바르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자신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도움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크리스천 의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크리스천 사회학자들이 함께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과제는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적인 작업이다.
즉 전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들을 향해 단순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대안 준비가 요구된다. 가령 동성애자들의 치료를 위한 상담소라든지 병원이라든지, 또는 그들이 동성애를 벗어나서 이성애로 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시행이 가능한 전문기관을 만들고 그들을 지도할 사람들을 교육시킬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교회가 전체적으로 연합하고 희생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이런 실질적 도움에 있어 한국교회와 기독교 학교 그리고 기독교 단체의 의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성경은 죄와 죄인에 대하여 분명한 교훈을 준다. 죄를 알려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심판과 정죄의 역할만 강조하고, 회개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회복에 대한 복음이 없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은 동성애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죄한다. 오늘날 세상의 문화적 현상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 있게 우리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준다. 동성애에 대한 동정은 많은 곳에서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점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삶의 양식으로, 진화한 문화의 현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성경은 모든 것들의 기초가 된다. 성경의 많은 저자들을 비롯해서 예수께서는 성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즉 성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결혼을 통하여 성스럽게, 책임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성경적 설득과 관심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이 바른 교육을 받고 참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도 죄인이었으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왔듯이,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기에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끊임없는 돌봄을 실질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회는 그들을 향한 사랑의 설득을 통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달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적 모임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신학자들과 상담자들의 정기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교회는 그들을 위한 삶의 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바른 성에 대한 훈련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게 도울 필요가 있다.
완전히 정독하셔서 내것으로 만든 다음 자녀들과 토론하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이태화
현대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인지,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치열한 이슈가 된 제(諸) 문제에 대해 능동적인 참여보다는 수동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동성애 문제는 나날이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데 반해 한국교회는 극단적인 정죄나 외면으로 일관해 왔다. 동성애는 일종의 문화 트렌드가 아니다. 인류의 생성 이래 계속되어 온 문제이다. 동성애는 주어지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인간의 문화유산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1) 동성애에 대한 문화비평적 이해 - 김종걸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2) 동성애, 새로운 문화로의 변신 - 이요나 목사/ 갈보리채플 서울교회
3) 동성애에 대한 바람직한 기독교적 접근 - 안명준 교수/ 평택대학교 조직신학
4)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처 - 이경직 교수/ 백석대학교 기독교윤리학
동성애에 대한 문제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의 혁명 시대이다. 또한 동성애(homosexuality)에 대한 문제로 뜨거운 담론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문제점과 신학적 대안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동성애는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몇 가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 신학적 비판
먼저 성경은 동성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경에 의하면 성적 활동은 결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서 결혼의 범주 안에서는 동성애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성경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결혼관은 무엇인가? 동성의 하나 됨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창조 질서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반박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동성애를 자유로운 성적 표현으로 주장하는 견해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는 무한정한 자유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두 번째로 동성애를 단순하게 사생활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서는 법과 사회가 단순한 사생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와 관련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 아직까지 동성애 성향이 유전된다는 확고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다만 동성애는 학습된 행동이라는 주장이 더 강하다. 설령 그런 경향이 유전된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네 번째로 포유동물도 동성애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행동 규범으로 볼 수 없다. 대부분 동물의 경우 동성애는 일시적인 것이며, 습관적이거나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동물은 이성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도 않다. 그런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의 규범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로 동성애자들이 동성애가 매춘, 마약, 알코올 중독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학적, 범죄학적, 통계학적 그리고 윤리학적인 근거를 전혀 갖지 못한다. 물론 극소수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삶은 올바르게 모범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볼 때도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이성간의 사랑과 동등하게 두지 않는다.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통해 유지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모든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가 동성애를 죄로 보고 있다.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성경 해석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려고 했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며 생식과 관련하여 결혼의 제도에 맞지 않는다.
2) 동성애에 있어서 자유의지와 책임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의 의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아담의 의지가 죄로 물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은 실패로 끝났다. 인간의 자유는 무한정한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과 그 말씀 안에서의 자유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는 지나친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신다. 하나님이 아담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물었던 것처럼 오늘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도 종말에 재판하실 것이다.
3) 세속 문화에 대한 변혁적 신학
아퀴나스는 동성애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며 출산과 관련된 성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동성애를 반대한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있는 곳에는 사회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한다. 크리스천도 반대해야 한다. 단, 동성애를 병으로 보지 말고 도덕적인 악으로 보아야 한다. 바울이 살던 당시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정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서는 바울이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순리와 역리라는 당시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가 인정하고 죄로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죄악으로 선언해야 한다. 기독교는 세속의 문화에 영향을 주어 잘못된 사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 없는 사랑과 관용을 통하여 스스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파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위대한 사건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전체의 흐름을 통해 동성애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죄악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위반하면 그것은 죄악이다.
4) 성의 신학
우리는 인간을 몸과 영혼의 연합체로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시켜서 성을 이해해야 한다. 성은 거룩한 것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다. 성 도덕의 핵심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성적 연합을 고안하셨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란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한 몸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 완전한 성적 친밀감인 성적 결합을 사용하신다(고전 6:16). 앤드류 그릴리(Andrew Greeley)가 쓴 《신실한 매력(Faithful Attraction)》에 따르면, 결혼 전에 성관계 경험이 많을수록 결혼 후 외도를 더 잘하고, 결혼을 통한 최상의 성 관계를 누리기가 더욱 힘들며, 결혼에 대해 만족하거나 행복하기도 더 힘들다고 주장한다.
5) 동성애와 창조 세계
동성애자들의 주장처럼 세계가 움직인다면 창조 세계에 많은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사회의 유지와 보존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문화적 사명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동성애자들의 삶의 양식은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존 방식은 인공적인 변형을 통하여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며 생태계의 조화를 깨뜨리는 파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파괴된 인간을 회복하시고, 창조 세계에서 왜곡된 문화에 사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셨다. 바로 동성애는 이런 구속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지 않는 인간의 부패한 문화 현상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본 대안들
동성애가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배타적으로 원수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신학적 대안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1) 동성애에 대한 바른 신학의 정립과 교육
동성애는 주로 어릴 적 경험과 환경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본다. 특히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부모에 의해서 학대를 심하게 받은 자들이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교육시켜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동성애 방지를 위하여 크리스천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성의 정체성에 대한 지혜로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조기 교육을 통하여 동성애가 죄악임을 지혜롭게 그들의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주장하는 것에 타협하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
동성애에도 역시 책임이 따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동성애에서 사랑의 행위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사랑은 무제한적 자유 속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거룩성과 책임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이 주로 성을 즐기는 문화로 퇴폐화시킨 점을 비판하면서, 성의 고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신비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동성애가 성경에 위배된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한 청소년 교육이 시급하다. 모방 심리와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에 대한 성경적 성 윤리의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소보다도 후천적·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크리스천의 교육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성애 충동을 승화시키는 데에는 조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전도를 위한 인권의 존중과 사랑의 실천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성애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물론 동성애자들도 자신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은 그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서 전도와 사랑의 대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크리스천의 마음이 다소 냉혹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예로 뉴욕시에 있는 어느 일반 병원에 근무하는 크리스천 간부 회원들이 AIDS가 진행되고 있는 게이들과의 접촉을 꺼린다는 연구가 나왔다. 크리스천들은 동성애 공포증이나 혐오(homophobia)를 가져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핍박한 주요 주체가 기독교인이라고 인식하고 이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성경의 진리로 설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지나친 감정적 증오나 폭력적 방법은 전도의 문을 막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대한 기준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서 근거를 찾아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영역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또한 아담의 타락으로 순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아담의 후손이며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들도 회개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지나친 감정적인 대응 또는 그들을 혐오스런 동물로 취급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못하다. 예수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증오나 혐오를 버리고,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 성령의 의한 그리스도의 따스한 사랑과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이 전도의 대상임을 잊지 말자. 기독교 공동체는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이들을 인격적으로 받아 주는 사역이 필요하다.
3) 동성애자들을 위한 실질적 도움의 필요성
동성애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라는 배타적 행위는 그들을 전도하는 데 큰 도움이 못된다. 신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의학적인 검증도 깊이 논의되어야 한다. 과연 동성애는 유전적인 잘못으로 나타나는 병인지, 그런 경우에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동성애자들에게 성경에 근거하여 올바르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자신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도움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크리스천 의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크리스천 사회학자들이 함께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과제는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적인 작업이다.
즉 전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들을 향해 단순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대안 준비가 요구된다. 가령 동성애자들의 치료를 위한 상담소라든지 병원이라든지, 또는 그들이 동성애를 벗어나서 이성애로 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시행이 가능한 전문기관을 만들고 그들을 지도할 사람들을 교육시킬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교회가 전체적으로 연합하고 희생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이런 실질적 도움에 있어 한국교회와 기독교 학교 그리고 기독교 단체의 의지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성경은 죄와 죄인에 대하여 분명한 교훈을 준다. 죄를 알려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심판과 정죄의 역할만 강조하고, 회개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회복에 대한 복음이 없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은 동성애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죄한다. 오늘날 세상의 문화적 현상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 있게 우리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준다. 동성애에 대한 동정은 많은 곳에서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점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삶의 양식으로, 진화한 문화의 현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성경은 모든 것들의 기초가 된다. 성경의 많은 저자들을 비롯해서 예수께서는 성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즉 성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결혼을 통하여 성스럽게, 책임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성경적 설득과 관심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이 바른 교육을 받고 참된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도 죄인이었으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왔듯이,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기에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끊임없는 돌봄을 실질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회는 그들을 향한 사랑의 설득을 통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달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적 모임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신학자들과 상담자들의 정기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교회는 그들을 위한 삶의 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바른 성에 대한 훈련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게 도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