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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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저의 마음을 다시 감동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입니다. "
(고후 7:3)
성구사전을 살펴보니 비슷한 표현이 또 다음과 같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십니다. (빌 1:8-9)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만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후 2:8)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또 주님의 소원을 아시는 분이기에, 형제들을 향한 그 사랑도 그렇게깊었음을 보게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런 사랑의 관계를 그의 성도들이 행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주님일 것입니다.
주님,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지속적인 사랑을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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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세상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심지어는, 주님의 교회들에게서도 볼수도 없고 들어볼 수도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요즘의 교회들이 왜 능력이 없는지를 짐작케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줄 알리라"
주님의 제자된 표시가 사랑인데, 세상사람들이나 주님의 제자들이나 별 차이가 없는 사랑을 하니까 주님도 세상에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 13:34)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추구하는 초대교회 역사 초대교회의 능력이란 흔히 말하는 여러가지 신비한 은사가 아니라, 바로 이런 사랑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울리는 꽹과리라도 되어야겠다고 작정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것이 있어야 마치 능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고전 13:1-13)
그러나 이런 사랑이 아예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울리는 꽹과리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생각까지 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도전 받아야할 것은 이런 사랑이 매주 만나볼 수 있는 자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수천마일 떨어져있는 성도들 간에 - 사도바울이 "나의 마음" 혹은 "내가 사모하는"이라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 혹은 "우리가 사모하는"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 그 것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몇년이 지났을지 모를 그런 상황에서 이런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교회에 속해있다가 멀리 떨어지게 되면 마음도 멀어지고 어떤 때는 원수 비슷한 상황까지 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그 사랑의 깊이와 진실성이 세상의 그 것과 전혀 다를바 없는 얄팍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인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교회들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주님을 이 세상에 알릴 소망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주님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유를 사도바울의 고백에서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