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훈련 4강 4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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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강 아브라함의 하나님
4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최희주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맞이 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과 성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서 나그네의 모습에서도 주님을 발견한듯 합니다.
그리고 그 또한 타향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기 때문에 더욱 더 나그네의 처지를
깊이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그네를 성심을 다해 최상의 음식으로 주님을 대접하듯 대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말 주님의 천사들을 영접했고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라에게 기다리던 자손이 태어날 것이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그네 대접과 비교하여 롯의 형식에 치우친 나그네 대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도시의 생활에 물들어 형식화된 예절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마음이 없는 단지 민족의 풍습인 나그네 대접을 하는 모습입니다.
나그네에게 자기 집에서 하루 밤 묵고
새벽 일찍이 떠나라고 하였고 그들이 거절하자
그제야 조금 더 성의를 보여 나그네를 가장 간단한 무교병으로 대접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천사들은 그 타락한 도시에서
그나마 롯의 그런 대접하는 마음을 높이 사서 그 가족을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도시의 향락에 물들은 그들의 마음은 그 도시를 잊지 못해 망설였고 또,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이런 두 마음을 보면서
제 자신과 한국의 옛 풍습을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도 유대민족처럼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린시절에도 그런 풍습으로 고향 사람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들이고
집에서 묵어가게 하고 또 더 한 경우에는
그들이 타향에서 기반을 잡을 때까지 집에 기거하게 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로 방이 모자란 나의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고향 손님들로 인해 내가 불편을 겪는 것이 아주 귀찮고 짜증이 나서
부모님께 무척 투정을 부렸던 것을 두고 두고 회개하게 합니다.
또 요즈음은 세상이 무섭다 보니
낯선 사람이 벨을 울려도 문도 안 열어 보는 나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는 더 더욱 문을 열기 힘듭니다.
오늘 라디오에서 어떤 선교사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사모님이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시간에
어느 노인이 비를 피해서 그 집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어 맞이했을 때 손님이 주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영어가 부족하여 겨우 ‘school” 이라고 대답했더니
그가 명함을 주고 가면서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가 보았더니
그는 학교의 총장이었고 그 결과 자기의 기도 응답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천사나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부지 불식 간에 찾아오실 수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낯선 사람을 맞이할 만큼 용기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여자라는 한계도 함께 작용을 합니다.
요즈음 세상이 낯선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도움을 청해오는 가까운 이웃에게는 문을 열어 대접하겠습니다.
또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리고 성을 눈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증표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으면 며칠 동안 치유될 때가지 꼼짝을 할 수 없습니다.
눈 앞에 적을 두고 그들이 언제 쳐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복종과 믿음이 아니고는 감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절대 적인 믿음을 요구하시고
우리는 절대적인 순종을 주님 앞에 바쳐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저의 남은 인생을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흔들림 없이 살아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최희주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맞이 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과 성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서 나그네의 모습에서도 주님을 발견한듯 합니다.
그리고 그 또한 타향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기 때문에 더욱 더 나그네의 처지를
깊이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그네를 성심을 다해 최상의 음식으로 주님을 대접하듯 대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말 주님의 천사들을 영접했고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라에게 기다리던 자손이 태어날 것이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그네 대접과 비교하여 롯의 형식에 치우친 나그네 대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도시의 생활에 물들어 형식화된 예절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마음이 없는 단지 민족의 풍습인 나그네 대접을 하는 모습입니다.
나그네에게 자기 집에서 하루 밤 묵고
새벽 일찍이 떠나라고 하였고 그들이 거절하자
그제야 조금 더 성의를 보여 나그네를 가장 간단한 무교병으로 대접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천사들은 그 타락한 도시에서
그나마 롯의 그런 대접하는 마음을 높이 사서 그 가족을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도시의 향락에 물들은 그들의 마음은 그 도시를 잊지 못해 망설였고 또,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이런 두 마음을 보면서
제 자신과 한국의 옛 풍습을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도 유대민족처럼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린시절에도 그런 풍습으로 고향 사람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들이고
집에서 묵어가게 하고 또 더 한 경우에는
그들이 타향에서 기반을 잡을 때까지 집에 기거하게 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로 방이 모자란 나의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고향 손님들로 인해 내가 불편을 겪는 것이 아주 귀찮고 짜증이 나서
부모님께 무척 투정을 부렸던 것을 두고 두고 회개하게 합니다.
또 요즈음은 세상이 무섭다 보니
낯선 사람이 벨을 울려도 문도 안 열어 보는 나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는 더 더욱 문을 열기 힘듭니다.
오늘 라디오에서 어떤 선교사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사모님이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시간에
어느 노인이 비를 피해서 그 집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어 맞이했을 때 손님이 주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영어가 부족하여 겨우 ‘school” 이라고 대답했더니
그가 명함을 주고 가면서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가 보았더니
그는 학교의 총장이었고 그 결과 자기의 기도 응답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천사나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부지 불식 간에 찾아오실 수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낯선 사람을 맞이할 만큼 용기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여자라는 한계도 함께 작용을 합니다.
요즈음 세상이 낯선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도움을 청해오는 가까운 이웃에게는 문을 열어 대접하겠습니다.
또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리고 성을 눈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증표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으면 며칠 동안 치유될 때가지 꼼짝을 할 수 없습니다.
눈 앞에 적을 두고 그들이 언제 쳐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복종과 믿음이 아니고는 감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절대 적인 믿음을 요구하시고
우리는 절대적인 순종을 주님 앞에 바쳐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저의 남은 인생을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흔들림 없이 살아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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