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두목의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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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두목의 전도
김한의원 원장 김연수장로의 간증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2005년 7월 13일자
"깡패의 아들 기적적 치료뒤 손님 붐벼"
개업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변에 한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처음엔 10∼20명 정도가 찾았느나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진료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호박 감자 쌀 등을 진료비 대신 주고 치료를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2시쯤 되었는데 ‘쨍그렁’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깨진 창문으로 웬 사람이 들어오면서 거칠게 말을 토해냈다.
“야,원장×× 나와.” 난 겁이 났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난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 뒤 담대하게 대답했다.
“접니다.”
“돈 벌었으면 내놔!”
“이것 뿐입니다.”
“쪼다 같이 그렇게 공부해서 돈을 이 정도밖에 못 버냐? 쯧쯧….”
다음날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당시 신림동 깡패조직의 두목이었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돈 내놔. 바보 같은 놈.”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말을 내뱉었다.
이같이 두번씩이나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나는 한의원을 이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장소를 물색한 끝에 용산 지역의 한 집을 구두로 가계약하고 곧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7월말쯤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는데 집의 초인종이 쉴새없이 울려댔다.
“누구십니까?”
“원장님,접니다.”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니 바로 그 깡패였다. ‘오늘 또 임자 만났구나.
떠나려고 했는데 잘됐다.
하나님,완전히 이곳을 떠나라는 사인으로 알겠습니다.
’ 나는 그때 그와의 지긋지긋한 만남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사뭇 달랐다.
생후 4개월쯤 돼보이는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원장님,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시면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는 경기를 일으킨 아이를 안고 이곳저곳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밤 10시부터 병원을 전전했지만 못 고친다고 합니다.
원장님,제발 이 아이 좀 고쳐주세요.”
“하나님,지금까지 역경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셨듯이 또 한번 기적으로 이끌어주세요.
” 이렇게 기도를 드린 뒤 그 아이를 진찰하고 침 두 대를 놓자 경기가 멎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자 그는 아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더니 천하의 깡패인 그도 새끼 사랑만큼은 대단했다.
다음날 아침 그 깡패 내외가 나를 찾아왔다.
한의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무릎을 꿇고 대뜸 “형님,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명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야’가 변해 ‘원장님’으로,‘원장님’이 변해 ‘형님’으로 바뀐 것이다.
“특별한 거 없네. 자네 교회 나가게.”
그 주일에 그는 정말로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형님,교회라는 갈 곳이 못되네요.
죄 지은 사람은 나인데 왜 그렇게 울고 짜고 그러는지 더 이상 나가지 않겠어요.
진짜 울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까?”
그는 얼마 후 깡패세계에서 손을 털고 경기도 성남에서 자리잡고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키워 전도사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현재 교회 권사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울 뿐이다.
이 사건 뒤 한의원은 사람들로 더욱 붐비게 됐다.
김한의원 원장 김연수장로의 간증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2005년 7월 13일자
"깡패의 아들 기적적 치료뒤 손님 붐벼"
개업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변에 한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처음엔 10∼20명 정도가 찾았느나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진료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호박 감자 쌀 등을 진료비 대신 주고 치료를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2시쯤 되었는데 ‘쨍그렁’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깨진 창문으로 웬 사람이 들어오면서 거칠게 말을 토해냈다.
“야,원장×× 나와.” 난 겁이 났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낼 수 없었다.
난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 뒤 담대하게 대답했다.
“접니다.”
“돈 벌었으면 내놔!”
“이것 뿐입니다.”
“쪼다 같이 그렇게 공부해서 돈을 이 정도밖에 못 버냐? 쯧쯧….”
다음날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당시 신림동 깡패조직의 두목이었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돈 내놔. 바보 같은 놈.”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말을 내뱉었다.
이같이 두번씩이나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나는 한의원을 이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장소를 물색한 끝에 용산 지역의 한 집을 구두로 가계약하고 곧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7월말쯤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는데 집의 초인종이 쉴새없이 울려댔다.
“누구십니까?”
“원장님,접니다.”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니 바로 그 깡패였다. ‘오늘 또 임자 만났구나.
떠나려고 했는데 잘됐다.
하나님,완전히 이곳을 떠나라는 사인으로 알겠습니다.
’ 나는 그때 그와의 지긋지긋한 만남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사뭇 달랐다.
생후 4개월쯤 돼보이는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원장님,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시면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는 경기를 일으킨 아이를 안고 이곳저곳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밤 10시부터 병원을 전전했지만 못 고친다고 합니다.
원장님,제발 이 아이 좀 고쳐주세요.”
“하나님,지금까지 역경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셨듯이 또 한번 기적으로 이끌어주세요.
” 이렇게 기도를 드린 뒤 그 아이를 진찰하고 침 두 대를 놓자 경기가 멎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자 그는 아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더니 천하의 깡패인 그도 새끼 사랑만큼은 대단했다.
다음날 아침 그 깡패 내외가 나를 찾아왔다.
한의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무릎을 꿇고 대뜸 “형님,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명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야’가 변해 ‘원장님’으로,‘원장님’이 변해 ‘형님’으로 바뀐 것이다.
“특별한 거 없네. 자네 교회 나가게.”
그 주일에 그는 정말로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형님,교회라는 갈 곳이 못되네요.
죄 지은 사람은 나인데 왜 그렇게 울고 짜고 그러는지 더 이상 나가지 않겠어요.
진짜 울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까?”
그는 얼마 후 깡패세계에서 손을 털고 경기도 성남에서 자리잡고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키워 전도사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현재 교회 권사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울 뿐이다.
이 사건 뒤 한의원은 사람들로 더욱 붐비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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