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기 Getting Along [빌립보서 2:1 - 2:11 ] 2013년 01월 0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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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저는 사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을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든가 여행을 하는 것 보다 더 좋아합니다.그러나 대부분 그 대상은 내가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 상대하기가 불편한 사람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같이 있기가 껄끄러운 사람들을 상대하기에는 인내와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다툼과 허영 경쟁심리 비교의식에서 비롯한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영광스런 지위를 포기하시고 목숨을 버리시기 까지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의 목숨보다 내 목숨이 더 나은 것이라기도 한 것처럼 생각하셨기 때문이겠지요. 그 은혜로 나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당신의 모범을 따르기를 명하셨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남을 자신 보다 낫게 여기고...."
따져보면 내게는 교만할 이유나 근거가 전혀 없는 그저 "은혜로 구원 받은 빚진 자"일 뿐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주님의 모범에 순종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내 속에 품고 모든 사람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봅니다.
주님의 영이 저를 사로잡으심으로 거룩한 모범을 따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소서.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으로서 하늘 보좌를 떠나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면서도 추구하셨던 그 기쁨,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바라보셨던 그 기쁨이 무엇인지 오늘 묵상의 내용을 통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늘의 영광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지으시므로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는 그 기쁨의 회복이,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그 관계성의 회복이 주님께서 추구하셨던 기쁨일 것입니다. ,
그것은 아브라함을 그분의 친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사람 다윗을 보는 그 기쁨, 그리고 주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예배자드로서의 성도를 내다보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쁨은 아들이신 주님의 기쁨일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않고 보내시기까지 추구했던 하나님의 기쁨이기도 할 것입니다. (요 3:16; 롬 5:8)
죄인들과의 관계회복을 그토록 추구하셨던 주님의 모습은 오늘날도 변치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기 심히 좋아하셨던 이유중에는 하나님 자신과 그들 (아담과 이브)과의 관계 뿐 아니라 아담과 이브간의 하나된 관계때문이기도 합니다.
관계회복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한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 적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엡 4:32-5:2):
그리고 오늘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남을 나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이 관계성회복에 걸림돌이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더 옳다는 생각말입니다.
이 말씀을 쓰면서 제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내 스스로가 이 말씀을 적용해야할 필요가 없을 때에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내가 실지로 실천해야할 대상이 있으니까 긴장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분과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나스스로의 비방과 다른 사람의 비방을 듣는 것이 내 영혼을 얼마나 상하게했고 상처를 받게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말했던 것이던지 아니면 들었던지 비방과 비난을 듣는 것이 내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내 영혼을 좀 먹는 것을 느낍니다.
때로는 내가 아는 분들 사이가 불편한 것을 볼 때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관계성의 회복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댓가까지 치루셨덧이, 나 자신도 내가 댓가를 치루더라도 이런분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할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올해는 깨어진 관계성을 화목하며 소원해진 관계성을 밀접하게 미지근한 관계성은 뜨겁게 얄팍한 관계성은 깊어지는 형식적인 관계성이 진실된 관계성으로 변화되는 복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먼저 성도 간에 말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 땅에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말한 그 분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게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문제있는 자하고 일단은 내 파트의 잘못만 인정하자.. 그리고 상대방을 진실로 나보다 나은 자로 여겨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아니고 오늘 빌립보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며 다시 깨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