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신앙 [ 야고보서 1:19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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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26일 (목)
진실한 신앙 [ 야고보서 1:19 - 1:27 ] - 찬송가 455장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27
최근에 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의류상품의 광고를 하나 보았습니다. 그것은 청바지와 그에 맞춰 디자인한 모든 액세서리들을 선전하는 광고였습니다. 사실 그것은 특별히 새로운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의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신앙”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보면서 나는 잠시 멈춰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런 이름이 선택되었을까? 내가 모르는 더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청바지와 진실한 신앙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의 깊은 생각은 답이 없는 질문들만 남겨 놓았습니다.
나는 진실한 신앙 혹은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가 명확하게 설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1:27). 이 말은 정말 참신합니다. “진실한 신앙”, 즉 성실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하나의 증거는 우리가 서로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가장 약하고 상처입기 쉬우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는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은 입고 벗고 하는 옷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대단히 고결한 도전입니다.
진실한 신앙은
그리스도가 전하는 사랑을 아는 것이라네
진실한 신앙은
상한 심령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라네
믿음은 겉모습으로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행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1:19-27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26 April Thu, 2012
TRUE RELIGION
[ James 1:19 - 1:27 ] - hymn455
Pure and undefiled religion before God and the Father is this: to visit orphans and widows in their trouble, and to keep oneself unspotted from the world. - James 1:27
I recently saw an ad for a brand of clothing geared toward youth. It consists of blue jeans and all the accessories designed to go with them. There is nothing novel about that. What got my attention, however, was the name of this clothing line. It is called “True Religion.” That caused me to stop and think. Why was that name chosen? Am I missing some deeper significance? What is the con-nection between a brand of jeans and true religion? What do they mean by it? My musings left me with questions for which I had no answers.
I am thankful that the book of James is clear when describing true religion or true faith: “Pure and unde-filed religion before God and the Father is this: to visit orphans and widows in their trouble, and to keep oneself unspotted from the world”(1:27). That is refreshing. “True religion”-genuine faith-is an expres-sion of how we relate to our God. One evidence of our new identity in Christ is the way we care for one another- reaching to the most frail and vulnerable among us, to those most in need of help.
True religion is not a garment to be taken on and off. It is a lofty challenge about how we live before a holy God and others. - Bill Crowder
True religion is to know
The love that Christ imparts;
True religion is to show
His love to burdened hearts. - D. De Haan
You don’t advertise your religion by wearing a la-bel-
you do it by living a life.
James 1:19-27
[19] So then, my beloved brethren, let every man be swift to hear, slow to speak, slow to wrath;
[20] for the wrath of man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of God.
[21] Therefore lay aside all filthiness and overflow of wickedness, and receive with meekness the implanted word, which is able to save your souls.
[22] But be doers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ceiving yourselves.
[23] For if anyone is a hearer of the word and not a doer, he is like a man observing his natural face in a mirror;
[24] for he observes himself, goes away, and immediately forgets what kind of man he was.
[25] But he who looks into the perfect law of liberty and continues in it, and is not a forgetful hearer but a doer of the work, this one will be blessed in what he does.
[26] If anyone among you thinks he is religious, and does not bridle his tongue but deceives his own heart, this one's religion is useless.
[27] Pure and undefiled religion before God and the Father is this: to visit orphans and widows in their trouble, and to keep oneself unspotted from the world.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양사모님의 질문을 읽으면서, 로마서 7:1절의 law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본문의 ‘law” (어떤 영어성경은 ‘Law’)는 ‘율법’으로 번역된 것이 있고 그냥 ‘법’ (그리스도의 법, 복음의 법, 완전한 법)으로 번역되있기도 하네요.
이 질문에 대해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야고보서 2:8-12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야고보서 2:8절에는 최고의 법 혹은 최상의 법이란 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참고 롬 13:9-10) 그리고 야고보서 그다음 절2:9부터 2:-11절까지 모든 번역들이 율법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야고보서)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2: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2:12 (그러므로)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특별히, 오늘 질문의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이 야고보서 2:12에도 반복되네요. 물론, 이 구절에 관해서도 ‘자유케하는 율법”이라고 번역한 것도 있고 ‘자유케하는 법’이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2:8-11절까지 쓰인 율법과 2:12절에 기록된 자유케하는 (율)법이 같은 것이냐하는 질문이 되겠네요. (제가 볼때는 문맥상으로 같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단지 자유라는 말이 포함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복음의 은혜 가운데 적용되는 율법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
율법에 대한 언급이 4장에도 나옵니다 (4:11절은 모든 번역이 율법이라고 번역하였음)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개역개정)
이제 다시 야고보서 1:25절도 돌아가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구절에서도 (율)법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 4:11절에서도 율법의 준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율법을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이 말하는 율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이 중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려고 (마태 7:17) 오셨고, 결국 완성하신 그 율법이란 의미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므로 이루신 복음 (신약)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지켰던 율법의 세가지 요소중, 국민법과 의식에 관한 법은 폐지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히브리서7:18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4- 15 “그는 (예수님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 (도덕)의 율법, 다시말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법(십계명의 요약)은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더욱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8: 4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복음과 (예수님이 완성하신) 율법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서 1장(모든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순종과 행함은 복음의 삶이요 또한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라고 보여집니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도 문맥상으로볼 때 이런 성도간의 형제 사랑에 관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배우고있는 로마서 14:10-12절이나 고후 5:10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는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구원을 받게될지 심판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 심판을 받을 때의 기준이 우리들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해석하시고 완성하신 율법에 의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구원을 얻기위해서 지키는 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지켜야할 법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양사모님의 질문에 대한 저의 의견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대답이 아니라, 둘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노요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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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서 낯선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고 약간의 사례를 하려고 하였더니
손을 저으며 혹시 길을 가다가 당신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갚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약하고 상처입은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먼저 예수님에게서 그런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오늘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