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감사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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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면서 갑자기 몽골에 있는 진영이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진영이가 따듯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 것입니다.
편하고 좋은 환경가운데서 살면서 일도하고 사역도 할 수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삶의 환경이 아주 불편한 먼 곳에 가서 살면서 사역을 감당하는 최목사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로 뚜렸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열악한 환경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가치가 있는 것임을 분명히 삶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편한 장소에서 편할 때만 갖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가운데 사는가의 문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란 것을 삶으로서 증거를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고, 그리고 누려야할 그런 귀중한 가치가 있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삶으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최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이 생각 속에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전부라면, 김춘택목사님 내외분이나, 또 윤목사님 가정이 구태여 머나 멀고 불편함이 많은 환경 가운데서 사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이 세상 환경과 상관 없이, 또 열악한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추구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세상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여러가지 이유와 동기로 열악한 환경가운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곳에서 돈을 벌어 좀 더 나은 환경 가운데 있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름으로 잠시동안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환경 자체를 낭만적으로 즐기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면, 이들 모두가 다 불행한 분들입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선교사님들이 희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편하고 안락한 환경가운데 사는 분들은 축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이 편한 곳에서 살면서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분들도 역시 행복한 분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환경 때문이라기 보다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기쁨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우리처럼 동족 그리스도인들끼리 편한 환경에서 맘껏 김치와 된장찌게를 먹으면서 교제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우리들이 느낄 수 없는 면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고 믿습니다.그리고 그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저도 요즈음 매주 멕시코에 왔다 가다하면서 그런 기쁨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그곳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저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왜 그렇게 좋은지.. 이 모두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 분의 손으로서, 팔로서, 눈으로서, 귀로서, 입으로서 주님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감격과 기쁨을 줍니다.
특별히, 가나안 여인이나 백부장과 같은 이방인에게 주님의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쁨은 그 어떤 환경이 줄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감격과 기쁨입니다.
얼마 전에, 진영이가 따듯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 것입니다.
편하고 좋은 환경가운데서 살면서 일도하고 사역도 할 수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삶의 환경이 아주 불편한 먼 곳에 가서 살면서 사역을 감당하는 최목사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로 뚜렸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열악한 환경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가치가 있는 것임을 분명히 삶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편한 장소에서 편할 때만 갖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가운데 사는가의 문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란 것을 삶으로서 증거를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고, 그리고 누려야할 그런 귀중한 가치가 있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삶으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최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이 생각 속에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전부라면, 김춘택목사님 내외분이나, 또 윤목사님 가정이 구태여 머나 멀고 불편함이 많은 환경 가운데서 사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이 세상 환경과 상관 없이, 또 열악한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추구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세상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여러가지 이유와 동기로 열악한 환경가운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곳에서 돈을 벌어 좀 더 나은 환경 가운데 있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름으로 잠시동안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환경 자체를 낭만적으로 즐기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면, 이들 모두가 다 불행한 분들입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선교사님들이 희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편하고 안락한 환경가운데 사는 분들은 축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이 편한 곳에서 살면서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분들도 역시 행복한 분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환경 때문이라기 보다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기쁨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우리처럼 동족 그리스도인들끼리 편한 환경에서 맘껏 김치와 된장찌게를 먹으면서 교제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우리들이 느낄 수 없는 면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고 믿습니다.그리고 그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저도 요즈음 매주 멕시코에 왔다 가다하면서 그런 기쁨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그곳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저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왜 그렇게 좋은지.. 이 모두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 분의 손으로서, 팔로서, 눈으로서, 귀로서, 입으로서 주님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감격과 기쁨을 줍니다.
특별히, 가나안 여인이나 백부장과 같은 이방인에게 주님의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쁨은 그 어떤 환경이 줄 수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감격과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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