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줍는 집사 (200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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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안녕하셨어요?”
“누구신가요?”
“저 심집사 입니다. 어머니...”
“심 집사? 심 집사님이 누구셔?”
“네, 저 개똥 줍는 심집사 입니다.”
“아, 그 심 집사님? 반가워유. 고마워유. 다 죽은 늙은이를 찾아주니....”
이것은 지난 해 12월 2일 토요일 오후, 보스턴에 계신 저의 어머님의 병상에서 있었던 대화입니다. 비록 잠간 동안 오고 간 대화이었지만, 그 속에는 20 여년이란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기억되는 감동적인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를 개똥집사라고 부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습니다. 1985년 당시에 저희 교회는 개척한지 불과 3년 만에 교회당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교회당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풀어 놓은 개들로 인하여 골치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동네 개들이 교회당 잔디에 와서 변을 많이 싸고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여보 란 듯이 개를 데리고 와서 대소변을 보게 하고는 밑을 씻긴 휴지마저도 잔디에 버리고 가는 고로, 그 몰염치와 몰상식 이 얄미워서 여러 번 승강이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의 교회라서 마음대로 무시하려는 것 같은 속이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잔디밭은 교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이 레슬링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뛰노는 곳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여서 아이들이 오기 전에 미리 깨끗이 치워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치우기가 조금 힘들었던 것은 오물들이 잔디 위에 있기 때문에 빗자루로 쓸어내기도 그렇고 갈퀴로 긁어모아도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닐봉지를 손에 끼고 일일이 하나씩 주어야 했는데 당시에 그것은 주로 저의 job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한 형제님이 함께 이것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농담을 하면서 말입니다.
“굳은 정도로 보아서 이것은 이틀 된 것이군. 이것은 하루 지났고...”
“아하, 이것은 오늘 아침에 싸 놓은 것이야. 짜식...”
“...설사인 것을 보니 녀석이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그는 기독교와 소위 예수쟁이들을 남다르게 혐오하는 사람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인도되어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석하며 교회생활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성경공부가 너무나 좋다며 창세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훈련을 다 거쳐 가며 충성스럽게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고 있었던 형제입니다.
어느 날 저의 어머님께서 방문을 하셨는데 마침 우리 둘이서 잔디에서 개똥 줍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닐봉지를 장갑삼아 열심히 개똥을 주우며 또 쉴새없이 joke를 하면서 그렇게도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셨는지 저의 어머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줏으면서 뭐가 그리 즐거워요. 집사님.”
“네, 어머님 개똥이 더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더럽고, 더 악하고, 결코 용
서 할 수 없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도리어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저는
똥을 만지면서도 정말 즐겁습니다. 어머님. 저는 개똥 줍는 것도 영광입니다.”
이때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삶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저의 어머님께서도 할 말을 잃은 채 다만 “할렐루야”를 연발하실 뿐이었지요. 그 때부터 저의 어머님은 그를 “개똥 줍는 집사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시며 또 그는 저의 어머님을 친어머님처럼 모시게 되었습니다. 멸망인지도 모르고 달려가던 눈먼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해 준 목회자의 어머님이시니 당연히 자기에게도 어머님이기 때문에 귀히 모셔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 헤어져 있으면서도 주안에서 계속적인 형제애를 나누어 왔고, 수년 전에는 저희부부에게 중국선교를 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힘을 실어주었을 뿐 아니라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중국선교를 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저희 어머님이 병환 중에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뵙는 것이 도리”라고 하며 굳이 씨애틀에서 보스턴까지 마다하고 찾아와 주었던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어머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진정한 은혜와 사랑이무엇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육신인지라 물기라고는 다 말라버렸을 법 한데 저의 어머님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저 역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한 감동의 눈물이 배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감격에 겨워 말을 잊지 못했구요.
그는 “개똥 줍는 집사”인 것이 영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흘렸음직한 오물을 줍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 은혜를 감당할 수 없기에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3-24)
“누구신가요?”
“저 심집사 입니다. 어머니...”
“심 집사? 심 집사님이 누구셔?”
“네, 저 개똥 줍는 심집사 입니다.”
“아, 그 심 집사님? 반가워유. 고마워유. 다 죽은 늙은이를 찾아주니....”
이것은 지난 해 12월 2일 토요일 오후, 보스턴에 계신 저의 어머님의 병상에서 있었던 대화입니다. 비록 잠간 동안 오고 간 대화이었지만, 그 속에는 20 여년이란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기억되는 감동적인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를 개똥집사라고 부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습니다. 1985년 당시에 저희 교회는 개척한지 불과 3년 만에 교회당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교회당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풀어 놓은 개들로 인하여 골치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동네 개들이 교회당 잔디에 와서 변을 많이 싸고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여보 란 듯이 개를 데리고 와서 대소변을 보게 하고는 밑을 씻긴 휴지마저도 잔디에 버리고 가는 고로, 그 몰염치와 몰상식 이 얄미워서 여러 번 승강이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의 교회라서 마음대로 무시하려는 것 같은 속이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잔디밭은 교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이 레슬링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뛰노는 곳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여서 아이들이 오기 전에 미리 깨끗이 치워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치우기가 조금 힘들었던 것은 오물들이 잔디 위에 있기 때문에 빗자루로 쓸어내기도 그렇고 갈퀴로 긁어모아도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닐봉지를 손에 끼고 일일이 하나씩 주어야 했는데 당시에 그것은 주로 저의 job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한 형제님이 함께 이것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농담을 하면서 말입니다.
“굳은 정도로 보아서 이것은 이틀 된 것이군. 이것은 하루 지났고...”
“아하, 이것은 오늘 아침에 싸 놓은 것이야. 짜식...”
“...설사인 것을 보니 녀석이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그는 기독교와 소위 예수쟁이들을 남다르게 혐오하는 사람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인도되어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석하며 교회생활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성경공부가 너무나 좋다며 창세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훈련을 다 거쳐 가며 충성스럽게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고 있었던 형제입니다.
어느 날 저의 어머님께서 방문을 하셨는데 마침 우리 둘이서 잔디에서 개똥 줍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닐봉지를 장갑삼아 열심히 개똥을 주우며 또 쉴새없이 joke를 하면서 그렇게도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셨는지 저의 어머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줏으면서 뭐가 그리 즐거워요. 집사님.”
“네, 어머님 개똥이 더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더럽고, 더 악하고, 결코 용
서 할 수 없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도리어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저는
똥을 만지면서도 정말 즐겁습니다. 어머님. 저는 개똥 줍는 것도 영광입니다.”
이때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삶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저의 어머님께서도 할 말을 잃은 채 다만 “할렐루야”를 연발하실 뿐이었지요. 그 때부터 저의 어머님은 그를 “개똥 줍는 집사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시며 또 그는 저의 어머님을 친어머님처럼 모시게 되었습니다. 멸망인지도 모르고 달려가던 눈먼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해 준 목회자의 어머님이시니 당연히 자기에게도 어머님이기 때문에 귀히 모셔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 헤어져 있으면서도 주안에서 계속적인 형제애를 나누어 왔고, 수년 전에는 저희부부에게 중국선교를 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힘을 실어주었을 뿐 아니라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중국선교를 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저희 어머님이 병환 중에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뵙는 것이 도리”라고 하며 굳이 씨애틀에서 보스턴까지 마다하고 찾아와 주었던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어머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진정한 은혜와 사랑이무엇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육신인지라 물기라고는 다 말라버렸을 법 한데 저의 어머님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저 역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한 감동의 눈물이 배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감격에 겨워 말을 잊지 못했구요.
그는 “개똥 줍는 집사”인 것이 영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흘렸음직한 오물을 줍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 은혜를 감당할 수 없기에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