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8급, 하나님은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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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 되어...." 노예에 팔려갔는데 형통한 자 되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감옥에 들어갔는데 형통?
요셉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면서묵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삶을 짧게 끊어서 보면 창39:2, 39:23절은 전혀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인생을 펼쳐보면 그리고 길게 놓고 보면 두 말씀은 정확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이해 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요셉은 정말 형통한 자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해 할 수 없었던 힘든 경험은 하나님의 포석이었습니다.
저의 바둑 실력은 18급입니다. 바둑 알을 둘면 18급이라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바둑을 두는 것을 어깨 넘어로 보곤 했습니다. 실력이 있는 고참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면 왜 저기에게다 둘 까...하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몇 수 왔다, 갔다 하면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이걸 위해 그 때 그런 수를 둔 것이 구나!"
요셉의 인생에서 당장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 고통 때문에 애굽에 갈 수 있었고 그래서 애굽에서 가족과 민족을 구원 할 수 있었던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최고수 9단이 바둑을 두는 것을 보면 지금 왜? 그곳에다 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여 수가 지난 후에 왜 거기에다 두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난 18급 초보입니다. 하나님은 9단 아니 최 고수이십니다. 하나님의 기막힌 최고 수로 우리 인생의 바둑을 두십니다. 18급 짜리가 9단의 바둑을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그저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요셉은 팔려갈 때 감옥에 갈 때 억울해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밥 잘 먹으면서 죄수 노릇, 노예 노릇을 멋찌게 해냈습니다. 왜요? 그에게는 최 고수 이신 하나님의 수를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지금은 이해 되지 않지만 그 일속에서 고수 하나님의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이 나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니 믿어드렸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고수의 수. 내가 이해 못하는 고수의 수.
하나님, 고수를 고수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주세요.
하나님, 저는 18급입니다. 하나님은 9단이십니다.
댓글목록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백목사님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실어주었군요. 감사합니다.
바둑을 약간 둘줄 아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남깁니다.
바둑에 "복기"(復碁)라는 것이 있지요.
바둑 한판을 다 두고 승부가 난 다음에 처음 한 점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다시 두어보는 것이지요.
까만돌, 흰돌을 번갈아 몇 백개를 둔 것을 차례, 순서 한번 틀리지 않고 다시 재현한다는 것은 가히 대단한 일.
하수들은 어림도 없고 1급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18급도 채 되지 않는 실력으로 기성(碁聖, 바둑의 최고수를 이르는 말)과 겨루려는 모양으로 인생에 도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인데도 우리는 날마다, 일마다 먼저 18급의 실력으로 생각하고, 기도라는 것을 하고, 또 뭔가를 실행하기도 하지요.
문제는 믿음입니다. 요셉같은 믿음,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믿음 말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분별력 없는 머저리 같은 양이 그저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는..... 그것이 믿음이지요.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는... 나의 견해로는... 내가 기도한 바로는... 일이 되어지는 것을 볼 때... 나의 계획에 의하면....
내가 확신하기는... 등등 등, 등....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기성께서 18급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