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에 대한 깨달음과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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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저녁 섬김이란 주제로 말씀하신 노요한 목자님의 강의가 단지 성경말씀을 설명한 강의 였다면 또 하나의 좋은 강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통해서 느끼고 경험한 섬김으로 인한 변화 그의 섬김의 삶에 대한 간증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의 삶을 가까이서 경험한 우리들이 그 분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섬기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섬김에 대한 강의가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섬김에 대해서 가르치시기만하고, 실지로 죽기까지 순종하고 또 섬기는 본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분의 삶을 본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의 삶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그 흔적조차 없어진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나 자신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모습을 볼 때 과연 섬기는 자들로 존재하며 이런 섬김에 대한 간증을 후대에 남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목사“란 직분을 섬김의 자리로 알기보다는 존경받고 섬김을 받는 자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나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직분들이 그런 섬김의 자리 보다는 섬김을 받는 자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나의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가 그리고 나의 경건생활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나의 영광을 추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솔직히, 그렇게까지 내가 타락했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그러나 섬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나의 간증이 있는 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네 앞으로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마도 어제 우리 모두에게 생각하도록 도전이 된 선언 들중에 하나는 “현재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섬기라”라는 말씀이었을 것이었습니다. 항상 섬김의 때를 무엇인가 조건이 충족될 미래적인 것으로 미루어오던 우리들에게 우리가 현재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하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재주, 기술, 사업, 지식, 재산, 시간, 건강 이런 모든 것이 현재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섬김의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현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업, 사업체, 남편, 부인, 자녀, 친구, 이웃 이런 모든 자들이 섬김의 대상이란 것또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어제의 강의를 다시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도전받은 생각중에 하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교리적 지식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지식이 없는 자들일지라도 감당해야할 책임을 감당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가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자신들이 섬겨야할 대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가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믿음 좋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오래할 수록 세상에서 섬길 대상이 적어지는 현상을 보게됩니다.
자신들의 교리적인 아집에 갖혀서, 성전에서만 봉사한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나역시 섬김의 장과 대상을 너무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배우고 쌓은 신앙적인 지식들이 세상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게되기 보다는 경계하고 정죄하고 멀리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게되는 경향은 없는 것인지..
이런 의미에서 요즈음, 양전도사님이 요즈음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부근에 청소를 하게한다든지 또, 중등부 학생들의 삶과 그 부모들의 삶을 연결시켜서 섬김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그의 안목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다는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가정과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도전받고 생각한 외적인 과제라 한다면.. 아직 우선 시급하게 감당해야할 내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이 내적인 사역에서 열매를 못보고 외적인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도 문제겠고요.
우선 제게 가장 다급한 섬김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이웃이요 섬김의 대상인 교회의 삶에서만이라도 봉사를 제대로 해보려고)
어제 노목자님께서 기도로 섬기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우리 교회식구들을 위한 기도만큼만 그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선 교회식구들을 위해서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 나의 삶을 고백하며 회개하고 매일 교회식구들을 위해 철저히 기도할 것을 결단해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인사에 관한 것입니다. 인사는 상대방이 귀한 분이란 것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표시인데, 인사조차 제대로 안하면서 상대방을 섬기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듭니다. 우선 큰 섬김은 못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이고 적은 섬김인 인사하는 것을, 저부터, 그리고 모든 교회식구들끼리 인사를 철저히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인사하는 것을 철저히 가르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됩니다. 어린이이들로 부터 가장 연세가 많은 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사를 화끈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섬겨야할 대상 한 사람을 든다면 (두사람 들겠습니다.)
제 아내와 불신자인 제 친구 홍태란 사람입니다. 잘섬겨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돕겠습니다.
섬김에 대해서 가르치시기만하고, 실지로 죽기까지 순종하고 또 섬기는 본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분의 삶을 본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의 삶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그 흔적조차 없어진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나 자신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모습을 볼 때 과연 섬기는 자들로 존재하며 이런 섬김에 대한 간증을 후대에 남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목사“란 직분을 섬김의 자리로 알기보다는 존경받고 섬김을 받는 자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나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직분들이 그런 섬김의 자리 보다는 섬김을 받는 자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나의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가 그리고 나의 경건생활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나의 영광을 추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솔직히, 그렇게까지 내가 타락했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그러나 섬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나의 간증이 있는 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네 앞으로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마도 어제 우리 모두에게 생각하도록 도전이 된 선언 들중에 하나는 “현재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섬기라”라는 말씀이었을 것이었습니다. 항상 섬김의 때를 무엇인가 조건이 충족될 미래적인 것으로 미루어오던 우리들에게 우리가 현재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하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재주, 기술, 사업, 지식, 재산, 시간, 건강 이런 모든 것이 현재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섬김의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현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업, 사업체, 남편, 부인, 자녀, 친구, 이웃 이런 모든 자들이 섬김의 대상이란 것또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어제의 강의를 다시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도전받은 생각중에 하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교리적 지식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지식이 없는 자들일지라도 감당해야할 책임을 감당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가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자신들이 섬겨야할 대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가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믿음 좋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오래할 수록 세상에서 섬길 대상이 적어지는 현상을 보게됩니다.
자신들의 교리적인 아집에 갖혀서, 성전에서만 봉사한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나역시 섬김의 장과 대상을 너무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배우고 쌓은 신앙적인 지식들이 세상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게되기 보다는 경계하고 정죄하고 멀리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게되는 경향은 없는 것인지..
이런 의미에서 요즈음, 양전도사님이 요즈음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부근에 청소를 하게한다든지 또, 중등부 학생들의 삶과 그 부모들의 삶을 연결시켜서 섬김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그의 안목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다는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가정과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도전받고 생각한 외적인 과제라 한다면.. 아직 우선 시급하게 감당해야할 내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이 내적인 사역에서 열매를 못보고 외적인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도 문제겠고요.
우선 제게 가장 다급한 섬김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이웃이요 섬김의 대상인 교회의 삶에서만이라도 봉사를 제대로 해보려고)
어제 노목자님께서 기도로 섬기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우리 교회식구들을 위한 기도만큼만 그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선 교회식구들을 위해서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 나의 삶을 고백하며 회개하고 매일 교회식구들을 위해 철저히 기도할 것을 결단해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인사에 관한 것입니다. 인사는 상대방이 귀한 분이란 것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표시인데, 인사조차 제대로 안하면서 상대방을 섬기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듭니다. 우선 큰 섬김은 못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이고 적은 섬김인 인사하는 것을, 저부터, 그리고 모든 교회식구들끼리 인사를 철저히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인사하는 것을 철저히 가르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됩니다. 어린이이들로 부터 가장 연세가 많은 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사를 화끈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섬겨야할 대상 한 사람을 든다면 (두사람 들겠습니다.)
제 아내와 불신자인 제 친구 홍태란 사람입니다. 잘섬겨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