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이삭이 결혼을 한다네요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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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이 동요를 들으며 한국의 어느 갯마을 초가 정경과 그 집 툇마루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그려보노라면 평화로워 보이기도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에 아기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생명선과 같은 굴따기를 버려두고 황급히 달려오는 모정이 가슴에 깊은 골을 내며 메아리칩니다. 호구지책이 최대의 과제이었던, 그야말로 먹고살기조차 힘겨웠던 시절에 한국의 어느 어촌의 풍경을 그린 동요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나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비록 환경은 다르지만 아기생각에 모랫길을 허둥지둥 치달려 오는 엄마의 심정을 가슴 절절히 느낀적이 있어서입니다.
내 생애에 첫 목회지는 군부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본래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듯이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정문제(domestic violation) 때문에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야 했던 것이 다반사이었습니다.
이런 일로 연락을 받는 것은 대개 밤늦은 시각이기 마련이며, 짧게는 한두시간 때로는 서너 시간 씩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고,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때 한살이었던 여호수아와 여섯 살짜리 이삭을 다 데리고 갈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심한 경우에는 몸싸움을 뜯어 말리거나 더러는 칼부림의 현장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밤에 누구를 당장 불러올 수도 없고... 전화로는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결국 불법인줄 알면서도, 마음이 심히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지역 대로변에 엤는 허술한 집에 이삭과 여호수아를 남겨 두고 무슨 구급차라도 되는 양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깊어가는 밤이 아니면 짙은 안개로 뿌연 바닷가의 새벽이 오기까지 그런대로 다독이고, 수습하고,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또 다급해 지기마련인데, 도중에 싸이렌을 울리고 지나가는 구급차라도 마주치면 가슴은 공연히 두방망이질, 왜 그리 급하고 조렸던지....
그야말로 설레고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와 방문을 열어보면. 불은 환히 켜있고, tv도 제멋대로 뭔가 소리를 내고 있고, 먹다 남긴 피자 쪼가리가 딩굴고, 두 아들은 거실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곤히 잠들어 있었지요. 그래도 형이라고 여섯 살 된 것이 한살짜리 동생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고서 말입니다. 그 순간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공연히 서러워서 밤을 뒤척이던 것이 그 몇 번이었던지.....
가는 듯 머무는 듯 세월은 그렇게 흘러서 이제는 그 어린 것들이 다 장성하여 나름대로 제 앞가림들을 하고, 나는 이제 은퇴를 앞둔 중(中) 늙은이가 되고..
가난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가족들에게는 늘 무책임한 듯 제멋에 겨워 허우적거리는 목사의 아들 노릇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이제는 교회라면 질렸을 법도 한데, 그래도 주님 곁을 맴돌며 기쁨으로 힘써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고 고맙고 또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 아비의 가슴이 시려 오는데, 마음 깊은 곳에 울려오는 우리 주님의 은은한 음성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었노라”, 고......
그 때 그 여섯 살배기 어린 애가 이제 주님께서 골라주신 짝을 맞아 결혼을 한다네요.
주님을 암팡지게 사랑하고 또 아름답고 얌전한 자태가 성경 속의 리브가를 방불케 하는 그런 믿음의 딸이라서 더욱 감사하구요. 이런 배필을 숨겨두었다가 때가 차매 보내주신 주님의 손길에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이 뜨거운 눈물로 배어나는군요. “아,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의 한부분 이구나...”
그러나 때로 이 노랫말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지나간 세월이 남긴 아픔의 흠집이 가슴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인가 봅니다. 아마도 이 육신의 옷을 벗고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길 그날까지 이러하겠지요. 내가 아비라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이 동요를 들으며 한국의 어느 갯마을 초가 정경과 그 집 툇마루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그려보노라면 평화로워 보이기도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에 아기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생명선과 같은 굴따기를 버려두고 황급히 달려오는 모정이 가슴에 깊은 골을 내며 메아리칩니다. 호구지책이 최대의 과제이었던, 그야말로 먹고살기조차 힘겨웠던 시절에 한국의 어느 어촌의 풍경을 그린 동요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나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비록 환경은 다르지만 아기생각에 모랫길을 허둥지둥 치달려 오는 엄마의 심정을 가슴 절절히 느낀적이 있어서입니다.
내 생애에 첫 목회지는 군부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본래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듯이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정문제(domestic violation) 때문에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야 했던 것이 다반사이었습니다.
이런 일로 연락을 받는 것은 대개 밤늦은 시각이기 마련이며, 짧게는 한두시간 때로는 서너 시간 씩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고,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때 한살이었던 여호수아와 여섯 살짜리 이삭을 다 데리고 갈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심한 경우에는 몸싸움을 뜯어 말리거나 더러는 칼부림의 현장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밤에 누구를 당장 불러올 수도 없고... 전화로는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결국 불법인줄 알면서도, 마음이 심히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지역 대로변에 엤는 허술한 집에 이삭과 여호수아를 남겨 두고 무슨 구급차라도 되는 양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깊어가는 밤이 아니면 짙은 안개로 뿌연 바닷가의 새벽이 오기까지 그런대로 다독이고, 수습하고,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또 다급해 지기마련인데, 도중에 싸이렌을 울리고 지나가는 구급차라도 마주치면 가슴은 공연히 두방망이질, 왜 그리 급하고 조렸던지....
그야말로 설레고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와 방문을 열어보면. 불은 환히 켜있고, tv도 제멋대로 뭔가 소리를 내고 있고, 먹다 남긴 피자 쪼가리가 딩굴고, 두 아들은 거실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곤히 잠들어 있었지요. 그래도 형이라고 여섯 살 된 것이 한살짜리 동생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고서 말입니다. 그 순간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공연히 서러워서 밤을 뒤척이던 것이 그 몇 번이었던지.....
가는 듯 머무는 듯 세월은 그렇게 흘러서 이제는 그 어린 것들이 다 장성하여 나름대로 제 앞가림들을 하고, 나는 이제 은퇴를 앞둔 중(中) 늙은이가 되고..
가난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가족들에게는 늘 무책임한 듯 제멋에 겨워 허우적거리는 목사의 아들 노릇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이제는 교회라면 질렸을 법도 한데, 그래도 주님 곁을 맴돌며 기쁨으로 힘써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고 고맙고 또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 아비의 가슴이 시려 오는데, 마음 깊은 곳에 울려오는 우리 주님의 은은한 음성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었노라”, 고......
그 때 그 여섯 살배기 어린 애가 이제 주님께서 골라주신 짝을 맞아 결혼을 한다네요.
주님을 암팡지게 사랑하고 또 아름답고 얌전한 자태가 성경 속의 리브가를 방불케 하는 그런 믿음의 딸이라서 더욱 감사하구요. 이런 배필을 숨겨두었다가 때가 차매 보내주신 주님의 손길에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이 뜨거운 눈물로 배어나는군요. “아,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의 한부분 이구나...”
그러나 때로 이 노랫말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지나간 세월이 남긴 아픔의 흠집이 가슴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인가 봅니다. 아마도 이 육신의 옷을 벗고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길 그날까지 이러하겠지요. 내가 아비라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