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와 사랑하는 자 [ 마태복음 26:1 - 26:16 ] 2011년 9월 1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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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자 제자들이 보고 분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를 칭찬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알려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 향유를 부은 여인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4 그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한 여자(7절) 마르다와 나사로의 누이였던 마리아(요 12:3)
은 삼십(15절) 약 120데나리온. 노동자는 대개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받음
본문 해설☞ 예수님을죽이려는음모(26:1~5)
예수님이 종말에 관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다시 언급하십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이틀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팔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골몰할 때, 가룟 유다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합니다(14~16절). 악한 자들의 계획은 손발을 맞춘 듯이 척척 잘 맞아 들어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직접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죽음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른 것이지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계획조차 그분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데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 향유를 부은 여인(26:6~16)
사랑은 경제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귀한 향유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의 기록을 볼 때,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함께 부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허비한다고 그 여인을 야단칩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이 여인은 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다.” 예수님께 사랑을 표현한 행위가 뜻하지 않게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와 마리아는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악한 도구가 아닌 의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 부은 향유를 아까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내겐 없습니까?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룩한 낭비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재물, 건강, 학벌, 명예를 저만을 위해 쓰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이 모든 것을 깨뜨려 부어 드릴 수 있는 향기롭고 깊은 사랑을 제 속에 더해 주소서.
댓글목록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수님께서 이틀 후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의 반응이 무덤덤한 것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감당하려는 것 같지도 않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않잡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에 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가 이를 만류하다가 심하게 책망받은 것이 생각나서 주저하는 것인지.... 과연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삶을 나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틀 후면 십자가에 달리신다는데 펄쩍 뛰거나, 깜짝 놀라거나 아니면 그게 무슨 뜻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토록 어정쩡하기만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나 자신의 꼴을 보는듯 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심각하지도, 굳센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떠나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타성적으로 떼밀려 가는 엉거주춤한 자세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 이렇게 주님을 따라가다가 막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주할 때 도망가기도하고, 부인하기도하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고 엄히 권면하신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오늘 이 아침에 다시금 자신을 깊이 돌아봅니다.
주님,
주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값진 옥합정도가 아니라 온 몸을 불사르게 내어드려도 부족할 터인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님을 따라가는 시늉만내고 있는 저의 위선이 얼마나 가증한지요? 주님께 용서를 구하기도 염치가 없는 이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시간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주님의 제단에 산 제사로 드리는 것 뿐입니다. 30년전 이맘때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야말로 피눈물을 뿌리며 재헌신하던 그 순간처럼 이 시간에도 회개합니다. 재헌신 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습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