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응답이 더딜 때 [ 마태복음 15:21 - 15:28 ] 2011년 8월 1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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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가나안 여자는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외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여자는 예수님이 구원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큰 믿음을 칭찬하시고 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 가나안 여자의 요청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 여자의 큰 믿음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가나안 여자(22절) 신약시대에는 가나안이라고 알려진 나라가 없음. 아마 그 당시 페니키아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임. 마가는 그녀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고 기록함(막 7:26)
개들(26절) 유대인은 이방인을 경멸하는 뜻에서 개라고 부름
본문 해설☞ 가나안 여자의요청 (15:21~24)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자가 다가와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소리칩니다. 대답 없는 예수님께 그 여자는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라며 다소 냉정하게 대답하십니다. 아마 여자의 믿음을 확인해 보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메시아에게만 쓰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으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이는 그녀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유대적 전통과 신앙을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메시아를 고대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이방 여자는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으며,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서 나옵니다.
☞ 여자의 큰 믿음(15:25~28)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그분을 참된 메시아요 구원자로 경배했습니다. ‘절하며 이르되’(25절)라는 말은 ‘엎드려 경배하며 말하기를’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모욕적인 대답을 주십니다. 이는 가나안 사람들을 개 취급하던 유대인들의 태도를 반영한 표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여자의 반응입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자의 확신에 찬 믿음은 무시와 냉대를 극복하고 소원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유대인들의 불신과 완벽하게 대조됩니다. 유대인은 주어진 구원의 복음을 배척했으나, 이방 여인은 큰 믿음으로 그것을 쟁취한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오로지 주님을 믿는 자의 것입니다.
● 말씀을 바르게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입니까? 성경을 자신의 틀 안에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거나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신 것 같을 때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반응합니까? 확신에 찬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이해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도 엎드릴 수 있는 겸손을 허락해 주소서.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과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참된 기도를 하게 하소서.
댓글목록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나안 여인의 간구를 통해서 주님 앞에 서는 자세를 배웁니다.
그녀는 겸손의 자세를 넘어서 자신을 개에게 비유할만큼 포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만큼 거룩하시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는 간구한대로 딸을 고침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궁극적인 바람은 응답입니다.
그러나,
응답의 내용과 시점을 나 자신이 먼저 정해 놓고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 먼저 자기를 포기하고 주님의 은혜의 처분을 기다리는 결사적인 자세로 엎드려야한다고 믿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오직 주님의 은혜이기에 말입니다.
주님, 오늘의 기도 가운데 저를 만나주시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아니,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8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야,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고,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께서 이방인에게도 자비를 베풀분으로 그 여인은 믿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세운 전통에 묶여서 참으로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구분치 못했던 바리새인들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포하시므로,
깨끗한 음식, 가증한 음식의 구분을 무너뜨린 주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가 문제가 아니됨을 선포하십니다.
오늘날도 인간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가르는 못된 버릇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있음을 그리고 내 가운데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세상적인 기준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안목으로 대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고후 5: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