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이후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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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am씨가 1950년대에 촬영한 칼러사진 ♣
소시 장의 풍경입니다....
Adam 에게 인상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 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 다.
과연 장 마당 가득 찬 사람들 모두 흰 옷이군요
이 사 진은 Adam 할아버지의 집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입니다.
전쟁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없이 벌거벗은 모습이군 요....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 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 다.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 다.
붙어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의 모습입니 다.. 붙어있는 판자집들,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 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 후의 모 습.
Adam의 기억하나는 그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 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을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 습니다
사실 지금은 70대 초반은 되었을 우리들의 모습들 입니다
한국에 갔을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이라 합니다. 이후 몇나라를 더 돌아 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수업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 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거라며 웃어주었습니 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 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 다만,
블로그 한페이지에 올릴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장 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 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 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 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요....
Jeep 찝 차를 타고 가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때 눈빛이 강렬하군 요...
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 다...
고아가 아닌듯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군 요....^^;
Adam의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 요....
Adam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깊었다고 합니 다...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 집니 다...
신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친 것 없는 벌거벗은 아 이.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 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그당시 보기 드물었을거 같은 직업여성이군 요.....
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 요...^^;
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은 데...
그 당시에는 남의 것 슬적 하는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 지 는군요...
서양 자동차와 서양 아가씨의 모습에 동네아저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 요....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 요....
그래도 저기 계신분들은 그당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이겠군 요..
어딘지 는...
60트럭과 디자인은 같은데...
저도 군대시절 운전 병이라 60몰았던 기억이...(제3야수교출신 ㅡㅡ;)
1954 대구에서 2007 Galveston 으로..
KOREA 2007/02/09 17:29 참 정신없던 지난 몇일 이었습니 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 오던 한적한 제 블로그를 들어간 3일전
믿을수 없는 방문횟 수에 네이버에 오류가 생겼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 다.
인터넷 신문에 제 블 로그가 올라간 것을 알게 되었 고.....
첫날 2500명 이상의 사람들....
둘째날 1500명 이상 의 사람들이 찾아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말못할 감정을 어설픈 제 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 준 것입니다. 수많은 방문과 댓 글...
다행이 악플하나 없 는 댓글과 Adam선생님에 대한 감사 인 사,
사진을 올린 저에 대 한 격려로 아내와 저는 많이 흐믓해 했습니 다.
그 와중 대구의 매일 신문과 대구KBS에서 연락이 왔 고...
먼저 저에게 연락을 하신 매일신문의 사진부 안기자님에게
사진과 내용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 보기 힘든 우리나 라의 근대사 사진, 더군다나 컬러인 사 진...
맘 같아서는 1954년 이후 한국을 잘 모르시는 Adam선생님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었으 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 지만 아직 학생 신분인 저의 입장이......ㅡ ㅡ;
한국사람의 방문이 많지 않은 이곳 Galveston에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 여주고 싶으셨고,
한국의 발전을 보고 듣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할수 있었던건 몇장의 최근 한국 사진과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짧은 홍보 영상물을 DVD에 녹화해 댁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불싸...모뎀을 쓰 시고 계셨습니다...
한페이지 보는데 10 분 이상....ㅡㅡ;
30여 개국을 방문하 셨다고 합니다.
주로 1953부터 Galveston에 온 1967년 까지 전 세계를 다녀보신듯 합니 다.
어르신들이 쓴 갓이 말꼬리 (말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시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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