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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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투루카나 목회자 훈련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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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루카나
2003년 초등학교교육이 무상교육으로 바뀐 후 이 곳의 많은 아이들이 교육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타운에서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이나 또 근거리에 살아도 가축을 돌봐야 되는 이유 등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번 목회자들의 회의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고등학교 진학시 (케냐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8년, 고등학교 4년,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음) 약60%가 모슬렘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온 가족이 모슬렘신도가 되어야 하며 방학때마다 일정기간 모슬렘사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코란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모슬렘신도가 개종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난 2002년 어떤 이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모슬렘의 살해음모 때문에 나이로비로 도피했다가 그 곳도 안전하지 못해 결국에는 미국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수가 카톨릭의 보조로 진학하게 되고 소수의 학생들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나 사비로 고등학교진학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 목회자나 교인들의 경우는 대부분의 자녀들이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다는 점입니다.
또 이 지역에서는 교육의 부족으로 목회자가 쉽게 양성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목회자들 중에도 성도들의 죄를 목사가 기도함으로 사유함 받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많은 고아들과 하루 종일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참 마음이 무겁고 아픈 시간들이었습니다. 먹을 음식과 식수가 없어서 가축들도 젖을 내지 못하는 시기가 많고 그럴 때면 동물들의 피를 음식으로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이 곳의 필요나 요구를 바라보면 저희들이 하는 일이 너무 미약해서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모든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고아들에 대한 마음도 간절하지만 고아원을 정식으로 열지 않고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어서 아직은 작은 구호품 전달로만 만족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교회와 문자학습반을 위한 교실을 겸용할 수 있는 단순한 건물을 짓는 방안과 우물을 파기 위한 제반 정보등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곳은 너무 멀고 또 도중에 항상 강도들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기가 쉽지 않아 사역에 어려움이 많은 곳입니다. 지난 번 사역에서 돌아올 때에도 노상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고 경찰서로 간 다음 그 곳에서 무장경찰을 대동하고 다른 차량들과 함께 조를 이루어서 위험한 지역을 통과해 왔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하기 약 30분 전에 그 도로에서 무장강도들이 지나가던 버스를 총을 쏴서 습격하고 승객 전원을 강탈했기 때문에 근처 어딘가에 여전히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최근에도 그 곳 도로에서 운전하던 경찰이 총상으로 죽고 함께 탔던 승객들이 휴대폰과 현금을 강탈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2월 중순 경에는 약 700명의 무장강도들이 아침 6시경에 국경지대에 있는 한 투루카나 마을을 습격해서 약 50여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마을의 수백마리의 가축떼가 약탈당했습니다. 또 저희가 사는 곳에서도 지난 1달 동안에 차량탑승객을 상대로 한 3건의 畸璲?돐怜퓽?있었습니다.
2. 가족 소식
예지의 대학진학문제가 여전히 제일 큰 이슈입니다. 몇몇 학교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장학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아마 5월이 다 되어서야 나올 것 같습니다. 둘째 예린이는 최근 기숙사학교에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아이들이 기숙사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제가 사역을 하기가 좀 더 자유로울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담 결과 현성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예린이의 경우는 먼저 신청한 대기자가 많아서 다소 어렵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우선 예린이만이라도 입학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소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역차량을 위한 TLB(운송면허증) 스티커를 발부받기 위해 Times Tower(교통국)를오전에 일찍 방문했는데 해마다 같은 시기에 이 스티커를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들로 건물 안은 만원이었습니다. 오후에 다른 할 일이 있었는데 마감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끝나지 않아 할 수 없이 아내만 남겨놓고 끝나면 건물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다른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도로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기 위해 빈주차장소를 기다리는 중에 세 명의 경찰이 갑자기 달려들더니 저더러 이중주차를 했다며 경찰서로 연행한다고 하더군요. 아무 것도 모를 아내가 얼마나 걱정할까 하는 생각에 잠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말을 하고 나오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하기에 전화를 걸 수 있도록 좀 빌려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제 전화는 몇일 전에 도난 당했기에) 정말 황당한 것은 제가 마치 범법자이기라도 하는 듯이 거칠고 위협적인 태도로 소리치며 경찰서로 가자고 몰아대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그 장소를 일단 벗어난 다음 제 옆에 앉아서 저를 연행 중인 경찰에게 사정사정하여 간신히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놀란 아내가 나왔는데 이제 얼마 후면 스티커를 발부 받을 수 있었던 순간에 나와야 했던 아내는 하루 종일 서서 고생했던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데에 경찰서에서 몰래 눈물을 닦더군요. 수백명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와서 점심도 거른채 매년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다. 경찰서에 연행된 후에 5천실링(현재 USD1=70실링)의 보증금을 내고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법정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법정에서 이들의 태도에 대하여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서 있는 사람들 틈에서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다시 서류절차를 거쳐서 3천실링의 벌금을 내고 전날 낸 보증금을 환불받고 나왔는데 법관이나 서기나 위반자들에게 전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빠르게 서류를 넘겨가며 오직 위반사실이 사실임만을 확인 받더군요. 대략 백수십명이 한 방에 있었는데 일괄적으로 3천실링의 벌금을 물게 했습니다. 날마다 그 많은 수가 붙들려 온다고 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몇 차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법관을 불렀지만 일을 진행하는 어느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사람의 서류로 넘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다행하게도 입장해서 얼마 되지 않아 호명되는 바람에 약 1시간 후에 나올 수 있었지만 현지인친구는 자신의 경우 아침 8시에 출두해서 오후 3시 30분에 호명되었다고 하더군요.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날도 법정에 가기 위해 주차장 안에서 주차공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차가 들어서더니 기다리고 있던 모든 차를 일제히 이중주차명목으로 붙잡는 바람에 제가 또 연행되어 갈 뻔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낸 보증금 영수증을 보이며 지금 법정으로 가야 한다고 사정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여긴 교통법규가 주차장 안이라 하더라도 계속 차를 몰고 다니지 않으면 이중주차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로 단속이 된 적이 없었는데 올해가 정권교체기여서인지....
이런 일들을 겪으며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아직도 모든 일이 행정편의주의로 일관되어 있는 점입니다. 모든 TLB 스티커의 만료시일을 12월 31일자로 묶어놓고 갱신하는 기간 조차 년말 과 년초 일정기간으로 정해놓고 있으니 해마다 운전자들이 홍역을 치루어야 하는 것이나 법정 출두 고지서의 시간을 모두 8시로 정해놓고 쌓여있는 파일 순서대로 호명하니 모두가 아침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손놓고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나, 경찰들의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태도나 정말 이제쯤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90%가 넘는 투루카나의 문맹률이 낮아질 때면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부조리나 인권유린 등이 나아지리라 생각하며 저희들이 하는 이 조그만 문자학습사역이 복음전파와 함께 이 나라의 복지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위안을 삼아봅니다.
다음의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인도하심이 있도록,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1. 저희들과 동역하는 모든 형제들이 언제나 성령 안에서 깨어있어서 하나님께 민감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2. 매달 정기적으로 4일간 합숙으로 진행되는 수수아의 목회자 훈련이 잘 정착되고 교회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도록
3. 수수아지역의 교회건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도록
4. 투루카나에 교회와 교실을 겸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혜롭게 잘 건축할 수 있도록
5. 투루카나의 문자학습반이 잘 운영되도록
6. 투루카나에 우물을 파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7.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부지 구입을 위해서
8.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무장강도들의 총기강도사건이 날마다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명한 국회의원이 보호하는 상주경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를 당했습니다. 보안회사차도 자주 강도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그 직원들 또한 총기사망이 많습니다.)
9. 큰 아이 예지의 대학입학을 위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대학, 졸업 후에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는 대학으로 인도해주시도록; 최대한 많은 장학금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아래: 나무아래 교회에서 예배후
1. 투루카나
2003년 초등학교교육이 무상교육으로 바뀐 후 이 곳의 많은 아이들이 교육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타운에서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이나 또 근거리에 살아도 가축을 돌봐야 되는 이유 등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번 목회자들의 회의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고등학교 진학시 (케냐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8년, 고등학교 4년,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음) 약60%가 모슬렘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온 가족이 모슬렘신도가 되어야 하며 방학때마다 일정기간 모슬렘사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코란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모슬렘신도가 개종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난 2002년 어떤 이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모슬렘의 살해음모 때문에 나이로비로 도피했다가 그 곳도 안전하지 못해 결국에는 미국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수가 카톨릭의 보조로 진학하게 되고 소수의 학생들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나 사비로 고등학교진학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 목회자나 교인들의 경우는 대부분의 자녀들이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다는 점입니다.
또 이 지역에서는 교육의 부족으로 목회자가 쉽게 양성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목회자들 중에도 성도들의 죄를 목사가 기도함으로 사유함 받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많은 고아들과 하루 종일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참 마음이 무겁고 아픈 시간들이었습니다. 먹을 음식과 식수가 없어서 가축들도 젖을 내지 못하는 시기가 많고 그럴 때면 동물들의 피를 음식으로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이 곳의 필요나 요구를 바라보면 저희들이 하는 일이 너무 미약해서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모든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고아들에 대한 마음도 간절하지만 고아원을 정식으로 열지 않고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어서 아직은 작은 구호품 전달로만 만족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교회와 문자학습반을 위한 교실을 겸용할 수 있는 단순한 건물을 짓는 방안과 우물을 파기 위한 제반 정보등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곳은 너무 멀고 또 도중에 항상 강도들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기가 쉽지 않아 사역에 어려움이 많은 곳입니다. 지난 번 사역에서 돌아올 때에도 노상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고 경찰서로 간 다음 그 곳에서 무장경찰을 대동하고 다른 차량들과 함께 조를 이루어서 위험한 지역을 통과해 왔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하기 약 30분 전에 그 도로에서 무장강도들이 지나가던 버스를 총을 쏴서 습격하고 승객 전원을 강탈했기 때문에 근처 어딘가에 여전히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최근에도 그 곳 도로에서 운전하던 경찰이 총상으로 죽고 함께 탔던 승객들이 휴대폰과 현금을 강탈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2월 중순 경에는 약 700명의 무장강도들이 아침 6시경에 국경지대에 있는 한 투루카나 마을을 습격해서 약 50여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마을의 수백마리의 가축떼가 약탈당했습니다. 또 저희가 사는 곳에서도 지난 1달 동안에 차량탑승객을 상대로 한 3건의 畸璲?돐怜퓽?있었습니다.
2. 가족 소식
예지의 대학진학문제가 여전히 제일 큰 이슈입니다. 몇몇 학교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장학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아마 5월이 다 되어서야 나올 것 같습니다. 둘째 예린이는 최근 기숙사학교에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아이들이 기숙사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제가 사역을 하기가 좀 더 자유로울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담 결과 현성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예린이의 경우는 먼저 신청한 대기자가 많아서 다소 어렵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우선 예린이만이라도 입학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소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역차량을 위한 TLB(운송면허증) 스티커를 발부받기 위해 Times Tower(교통국)를오전에 일찍 방문했는데 해마다 같은 시기에 이 스티커를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들로 건물 안은 만원이었습니다. 오후에 다른 할 일이 있었는데 마감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끝나지 않아 할 수 없이 아내만 남겨놓고 끝나면 건물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다른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도로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기 위해 빈주차장소를 기다리는 중에 세 명의 경찰이 갑자기 달려들더니 저더러 이중주차를 했다며 경찰서로 연행한다고 하더군요. 아무 것도 모를 아내가 얼마나 걱정할까 하는 생각에 잠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말을 하고 나오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하기에 전화를 걸 수 있도록 좀 빌려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제 전화는 몇일 전에 도난 당했기에) 정말 황당한 것은 제가 마치 범법자이기라도 하는 듯이 거칠고 위협적인 태도로 소리치며 경찰서로 가자고 몰아대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그 장소를 일단 벗어난 다음 제 옆에 앉아서 저를 연행 중인 경찰에게 사정사정하여 간신히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놀란 아내가 나왔는데 이제 얼마 후면 스티커를 발부 받을 수 있었던 순간에 나와야 했던 아내는 하루 종일 서서 고생했던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데에 경찰서에서 몰래 눈물을 닦더군요. 수백명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와서 점심도 거른채 매년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다. 경찰서에 연행된 후에 5천실링(현재 USD1=70실링)의 보증금을 내고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법정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법정에서 이들의 태도에 대하여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서 있는 사람들 틈에서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다시 서류절차를 거쳐서 3천실링의 벌금을 내고 전날 낸 보증금을 환불받고 나왔는데 법관이나 서기나 위반자들에게 전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빠르게 서류를 넘겨가며 오직 위반사실이 사실임만을 확인 받더군요. 대략 백수십명이 한 방에 있었는데 일괄적으로 3천실링의 벌금을 물게 했습니다. 날마다 그 많은 수가 붙들려 온다고 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몇 차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법관을 불렀지만 일을 진행하는 어느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사람의 서류로 넘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다행하게도 입장해서 얼마 되지 않아 호명되는 바람에 약 1시간 후에 나올 수 있었지만 현지인친구는 자신의 경우 아침 8시에 출두해서 오후 3시 30분에 호명되었다고 하더군요.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날도 법정에 가기 위해 주차장 안에서 주차공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차가 들어서더니 기다리고 있던 모든 차를 일제히 이중주차명목으로 붙잡는 바람에 제가 또 연행되어 갈 뻔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낸 보증금 영수증을 보이며 지금 법정으로 가야 한다고 사정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여긴 교통법규가 주차장 안이라 하더라도 계속 차를 몰고 다니지 않으면 이중주차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로 단속이 된 적이 없었는데 올해가 정권교체기여서인지....
이런 일들을 겪으며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아직도 모든 일이 행정편의주의로 일관되어 있는 점입니다. 모든 TLB 스티커의 만료시일을 12월 31일자로 묶어놓고 갱신하는 기간 조차 년말 과 년초 일정기간으로 정해놓고 있으니 해마다 운전자들이 홍역을 치루어야 하는 것이나 법정 출두 고지서의 시간을 모두 8시로 정해놓고 쌓여있는 파일 순서대로 호명하니 모두가 아침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손놓고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나, 경찰들의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태도나 정말 이제쯤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90%가 넘는 투루카나의 문맹률이 낮아질 때면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부조리나 인권유린 등이 나아지리라 생각하며 저희들이 하는 이 조그만 문자학습사역이 복음전파와 함께 이 나라의 복지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위안을 삼아봅니다.
다음의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인도하심이 있도록,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1. 저희들과 동역하는 모든 형제들이 언제나 성령 안에서 깨어있어서 하나님께 민감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2. 매달 정기적으로 4일간 합숙으로 진행되는 수수아의 목회자 훈련이 잘 정착되고 교회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도록
3. 수수아지역의 교회건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도록
4. 투루카나에 교회와 교실을 겸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혜롭게 잘 건축할 수 있도록
5. 투루카나의 문자학습반이 잘 운영되도록
6. 투루카나에 우물을 파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7.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부지 구입을 위해서
8.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무장강도들의 총기강도사건이 날마다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명한 국회의원이 보호하는 상주경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를 당했습니다. 보안회사차도 자주 강도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그 직원들 또한 총기사망이 많습니다.)
9. 큰 아이 예지의 대학입학을 위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대학, 졸업 후에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는 대학으로 인도해주시도록; 최대한 많은 장학금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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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님의 댓글
홍승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선교라는게 장소에 따라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군요. 편지내용을 쭉 읽으면서 아무리 후진국이지만 너무 부패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윤목사님도 힘드시겠지만 나약하신 사모님이 너무 불쌍하십니다. 자녀분들 걱정도 되구요. 정말 우리 교회가 기도 밖에는 다른 특별한 도움을 못드리는게 안타깝군요. 언제나 몸조심 하십시요. 그리고 계속 사진 좀 자주 보네 주십시요. 여기 계신 분들께 많은 도전이 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