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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은 "난닝구"였다.
미국에 들어온지 30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언더웨어 (underwear)란 말보다도
또, 내의란 말보다도 '난닝구"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 기억으로는 미국에 들어온 후로, 주위에서 "난닝구"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잘 안난다. (요새는 내기억력을 신뢰치 못하므로,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당한 오랜 기간동안 이 말을 들은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사용했던 "난닝구"란 말이 아직도 자연스럽다. 사전을 보니까, 난닝구란 말은 일본말로 running shirt란 영어의 일본식 발음이다. 어쩌자고 일본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말을
어쩌자고 이 곳 미국에까지 와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가? 정말 어렸을 때 듣고 배운 것의 영향력이 이토록 오래가는가함을 다시 느낀다.
영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지 40년이 되가지만, 내겐 아직도, 예수님의 용어보다는 세상적인 용어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다.
나의 입술의 말들이 과연 예수님의 개념과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것과 더 가까운가?
내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지, 내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들인지 자주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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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환님의 댓글
주기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야 "난닝구"를 않입는 사람이니 쓸일이 없습니다만...
"빤스"는 어떻습니까?
아마도 99%??!!
박 목사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압니다.
저 역시 100%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살다가..주님 알게되어 믿기로 작정했으면 넘어지고 깨어지고!!! 내가 가식적이라고 느껴져서 회의감, 자책감 느끼고 하더라도 이렇게 부족한 나를 위해 이미 계획하신 구원을 믿고 다시 돌아가는것이 회개이고, 매일이라도 그리 하면서 사는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합니다.
솔직히 제가 무슨 자격있겠습니까?
아는데 왜 뻔뻔히 목자랍시고 버티고 있냐구요?
뻔뻔해서 버티는게 아니라 주님 그늘아래서 벗어나지는 말아야 하기에 "아이고 주님~!!"을 수도 없이 외치면서 버팁니다.
솔직히 빌붙어 사는것 같죠..그래도 그래도 하나님 은혜를 알고 믿었고 감사한걸 정말 안다면 버텨야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둥글둥글 사는것 같은 제모습이 가증스럽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숨고싶지는 않습니다.
이모습 이대로 혼날것은 혼나면서 용서 하시면 받고 연단 하시면 받고...그러면서라도 예수님 믿고 살겠습니다.
박 목사님은 40년 저는 10년 조금 넘었습니다.
제가 더 싱싱한? 믿음으로 주님닮아가는 삶을 살아드려야 하는줄 압니다.
그런데 벌써 수백번 타성에 젓어서 헤메이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사랑커녕 제 마음이 자갈밭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한가지...
처음 저를 부르셨을때의 감동이 가짜가 아니라서 그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자격은 없지만 악착같이 버티는겁니다.
내 생각과 의를 버린다.. 제 생각에는 불가능입니다.
계속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따라가는거죠..
믿음의 동지라고 했던 우리 식구들..지금은 떠나서 그 의미를 버리신 분들...
첫 사랑의 감동과 근 은혜를 기억하시고 아무 조건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구걸하듯 애원하는것 이라 생각하셔도 좋지만 누굴 위해 교회가있는지 마음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님 한분만 보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격려하는 그런 식구들로 거듭나길 정말 원합니다.
제가 해결 못하고있는 부분들을 놓고 기도하겠습니다.
저 때문에 힘드신분들 용서하시고 용서하십시요..
영접했을때..침례받았을때..를 떠올리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난닝구에서 빤쓰로 그리고 영적인 습관으로 발전하더니 결국은 회개로, 격려로...
작은 일에서 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감수성을 가지는 것 역시 성령님의 일하심이라고 믿습니다.
주목자님의 솔직하고 진지한 고백과 갈등과 소원과 기도가 곧 우리들의 것이고 우리 모두의 현주소 아닐까요?
이렇게 글로써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교회의 이 마당과 우리서로의 관계성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죄의 삶을 합리화 혹은 타협하려는 뜻은 결코 없습니다만, 바울 사도도 고백했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 고 말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정직하게 깊이 깨달을수록 주님의 은혜가 귀중한 것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모습 이대로 혼날것은 혼나면서 용서 하시면 받고 연단 하시면 받고...그러면서라도 예수님 믿고 살겠
습니다."라는 주목자님의 결단과 그 진심이 느껴져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계속 달려가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여기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가운데 나침판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박목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목자님! 아름다운 글입니다.
고통과 갈등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이 잔인스러운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댓글을 읽으면서
아름다움 그 자체를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 잡혀있는 자만이,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의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방황하고 시험에 빠지기도하고 헤메이기도 하지만, 주님이란 바운다리를 떠날 수 없는 주님의 것인 자의 고백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만큼만 우리의 관계성과 사랑의 깊이가 측정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서로에게 나눌 수 있고 또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유와 여유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이 나눌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