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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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
영원한 문화인, 통섭(統攝)의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73·사진) 전 문화부 장관이 개신교에 귀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까지 그는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 왔으며, 종교를 논하였으나 신앙인이 아니었고, 성경을 읽었으나 열정의 시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방송에서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와 1년간 성서를 놓고 대담하면서 늘 제3자, 객관적 시각으로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었다.
그런 이 전 장관이 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래 전부터 지성인으로서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영적 측면에서 기독교에 다가가고자 한다"며 "7월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그 동안 나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지식을 통해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다"며 "이제 그런 부분들을 영적인 차원에서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기독교를 선택하기까지는 딸 민아(47) 씨에게 지난 15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민아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었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던 민아 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상샘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아들이 특수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나면서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약물치료를 요구하는 학교와의 싸움, 기도 끝에 변호사 사무실까지 문을 닫고 아이 치료를 위해 무조건 하와이로 건너간 사연,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미국인 학교의 목사 앞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어린양을 받아 달라”고 통곡했던 일, 하와이에서 자신의 망막이 파열돼 시력을 잃었던 기억,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던 일….
“아버님이 하와이에 오셨는데 제가 눈이 안보여 설거지를 못하자 맘이 몹시 상하셨어요.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수술을 못한다.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결국 한국에 왔지요. 한국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았는데 망막이 나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의사가 ‘혹시 미국 사람이 영어를 빨리 해서 못 알아들은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민아 씨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새벽기도에서 공개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30여 분 동안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교회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 전 장관은 "딸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가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딸이 오랫동안 믿어온 하나님은 기쁨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줬다"면서 "딸이 믿는 대상에 대해 지성이 아닌 경배의 대상으로 다가가고 그런 믿음을 딸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는 식의 기복적 차원에서 기독교를 믿으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동안 나는 지식인으로서 기독교의 세계를 많이 접해왔다"며 "교회를 나가지 않은 것은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야 하고 교리문답을 외워야 하는 등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제도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때가 되면 평생 지성을 추구해온 지식인이 영성의 세계로 발을 옮긴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고 싶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세례를 받은 것도,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C3TV 김경수 기자(bindl@c3tv.com)
이어령 교수 “네가 본 빛을 나에게도…”
딸의 치유 보며 신앙에 다가선 사연 간증 [2007-07-02 05:57]
- ▲이화여대 이어령 명예교수
최근 딸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화여대 이어령 명예교수(73)가 기독교에 귀의한 사연을 밝혔다. 그는 월간잡지 빛과소금 7월호에서 “‘내 딸이 시력을 잃게 되어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며 “미국 하와이의 한 작은 교회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민아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그의 기도는 겸허하고 절실했다.
1992년, 이 명예교수의 딸 민아 씨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유치원에 들어간 민아 씨의 작은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판명나면서 민아 씨는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몸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아들의 일까지 생기자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눈이 점차 흐릿해졌다. 망막이 손상돼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명예교수 부부는 급히 하와이로 건너갔다. 눈이 안 보여 설거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딸을 보고 두 부부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이 명예교수는 아이들을 봐줄 테니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딸에게 요청했다.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민아 씨가 점차 시력을 회복하더니 정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망막이 다 나았다고 진단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러한 기적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며 “그 이유로 첫째, 기적은 구제의 표시이지 목적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예수께서는 ‘기적이다’라고 떠들면서 믿으러 오는 사람들을 아주 슬픈 눈으로 쳐다 보셨습니다. 진짜 ‘만나’를 보라고. 영원히 죽지 않는 빵을 보라고 말입니다.”
그 동안 여러 언론매체들의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해 온 이 명예교수는 “내 신앙이 외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염려됐다”며 “다락방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 자신의 신앙 변화를 매스컴에 나가 떠드는 것은 외식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오는 7월 24일 온누리교회 주최로 열리는 ‘일본 러브소나타 집회’에서 강연을 맡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의 지성인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그가 이번엔 일본문화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역설할 예정이다.
한국=김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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