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훈련 제1강 천지창조 공부를 마치고 - 유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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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천지창조 공부를 마치고
1. Prologue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에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 라고 한다. 이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배우며 다시 살고 싶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과 계명을 완수하여 창조의 질서를 지켜야 하는 피조물이다” 라고, 하지만 주신 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이 없이 삼라만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며 지키라는 창조주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무엇이 주신 계명의 구체적 실천을 가로막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먹지마라 하신것을 찾아내서 구태여 먹고야마는 그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나름대로 악용하거나 의지적몰이해로 말미암아 천박하게 해석하려고 밤새워 노력한다.
창조주 하나님만 없으면 엄청나게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속에서
중세기를 암흑기로 전제하고는 휴머니즘이라는 포장으로 인본주의 개념을 삽입 인간의 행북추구권을 외침다. 그 외침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크게 주장 되어 질것으로 예견된다.
다음은 또 무엇인가? 상상 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언젠가는 복제 인간도 등장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책임하다. 그 이후 결과에 대한 예측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진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새로운 개념 새로운 스타일 자체에 대한 세속적 스타 우상주의, 한 분야의 고도한 집착과 지나친 지적 호기심의 부산물은 아닐런지?
모파상은 여자의일생에서 주인공 “노라”를 내보내며 많은 박수를 받는다. 그 이후 수많은 “노라”들은 쫓아서 집을 나간다. 그러나 모파상은 그 이후 아무말도 없이 침묵할 뿐이다.
인격적으로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로하면 잊을 것 같아 늘 볼 수 있는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주시고 “나는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너는 나의 피조물임을 명심하고 내가 너와 늘 함께 할것이다” 라는 말씀을 배운 이시간
限界速度라는 개념이 생각나는 것이 우연일까? 한계속도란 어떤 구조물을 회전시킬때 일정 회전속도를 넘으면 그 재료가 파괴되는 것과 같은 극한의 속도를 말한다. 한계속도를 목표로 치닫은 우리는
그것을 달성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되지는 않을런지 염려하며 다시한번 외쳐본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의 질서를 지킨다.
둘째 선량한 관리자로서 사명과 계명을 완수한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심각하게 기억하며 그 한계를 지킨다.
2.경작할 사람
- 모든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으셨지만 경작할 사람이 없으므로 수증기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적막강산 절대 고요속에 전혀 의미가 없었다.
- 하나님은 당신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번성하여 정복하라고 하셨다. 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보시기에 심히 좋으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야 그 이전의 모든 창조세계가 몸짓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느끼셨던 것이다.
- 밤잠을 설치며 별들을 노래하는 내가 있기에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내가 있기에 그 꽃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창조주 하나님은 결국 이전의 모든 창조 세계에 더하여 결정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창조의 역사를 마무리 하셨다.
- 창조의 질서와 주권을 인식하는 대목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인 영과 물질적속성을 겸비한 이원적 존재로서의 나는 우연한 존재가 아님은 물론, 사명인으로서 삶을 살아드려야 할 책임을 느낀다.
- 하나님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3.예비하신 낙원
- 내 노력으로 내 의지로 이룩하고 만들어낸 보금자리가 아니다.
- 밤새워 찾아 헤매이던 저 언던 넘어의 파랑새 우는 행복한 쉼터는 더욱이 아니다.
- 아니 행복한 쉼터, 보금자리, 파라다이스는 맞는데 그곳을 내가 찾아가거나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나를 두신 곳 에덴의 동쪽 동산인 것이다.
- 그분의 주권적 사랑을 느낀다.
지금 내가 있는 가정, 교회, 일터 나와 관계된 모든 환경과 주님이 허락하신 곳이 에덴동산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불만스러운 것이 왜 없으련만 이제는 내가 있는 이곳 더이상 루스가 아니다 벧엘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예쁘기만한 나의 돕는배필은 물론 허락하신 두아이 함께하는 에덴 동산이다. 벧엘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4.생명의 긴 탯줄
-하나님의 음성이다. “네가 필요에 의해 나를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를 자유의지를 가진 나의 사랑하는 대리인으로 창조한 절대 주권자 하나님이다” 혹시 네기 이 사실을 잊을것 같아 언제나 네가 볼 수 있을 자리-가장 잘 보이는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심어 놓았으니 이를 먹지 말라, 늘 보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을 기억하라.
-나를 두신 에덴 동산은 더이상 환경이 좋아서 여건이 좋아서 에덴이 아니라, 언제나 볼 수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어서 에덴인 것이다.
-선악과는 나를 구속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오히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긴 생명의 탯줄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1. Prologue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에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 라고 한다. 이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배우며 다시 살고 싶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과 계명을 완수하여 창조의 질서를 지켜야 하는 피조물이다” 라고, 하지만 주신 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이 없이 삼라만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며 지키라는 창조주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무엇이 주신 계명의 구체적 실천을 가로막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먹지마라 하신것을 찾아내서 구태여 먹고야마는 그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나름대로 악용하거나 의지적몰이해로 말미암아 천박하게 해석하려고 밤새워 노력한다.
창조주 하나님만 없으면 엄청나게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속에서
중세기를 암흑기로 전제하고는 휴머니즘이라는 포장으로 인본주의 개념을 삽입 인간의 행북추구권을 외침다. 그 외침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크게 주장 되어 질것으로 예견된다.
다음은 또 무엇인가? 상상 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언젠가는 복제 인간도 등장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책임하다. 그 이후 결과에 대한 예측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진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새로운 개념 새로운 스타일 자체에 대한 세속적 스타 우상주의, 한 분야의 고도한 집착과 지나친 지적 호기심의 부산물은 아닐런지?
모파상은 여자의일생에서 주인공 “노라”를 내보내며 많은 박수를 받는다. 그 이후 수많은 “노라”들은 쫓아서 집을 나간다. 그러나 모파상은 그 이후 아무말도 없이 침묵할 뿐이다.
인격적으로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로하면 잊을 것 같아 늘 볼 수 있는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주시고 “나는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너는 나의 피조물임을 명심하고 내가 너와 늘 함께 할것이다” 라는 말씀을 배운 이시간
限界速度라는 개념이 생각나는 것이 우연일까? 한계속도란 어떤 구조물을 회전시킬때 일정 회전속도를 넘으면 그 재료가 파괴되는 것과 같은 극한의 속도를 말한다. 한계속도를 목표로 치닫은 우리는
그것을 달성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되지는 않을런지 염려하며 다시한번 외쳐본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의 질서를 지킨다.
둘째 선량한 관리자로서 사명과 계명을 완수한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심각하게 기억하며 그 한계를 지킨다.
2.경작할 사람
- 모든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으셨지만 경작할 사람이 없으므로 수증기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적막강산 절대 고요속에 전혀 의미가 없었다.
- 하나님은 당신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번성하여 정복하라고 하셨다. 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보시기에 심히 좋으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야 그 이전의 모든 창조세계가 몸짓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느끼셨던 것이다.
- 밤잠을 설치며 별들을 노래하는 내가 있기에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내가 있기에 그 꽃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창조주 하나님은 결국 이전의 모든 창조 세계에 더하여 결정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창조의 역사를 마무리 하셨다.
- 창조의 질서와 주권을 인식하는 대목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인 영과 물질적속성을 겸비한 이원적 존재로서의 나는 우연한 존재가 아님은 물론, 사명인으로서 삶을 살아드려야 할 책임을 느낀다.
- 하나님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3.예비하신 낙원
- 내 노력으로 내 의지로 이룩하고 만들어낸 보금자리가 아니다.
- 밤새워 찾아 헤매이던 저 언던 넘어의 파랑새 우는 행복한 쉼터는 더욱이 아니다.
- 아니 행복한 쉼터, 보금자리, 파라다이스는 맞는데 그곳을 내가 찾아가거나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나를 두신 곳 에덴의 동쪽 동산인 것이다.
- 그분의 주권적 사랑을 느낀다.
지금 내가 있는 가정, 교회, 일터 나와 관계된 모든 환경과 주님이 허락하신 곳이 에덴동산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불만스러운 것이 왜 없으련만 이제는 내가 있는 이곳 더이상 루스가 아니다 벧엘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예쁘기만한 나의 돕는배필은 물론 허락하신 두아이 함께하는 에덴 동산이다. 벧엘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4.생명의 긴 탯줄
-하나님의 음성이다. “네가 필요에 의해 나를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를 자유의지를 가진 나의 사랑하는 대리인으로 창조한 절대 주권자 하나님이다” 혹시 네기 이 사실을 잊을것 같아 언제나 네가 볼 수 있을 자리-가장 잘 보이는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심어 놓았으니 이를 먹지 말라, 늘 보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을 기억하라.
-나를 두신 에덴 동산은 더이상 환경이 좋아서 여건이 좋아서 에덴이 아니라, 언제나 볼 수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어서 에덴인 것이다.
-선악과는 나를 구속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오히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긴 생명의 탯줄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