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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은 예수님꼐 있다 c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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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같은 일이 마태에게도 일어났다. 
그는 세리였다.  예수님은 마태에게 한가한 시간이 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안녕하시오, 내가 예수요.  당신을 만나 참 반갑소.  당신이 매우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아, 내 여기서 기다리리다."

아니다. 이렇게 하면 마태에게 예수님을 살펴볼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선택권을 주게
되는것이다.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마태여, 나를 따르라!"

초대가 아니라 명령하셨다.  마태는 순종하든지 아니면 거역하든지 해야했다.  "회개하고 믿으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당신은 이렇게 하든지 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할 것이다.

젊은 부자 관원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가 예수님께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8:18).

예수님이 명령하셨다.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2절)

애석하게도 이 젊은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라면 부자 관원에게 어떻게 했겠는가? 그에게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보게 젊은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그냥 전과 같이 따라오면 되지 않겠나.  자네를 위해 타협안을 만들어 봄세."

이렇게 하면 물론 그는 예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기 방식대로 예쑤님을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도록 내버려 두셨다.

만약 예수님이 좀 적당한 선에서 요구하셨다면, 이 젊은이는 결코 자기 자신으로부터 진정 구원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전에 예수님은 어떤 한 사람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그가 맗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9:59).

우리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하필이면 이런 때 당신을 부르게 된 것을 용서하십시오.

참 안되셨습니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장사를 지내려면 이틀이나 사흘은 걸려야 할 겁니다."

예수님은 달랐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는 그 사람이 죽은 아버지나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였지만, '나로 먼저가서...' 라는 단서를 뭍였다.  예수님 말고 누가 또 우선될수 있는가? 이사람 역시 자기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아니다. 너는 내 방식대로 나를 따라야한다."

물론 예수님은 그를 보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실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가지 철칙이 걸린 문제였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하소서"(눅9:61).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수 있었다.

"좋다. 가서 가족들과 저녁을 나눠라. 그리고 네가 나를 좇을 수 있도록 허락한 네 식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셨다.

댓글목록 4

홍혜정님의 댓글

no_profile 홍혜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선권의 문제, 그 어느것도 예수님보다 우선순위 일수는 없습니다.
 
먼저 예수님, 그리고...

물질보다도, 부친의 장사보다도, 심지어 가족들보다도 먼저 예수님, 그리고...


많은 물질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가는 청년을 애석해 하면서도 잡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결단을 하지 못한 그에게 또얘기하고 또얘기하고 기다리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끝내는 애석한 얼굴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예수님도 어찌할수 없었었지요.

맞습니다.
익숙한 세일즈 방법에 의하면 이거 아니면 저거, 그것도 아니면 이것, 얼마든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 맞는 시간, 10시가 아니면 12시, 그것도 아니면 내일, 모래,... 언제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결정에서만큼은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 청년이 결단을 하기를 기다리셨겠으나

그러나 결코 그 청년을 잡지 않으시고 그냥 가게 두는 예수님의 그 단호함이 헤이해진 내 마음을 다시
차렷자세로 서게 합니다. 

무엇무엇 때문에 할수 없다는 사람을 너무 쉽게 사람에게 마춰주는 내 방식의 전도는 너무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때는 한번만 믿어봐달라고 애걸하듯이 얘기하는 떄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번만 나와봐 달라, 성경공부 한번만 해봐달라, 장막에 한번만 와봐달라...

주님의 핏값으로 산 복음을 싸구려 팔리지 않는 껌처럼 안살까봐 안달하는 내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이해도 되지 않은 하나님이, 예수님이 오히려 하찮게 적선해드려야만할 불쌍한 대상으로 여겨지지나 않았을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요즘 천정부지로 오르는 금쪽보다도 더 값진 것입니다.  함부로 구걸하듯 애걸해가며 제발 한번만 믿어봐 달라고 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겠습니다.
또 한술 더떠서 말씀을 충분히 듣고도 돌아선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양, 또 교회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양,
떠난자들을 향해 아쉬워하며 다시 또다시 또다시 매달리는 자세도 버려야겠습니다.

그런 아쉬움도 인간적인 미련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나도 목숨걸고 사랑하고
예수님을 버린 자들을 나도 미련없이 버리는 단호한 자세를 갖겠습니다.
그러나 늘 fine line 을 걷는 느낌이 도사리고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복음전파와 전도는 계속해야겠습니다.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주절거렸습니다.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no_profile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불쌍한 영혼을 향하여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히 권고하는 것과,

무조건 붙들어 두려고 매달리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복음의 진수, 구원의 귀중함, 말씀의 절대성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도 어찌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그러합니다.

김사합니다.

홍혜정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홍혜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때로는 무조건 붙들어 두려고 매달린 경우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불쌍한 영혼을 향하여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간절히 권고 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요한님의 댓글

no_profile 노요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더욱 더 담대하게 구원을 선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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