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집을 샀습니다.(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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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월에 목회를 위해서 출발하면서 그 때 저희가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 세상에서 목회자로 사는 한 그 어떤 종류의 부동산도 가지지 말고 홀가분하게 살자고 결단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내어주면서 피아노를 비롯한 모든 가재도구 역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책과 성경공부 교재들, 이불, 옷가지, 전기 밥솣과 약간의 부엌살림만을 싣고 중가주 몬트레이라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로부터 셋집을 전전하며 조금도 불평 없이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는 은퇴를 대비하여 영원한 내 아버지집인 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노인아파트에 들어가 살 것을 계획하고 아내와도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저의 아내가 작은 소원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조그마할망정 깨끗한 부엌과 화실을 할 만한 공간이 있는 집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목회자의 아내로서 여러 가지 말로 다할 수 없이 수고한 아내를 생각할 때 마음이 저려왔지만, 주님나라 밖에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저로서는 다만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정말 막연하기만한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여보,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우리의 작은 수고를 기억하시니, 천국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도 무
엇인가 상을 주시리라 믿어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집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의 잔디밭이 있
는 최소한 방 세개 화장실 2개짜리 집 정도는 주시겠지요. 그러면 방 하나는 나의 서재로 또 다른 하
나는 당신이 화실로 쓰면 되겠지요. ...” 이런 저의 말에 아내는 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허탈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입니다.
은퇴가 가까워 오면서 결국 노인아파트로 이사를 들어갔습니다. 전체면적이 533 수퀘어피트 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 되지 않은 가구인데도 남은 공간이 너무나 좁은 나머지 우리 둘이 서로 부딛칠 정도의 크기 이었습니다. 급기야 아내는 집에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면서 다시 직장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아내의 부모님께서 전혀 예기치 않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께서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서 말년을 보내기로 하셨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집을 장만하라고 한화로 5,000만원(미화 45,000불 정도)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뜻밖이었고 꿈구는듯 한 일이었습니다.
정신 차릴 시간도 없이 바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지금 이사 온 이 집을 우연히,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게 되었지요. 방 네 개 화장실 세개에다가 부엌을 깨끗이 리모델 했고, 또 화실이 따로 있고 수영장이 있고 적당한 크기의 잔디밭이 있는 집입니다.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였지만 망서릴 것도 없이 바로 결정하고 수속에 들어갔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과연 기적적으로 에스크로를 마칠 수 있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어려운 여건을 형통하게 하셔서 결국 이루어 내셨습니다.
2011년 5월 27일에 이사를 들어왔으니, 꼭 30년 만에 다시 집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아내의 작은 소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셨다가 때가 되매 부족한 저희들에게 위로와 상급으로 주셨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입니다. 이것은 과연 기적입니다.
막상 새집에 이사와 보니 참으로 편안하고 마음조차 넉넉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지난 30년동안 광야를 떠돌다가 비로소 내 집에 안주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느낀 감회가 과연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기도 했구요. 끝날에 주님나라에서는 과연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할지 아주 조금은 실감이 나는 듯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친히 이루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집으로 이사들어 오기까지 홍혜정자매님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수고해 주신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집을 지니고 있는 동안 주님께 기쁨이 되는 일에 쓰임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집을 내어주면서 피아노를 비롯한 모든 가재도구 역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책과 성경공부 교재들, 이불, 옷가지, 전기 밥솣과 약간의 부엌살림만을 싣고 중가주 몬트레이라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로부터 셋집을 전전하며 조금도 불평 없이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는 은퇴를 대비하여 영원한 내 아버지집인 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노인아파트에 들어가 살 것을 계획하고 아내와도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저의 아내가 작은 소원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조그마할망정 깨끗한 부엌과 화실을 할 만한 공간이 있는 집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목회자의 아내로서 여러 가지 말로 다할 수 없이 수고한 아내를 생각할 때 마음이 저려왔지만, 주님나라 밖에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저로서는 다만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정말 막연하기만한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여보,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우리의 작은 수고를 기억하시니, 천국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도 무
엇인가 상을 주시리라 믿어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집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의 잔디밭이 있
는 최소한 방 세개 화장실 2개짜리 집 정도는 주시겠지요. 그러면 방 하나는 나의 서재로 또 다른 하
나는 당신이 화실로 쓰면 되겠지요. ...” 이런 저의 말에 아내는 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허탈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입니다.
은퇴가 가까워 오면서 결국 노인아파트로 이사를 들어갔습니다. 전체면적이 533 수퀘어피트 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 되지 않은 가구인데도 남은 공간이 너무나 좁은 나머지 우리 둘이 서로 부딛칠 정도의 크기 이었습니다. 급기야 아내는 집에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면서 다시 직장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아내의 부모님께서 전혀 예기치 않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께서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서 말년을 보내기로 하셨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집을 장만하라고 한화로 5,000만원(미화 45,000불 정도)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뜻밖이었고 꿈구는듯 한 일이었습니다.
정신 차릴 시간도 없이 바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지금 이사 온 이 집을 우연히,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게 되었지요. 방 네 개 화장실 세개에다가 부엌을 깨끗이 리모델 했고, 또 화실이 따로 있고 수영장이 있고 적당한 크기의 잔디밭이 있는 집입니다.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였지만 망서릴 것도 없이 바로 결정하고 수속에 들어갔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과연 기적적으로 에스크로를 마칠 수 있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어려운 여건을 형통하게 하셔서 결국 이루어 내셨습니다.
2011년 5월 27일에 이사를 들어왔으니, 꼭 30년 만에 다시 집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아내의 작은 소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셨다가 때가 되매 부족한 저희들에게 위로와 상급으로 주셨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입니다. 이것은 과연 기적입니다.
막상 새집에 이사와 보니 참으로 편안하고 마음조차 넉넉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지난 30년동안 광야를 떠돌다가 비로소 내 집에 안주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느낀 감회가 과연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기도 했구요. 끝날에 주님나라에서는 과연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할지 아주 조금은 실감이 나는 듯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친히 이루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집으로 이사들어 오기까지 홍혜정자매님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수고해 주신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집을 지니고 있는 동안 주님께 기쁨이 되는 일에 쓰임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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