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로 확증하신 하나님의 뜻 [ 히브리서 6:13 - 6:20 ] 2010. 06. 11 주일 > 큐티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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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로 확증하신 하나님의 뜻 [ 히브리서 6:13 - 6:20 ] 2010. 06. 1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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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큰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 맹세의 효력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3 When God made his promise to Abraham, since there was no one greater for him to swear by, he swore by himself,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4 saying, "I will surely bless you and give you many descendants."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5 And so after waiting patiently, Abraham received what was promised.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16 Men swear by someone greater than themselves, and the oath confirms what is said and puts an end to all argument.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7 Because God wanted to make the unchanging nature of his purpose very clear to the heirs of what was promised, he confirmed it with an oath.

☞ 영혼의 닻 예수 대제사장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God did this so that, by two unchangeable things 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we who have fled to take hold of the hope offered to us may be greatly encouraged.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19 We have this hope as an anchor for the soul, firm and secure. It enters the inner sanctuary behind the curtain,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20 where Jesus, who went before us, has entered on our behalf. He has become a high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
 


본문 해설
☞ 맹세의 효력(6:13~17)
영적 성장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영적 성장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업을 상속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귀한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이 세상의 하찮은 것들에 쏠려서 미혹되고 만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듭 강조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맹세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맹세를 하신다면 이는 믿음이 둔한 우리를 위한 조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신의 뜻이 변치 않음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17절) 약속 위에 맹세를 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보다 확실히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소망은 견고합니다.

☞ 영혼의 닻 예수 대제사장(6:18~20)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만고불변의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맹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에 의거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성소로 우리보다 앞서 들어가셨습니다. 이 사실이 현실의 많은 유혹과 도전 앞에 놓여 있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소망의 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능력이 우리의 현실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18절)에게 하나님의 맹세로 세움 받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보다 큰 위안은 없습니다. 이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세상 파도의 격랑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천상의 포구에 닻을 내린 사람들입니다.

● 맹세하시고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어떤 성품을 느낄 수 있습니까? 나는 소망의 기초를 어디에 두며 살아갑니까?
● 역경 속에서 소망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하나님의 맹세의 효력을 내 삶의 어느 부분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제 안의 의심과 불안, 흔들리는 믿음을 모두 떨쳐 버리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며 그 약속을 받게 하소서. 약속을 이루신 영광의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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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신약)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딤후 1:1). 이 약속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피신하여 이 소망을 붙잡은 자들입니다. (v. 18)  세상에서 피신했다는 것은, 마치 고의적이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들이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자들을 피해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피신할 수 있었던 도피성과 같은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도피성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Warren Wiersbe) 

바로 전 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약속을 혹은 희망을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며 받기까기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실질적으로 받은 예로 아브라함을 듭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서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예로 들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별로 큰 위로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오히려 우리들 보다 못한 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두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 맡겼던 자입니다. 그것도, 두번째는 1년 내에 이삭을 낳게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상태에서 행해진 일입니다. 물론 이 것만이 그의 흠은 아닙니다.

지난 번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고 단 한번도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지 않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표현보다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브라함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비록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오래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오래 참을 수 있도록 그를 훈련시키시고 사랑해주시고 참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그리고 맹세로서 약속하신 것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두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맹세이 우리의 소망이 참소망이 되게하고 우리로 하여금 이로 큰 위로를 받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또 그 약속을 이룰 것을 맹세하시므로 우리가 큰 위로를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우리들을 해방시키시기를”원하셨던 주님께서 살아있는 동안에 이런 확신과 큰 위로를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5)

믿음은 나의 손을 잡고 계신 이런 주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요 10:28).  주님은 그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 분을 떠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 분을 떠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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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진님의 댓글

no_profile 양미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목사님,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못하다니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시험에 실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테스트에는 그의 목숨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강도의 테스트를 패스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야말로 솔직히 테스트를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우리가 하나님 신뢰하기를,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포기할 것인지. 자녀를 드리는 시험? 재물을 드리는 시험? 건강을 드리는 시험? 시간을 드리는 시험? 자존심을 드리는 시험? 우리가 자녀를 드릴 수 있다면 몇명의 자녀까지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재물을 드리면 얼마까지 드릴 수 있을까요? 하루에 몇시간을? 자존심을 몇번을 ... 드릴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가 우리의 맥시멈일지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히브리서가 쓰일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엄청난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말씀이 오늘 저에게 그리 큰 소망으로 다가오지 않음이 답답합니다.
그 옛날의 성도들. 예수님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ㅤㅉㅗㅈ겨다니며 미래가 불투명했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된 약속과 그것을 보장하시는 맹세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그들의 편에 서계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의미가 큽니다. 아브라함이 겪었던 위험스런 믿음의 시험도 잘 이해가 갔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을 위해 고난을 자처하지 않으면 고난을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어려움들은 우리의 잘못으로 받는 당연한 결과들입니다. 너무 편하고, 싸울 일도 없고, 수고할 것도 없고, 안전한데 무슨 약속이 더 필요하며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요?

개구리를 찬물에 넣어 아주 서서히 온도를 높여 개구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삶아버리는 방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무력해지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두렵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고 싶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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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실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인간적으로) 나은 사람이냐 못난 사람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냐보다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꿈이 (Vision)이 나의 vision이 되어

하나님의 vision이 나의 심정을 꿈틀 거리게 할 수 있다면 누가 못하냐 더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분명 아브라함이 굉장한 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당시에 존재했던 수 많은 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말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듭니다.

오늘날의 도덕수준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는 간음의 죄 뿐아니라, 살인자요 배신자로서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할 자입니다.

아브라함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의로운 면도 (도덕적인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의 촛점은 이런자들이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셨다라는 사실보다는 이런 자들임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란 것에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 한심한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마태복음 11:11

물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는 아브라함도 포함되고 모세도 포함되고 다윗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자들보다 하늘나라에 속한 우리가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님때문에 입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멜기세덱과의 만남을 통해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만난 주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요 8:56)  그러나 우리처럼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마태복음 13:17

또. 아브라함이 십년에 한번씩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좀 더 자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완성된 성경이 우리 가운데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한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파노라마에 마지막으로 등장하신 아름다운 예수님을 만난자들입니다.
주님의 의도를 역사적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그 이전 시대 사람들보다도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부담 때문에라도 환경에 상관 없이 너무 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내 자신이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이 필요할 때입니다.

무력하게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날 사로잡을 때도 많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비젼을 붙잡고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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