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상 (The Statue of Liberty)(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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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지난 10월 11일 아침 New York에 간 길에 Manhattan 건너편에 있는 Liberty Island(리버티 섬)로 Ferry를 타고 가서 “The Statue of Liberty”를 방문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은 옅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있어 제법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또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미국에 온지 거의 33년 만에 처음으로 가는 것이어서 마음이 조금은 설레기도 했습니다.
이 상(像)은 받침대까지 포함하여 92미터 높이의 연판제 동상으로서 1884년에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증한 것으로서 이라고 합니다. 이 상의 여인은 오른 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으며 발로는 끊어진 쇠사슬(broken shackles)을 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을 통해서 이루어진 자유가 모든 속박을 이기고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을 중심으로 섬을 한 바퀴를 돌아보는 중에 안개 낀 해협 건너로 보이는 Ground Zero가 눈에 들어오면서 문득 저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종이를 거내 적어 두었다가 여기에 옮겨 봅니다.
우선 “The Statue of Liberty"를 일반적으로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마도 “The Statue of Liberty”라는 영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사람들이 여신이라는 단어를 덧붙였고 우리들이 이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상의 여인은 조각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 설명 밖에는 그 어디에도 여신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자유의 상”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귀한 인간의 자유가 마치 여신이 선물로 준 것인 양 그 가치를 평가절하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자유는 이 여인이 맨발로 짓밟고 있는 끊어진 쇠사슬이 보여 주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에 목마른 사람들이 억압의 지배에 맨몸으로 부딪혀 쟁취한 피로 얼룩진 희생의 결과라는 사실이 자칫 폄훼될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신이라는 말 자체가 우상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매우 역겹기 까지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개가 막 걷혀 가는 해협 건너편에 푸른 울타리에 둘러싸인 Ground Zero를 보면서 착잡한 상념이 저의 마음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Ground Zero는 원래 세계무역쎈터가 있던 곳인데, 지난 2001년 9월 11일 약 3000명 이상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그 유명한 9.11테러 사건의 자리입니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서 그 자유를 이용하여 남의 자유를 마구 훼손하는 이율배반을 과연 어떻게 설명 될 수 있을까?
속박의 쇠사슬을 밟고 서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자유의 상”과, 한 때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다가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린 World Trade Center 자리 곧 Ground Zero 쪽을 번갈아 보면서, 이제는 자유 자체가 짓밟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시대의 “자유”라는 것이 이미 스스로 그 가치를 상실한 채 고삐 풀린 광마(狂馬)가 되어 방종의 단계로 접어든 때문이 아닐까 하는 두렵고 서글픈 마음이 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일찍이 주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또한 바울 사도를 통해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라디아 5:13)고 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안에서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자유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주 예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Manhattan 앞바다를 가로 지르는 Ferry 위로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날고 있었습니다.
이 상(像)은 받침대까지 포함하여 92미터 높이의 연판제 동상으로서 1884년에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증한 것으로서 이라고 합니다. 이 상의 여인은 오른 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으며 발로는 끊어진 쇠사슬(broken shackles)을 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을 통해서 이루어진 자유가 모든 속박을 이기고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을 중심으로 섬을 한 바퀴를 돌아보는 중에 안개 낀 해협 건너로 보이는 Ground Zero가 눈에 들어오면서 문득 저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종이를 거내 적어 두었다가 여기에 옮겨 봅니다.
우선 “The Statue of Liberty"를 일반적으로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마도 “The Statue of Liberty”라는 영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사람들이 여신이라는 단어를 덧붙였고 우리들이 이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상의 여인은 조각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 설명 밖에는 그 어디에도 여신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자유의 상”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귀한 인간의 자유가 마치 여신이 선물로 준 것인 양 그 가치를 평가절하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자유는 이 여인이 맨발로 짓밟고 있는 끊어진 쇠사슬이 보여 주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에 목마른 사람들이 억압의 지배에 맨몸으로 부딪혀 쟁취한 피로 얼룩진 희생의 결과라는 사실이 자칫 폄훼될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신이라는 말 자체가 우상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매우 역겹기 까지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개가 막 걷혀 가는 해협 건너편에 푸른 울타리에 둘러싸인 Ground Zero를 보면서 착잡한 상념이 저의 마음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Ground Zero는 원래 세계무역쎈터가 있던 곳인데, 지난 2001년 9월 11일 약 3000명 이상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그 유명한 9.11테러 사건의 자리입니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서 그 자유를 이용하여 남의 자유를 마구 훼손하는 이율배반을 과연 어떻게 설명 될 수 있을까?
속박의 쇠사슬을 밟고 서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자유의 상”과, 한 때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다가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린 World Trade Center 자리 곧 Ground Zero 쪽을 번갈아 보면서, 이제는 자유 자체가 짓밟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시대의 “자유”라는 것이 이미 스스로 그 가치를 상실한 채 고삐 풀린 광마(狂馬)가 되어 방종의 단계로 접어든 때문이 아닐까 하는 두렵고 서글픈 마음이 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일찍이 주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또한 바울 사도를 통해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라디아 5:13)고 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안에서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자유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주 예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Manhattan 앞바다를 가로 지르는 Ferry 위로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날고 있었습니다.
댓글목록
이 아브라함님의 댓글
이 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9.11 terror 이후에는 그곳까지 못올라가게 되어있더군요.
어차피 나는 처음부터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statue는 밖에서, 멀리서 봐야지 속으로 들어가면 전체를 볼 수 없지요.
우리들도 자신 속에서만 자신을 보는 고로 우리들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관점으로 우리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전체적으로,
입체적으로...
a bird's eye view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