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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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저는 이글을 읽으며 사도 바울의 확실한 정체성과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열정 passion을 느꼈읍니다. 또한 이 말씀이 늘 묵상이 되었읍니다.
제가 이글을 올리는 것은 오늘 제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파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입니다. 제 마음을 누르는 것은 적당주의 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것 처럼 보입니다. 예를들면...
우리의 삶에서 흔히 얘기하는 중용은 미덕이다.....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어야해.........
당신만 예수 믿습니까?.... 적당히 하십시요......... 등등
Christian이라 말하며 불리워 지는 우리가 본질의 Christian의 의미를 버리고 적당주의로 바뀌어서는 않됩니다. 사도행전 11:16 아브라함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당시 안디옥 교인들은 날마다 주를 찬양하며, 말씀을 나누며, 기도하며, 배우며 떡을떼기에 그리스도에 미쳤기에 조롱거리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 졌다 들었읍니다.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당시 그리스도인의 의미에서 변질되어 있진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당시 할례받는것으로 내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받은 삶으로써의 상처와 고통들이 흔적으로 남아있기에 사도바울은 당당히 말씀하십니다...."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우리 21세기 성도님들 또한 사도바울처럼 당당히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말씀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손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송서영 형제님,
제 마음을 누르는 것도 적당주의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마음의 누름을 느낄 때마다, 답답해지며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제 마음의 만족이 온전한 헌신가운데 온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답답함이 저를 누르는 것입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싶고, 뜨겁게 기도하고 싶고, 뜨겁게 교제하고 싶고, 뜨겁게 말씀을 공부하고 싶고, 뜨겁게 전도하고 선교하고싶습니다.
그 것만이 내 영혼에 만족을 준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저의 문제는 그 것을 충동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누름이 견딜 수가 없도록 지속적으로 저를 누른다면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시도할 텐데
그런 충동을 느끼다가도 적당주의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곤합니다.
이번 금요일 저녁 준비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찬양하며 기도하며 교제하며 말씀을 나누는 집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적은 일에도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온전한 헌신을 추구하기 전에 적은 일 사소한 일에 먼저 헌신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주님! 주님께 헌신하므로 주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만족을 경험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