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훈련 창세기 기초 공부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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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성경 공부
기초공부 소감
강 사 : 이 아브라함 목사님
작성자 : 차영희
날 짜 : 8/29/2007
주님이 먼지같은 나를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만드셔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온갖 죄악 속에서 그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그래도 신문 기사에 드러난 흉악범보다는 낮다는 안도감 속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갈 뻔한 나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돌아온 탕자처럼 죄로 더러워진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반지를 끼워주시듯이 의인으로 인치시고, 천국의 상속자로 자녀삼아 주시고 늘 함께 하시겠다고 영원히 변치않는 약속을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와 더욱 가까이 살기 위해서 이렇게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일부러 거스리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절대적인 존재와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책을 많이 읽었지만, 갈수록 어렵기만 하고 현학적, 지적 자만심만 키웠지 정작 아무 해답도 얻지 못하고 나름대로 불교철학 속에서 우주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위대한 법칙을 운행하는 존재를 피상적으로 그렸었습니다. 우주와 자연만물을 움직이는 법칙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즐거워서 수학과 물리학, 천체, 지구 물리학 등 학문속에서 원리로 존재하는 절대자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알기 위해서 많은 철학과 문학책을 읽기도 했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에 관심을 가지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가 가장 말이 안되고 교만한 종교로 보였습니다.
한계가 있는 인간을 모습을 가진 예수님이 절대로 무한하고 추상적인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주변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그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나의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은 내 개인적인 삶의 질곡을 통해서 내가 약해졌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나의 크나큰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서 자의식이 싹튼 시절부터 종교심 즉 절대적인 신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즉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독교의 순 억지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 이 후에도 내 삶은 이 전과 별다를 바 없이 살 때가 너무 많으니 스스로도 참 한심하게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잘 알고 싶어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하나 그리듯이 파고들어 갈 때는 바로 현장에 예수님과 혹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있는 느낌을 가지며 말씀을 듣고 그 때마다 책망과 위로와 기쁨을 느꼈으나 나의 현실적인 삶은 또 다시 이전의 그 자리에 있곤했습니다. 온갖 종교적 치장으로 사는 바라새인이 바로 나이며, 탕자가 바로 나이며,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바로 나이며......
내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어떤 모습이신지, 어떤 성품을 가지셨는지 이제 더욱 명료하게 알기 시작했습니다.
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신약)을 통해서만 바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그대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Ⅱ.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만드신 하나님은 천지보다 크시고 그 밖에 존재하십니다. 너무 광대하시고 커서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1:1)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즉 인격체이십니다. 우주생성의 원리의 근원이시므로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말씀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격적으로 교제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바람, 공기, 호흡, 생기 등과 같은 말로 쓰입니다.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며,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합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며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나는 영적인 아버지와의 교제와 공급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기뻐하시고, 사랑으로 교제하기 위해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나와의 사랑의 교제를 심히 기뻐하십니다.
Ⅲ.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 (눅15:1-32)
1. 한 마리 잃은 양 (1-7)
예수님이 함께 한 세리과 죄인은 그 당시에 세상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는 더러운 인간들이었습니다. 세리는 악독하고 악랄하여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오늘 날의 조폭들과 같은 존재라 죄인과 마찬가지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은 거지, 창녀, 건달, 장애인을 포함한 범죄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들 모두보다 더 더러운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당시의 영적인 지도자이고 모범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의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심정과 같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과 똑같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친듯이 양을 찾아 나섭니다. 대강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습니다. 나머지 99마리가 있다고 하여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어느 하나도 지옥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으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이기 때문에 끝까지 찾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으십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은 목자는 너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살아 돌아 왔을 때의 아버지의 기쁜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그 보다 더 기쁜 일이 없습니다.
2. 잃어버린 은전(8-01)
그 당시에는 은전 열 개로 한 묶음을 하여 귀중한 장식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나머지가 다 의미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온 집안을 구석구석 쓸고 샅샅이 찾습니다. 찾을 때가지 포기하지 않고 찾으려는 집념을 가지고 찾습니다. 그 하나가 너무가 소중하기 때문에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잃어버렸던 은전을 찾으면, 너무나 기뻐서 온 이웃을 불러서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찾을 때까지 찾으십니다. 한 영혼은 찾으시면 매우 기뻐하십니다. 온 우주와 함께 기뻐하십니다.
3. 집을 나간 작은 아들(11-24)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제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아버지의 돈을 다 챙겨서 집을 나갔습니다. 나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아버지의 주권이 싫어서 간섭이 싫어서 내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작은 아들은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아마도 돌아오는 도중에 돈을 주우면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나도 집 나간 탕자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를 제쳐두고 내 마음대로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뭔가 일이 생각한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다시 아버지를 찾곤 합니다.
교회에도 아버지를 떠난 마음으로 단지 위로와 교제를 필요로 하여 나온다면 언제든지 그 것이 채워지면 다시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데는 아무 준비도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다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 아버지께 무슨 말을 할까를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에 피흘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먼저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시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온 이웃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 잔치를 벌입니다. 탕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줍니다. 상속자로 새롭게 확인해 주십니다. 나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상속자입니다. 품꾼이 아닙니다.
이렇게 최고의 대우를 받은 작은 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나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 대속되었으니, 이제는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최고의 대우를 하시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으니 아버지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다시 한번 느낍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아야 제대로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방법대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집에 있는 큰 아들 (25-32)
집에서 착실하게 아버지와 함께 살던 큰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동생이 돌아온 기쁨에 동참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기뻐하시고 잔치까지 벌이시는 것에 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자기의 의가 자기를 옭아매고 있으므로 아버지와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아버지를 섬겼지만 아버지의 깊은 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큰 아들이었더라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나도 신앙적인 바리새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자기 의를 가지고 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에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며 나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일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초공부 소감
강 사 : 이 아브라함 목사님
작성자 : 차영희
날 짜 : 8/29/2007
주님이 먼지같은 나를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만드셔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온갖 죄악 속에서 그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그래도 신문 기사에 드러난 흉악범보다는 낮다는 안도감 속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갈 뻔한 나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돌아온 탕자처럼 죄로 더러워진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반지를 끼워주시듯이 의인으로 인치시고, 천국의 상속자로 자녀삼아 주시고 늘 함께 하시겠다고 영원히 변치않는 약속을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와 더욱 가까이 살기 위해서 이렇게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일부러 거스리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절대적인 존재와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책을 많이 읽었지만, 갈수록 어렵기만 하고 현학적, 지적 자만심만 키웠지 정작 아무 해답도 얻지 못하고 나름대로 불교철학 속에서 우주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위대한 법칙을 운행하는 존재를 피상적으로 그렸었습니다. 우주와 자연만물을 움직이는 법칙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즐거워서 수학과 물리학, 천체, 지구 물리학 등 학문속에서 원리로 존재하는 절대자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알기 위해서 많은 철학과 문학책을 읽기도 했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에 관심을 가지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가 가장 말이 안되고 교만한 종교로 보였습니다.
한계가 있는 인간을 모습을 가진 예수님이 절대로 무한하고 추상적인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주변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그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나의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은 내 개인적인 삶의 질곡을 통해서 내가 약해졌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나의 크나큰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서 자의식이 싹튼 시절부터 종교심 즉 절대적인 신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즉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독교의 순 억지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 이 후에도 내 삶은 이 전과 별다를 바 없이 살 때가 너무 많으니 스스로도 참 한심하게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잘 알고 싶어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하나 그리듯이 파고들어 갈 때는 바로 현장에 예수님과 혹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있는 느낌을 가지며 말씀을 듣고 그 때마다 책망과 위로와 기쁨을 느꼈으나 나의 현실적인 삶은 또 다시 이전의 그 자리에 있곤했습니다. 온갖 종교적 치장으로 사는 바라새인이 바로 나이며, 탕자가 바로 나이며,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바로 나이며......
내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어떤 모습이신지, 어떤 성품을 가지셨는지 이제 더욱 명료하게 알기 시작했습니다.
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신약)을 통해서만 바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그대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Ⅱ.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만드신 하나님은 천지보다 크시고 그 밖에 존재하십니다. 너무 광대하시고 커서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1:1)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즉 인격체이십니다. 우주생성의 원리의 근원이시므로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말씀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격적으로 교제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바람, 공기, 호흡, 생기 등과 같은 말로 쓰입니다.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며,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합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며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나는 영적인 아버지와의 교제와 공급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기뻐하시고, 사랑으로 교제하기 위해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나와의 사랑의 교제를 심히 기뻐하십니다.
Ⅲ.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 (눅15:1-32)
1. 한 마리 잃은 양 (1-7)
예수님이 함께 한 세리과 죄인은 그 당시에 세상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는 더러운 인간들이었습니다. 세리는 악독하고 악랄하여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오늘 날의 조폭들과 같은 존재라 죄인과 마찬가지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은 거지, 창녀, 건달, 장애인을 포함한 범죄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들 모두보다 더 더러운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당시의 영적인 지도자이고 모범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의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심정과 같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과 똑같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친듯이 양을 찾아 나섭니다. 대강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습니다. 나머지 99마리가 있다고 하여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한 마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어느 하나도 지옥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으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이기 때문에 끝까지 찾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으십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은 목자는 너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살아 돌아 왔을 때의 아버지의 기쁜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그 보다 더 기쁜 일이 없습니다.
2. 잃어버린 은전(8-01)
그 당시에는 은전 열 개로 한 묶음을 하여 귀중한 장식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나머지가 다 의미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온 집안을 구석구석 쓸고 샅샅이 찾습니다. 찾을 때가지 포기하지 않고 찾으려는 집념을 가지고 찾습니다. 그 하나가 너무가 소중하기 때문에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잃어버렸던 은전을 찾으면, 너무나 기뻐서 온 이웃을 불러서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찾을 때까지 찾으십니다. 한 영혼은 찾으시면 매우 기뻐하십니다. 온 우주와 함께 기뻐하십니다.
3. 집을 나간 작은 아들(11-24)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제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아버지의 돈을 다 챙겨서 집을 나갔습니다. 나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아버지의 주권이 싫어서 간섭이 싫어서 내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작은 아들은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아마도 돌아오는 도중에 돈을 주우면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나도 집 나간 탕자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를 제쳐두고 내 마음대로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뭔가 일이 생각한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다시 아버지를 찾곤 합니다.
교회에도 아버지를 떠난 마음으로 단지 위로와 교제를 필요로 하여 나온다면 언제든지 그 것이 채워지면 다시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데는 아무 준비도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다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 아버지께 무슨 말을 할까를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에 피흘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먼저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시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온 이웃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 잔치를 벌입니다. 탕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줍니다. 상속자로 새롭게 확인해 주십니다. 나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상속자입니다. 품꾼이 아닙니다.
이렇게 최고의 대우를 받은 작은 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나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 대속되었으니, 이제는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최고의 대우를 하시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으니 아버지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다시 한번 느낍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아야 제대로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방법대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집에 있는 큰 아들 (25-32)
집에서 착실하게 아버지와 함께 살던 큰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동생이 돌아온 기쁨에 동참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기뻐하시고 잔치까지 벌이시는 것에 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자기의 의가 자기를 옭아매고 있으므로 아버지와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아버지를 섬겼지만 아버지의 깊은 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큰 아들이었더라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나도 신앙적인 바리새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자기 의를 가지고 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에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며 나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일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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