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자라는 밭 [ 마태복음 13:1 - 13:17 ] 2011년 8월 1일 (월) > 큐티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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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자라는 밭 [ 마태복음 13:1 - 13:17 ] 2011년 8월 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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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큰 무리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씨는 길가에, 흙이 얕은 돌밭에, 가시 떨기 위에,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 가운데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 네 종류의 밭
1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1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2 Abraham was the father of Isaac, Isaac the father of Jacob, Jacob the father of Judah and his brothers,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3 Judah the father of Perez and Zerah, whose mother was Tamar, Perez the father of Hezron, Hezron the father of Ram,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4 Ram the father of Amminadab, Amminadab the father of Nahshon, Nahshon the father of Salmon,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5 Salmon the father of Boaz, whose mother was Rahab, Boaz the father of Obed, whose mother was Ruth, Obed the father of Jesse,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6 and Jesse the father of King David. David was the father of Solomon, whose mother had been Uriah's wife,

7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7 Solomon the father of Rehoboam, Rehoboam the father of Abijah, Abijah the father of Asa,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8 Asa the father of Jehoshaphat, Jehoshaphat the father of Jehoram, Jehoram the father of Uzziah,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9 Uzziah the father of Jotham, Jotham the father of Ahaz, Ahaz the father of Hezekiah,

☞ 있는 자와 없는 자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0 Hezekiah the father of Manasseh, Manasseh the father of Amon, Amon the father of Josiah,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1 and Josiah the father of Jeconiah and his brothers at the time of the exile to Babylon.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2 After the exile to Babylon: Jeconiah was the father of Shealtiel, Shealtiel the father of Zerubbabel,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3 Zerubbabel the father of Abiud, Abiud the father of Eliakim, Eliakim the father of Azor,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4 Azor the father of Zadok, Zadok the father of Akim, Akim the father of Eliud,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5 Eliud the father of Eleazar, Eleazar the father of Matthan, Matthan the father of Jacob,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6 and Jacob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of whom was born Jesus, who is called Christ.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7 Thus there were fourteen generations in all from Abraham to David, fourteen from David to the exile to Babylon, and fourteen from the exile to the Christ.


흙이 얕은 돌밭(5절) 이스라엘 땅은 대부분 겉은 흙으로 덮여 있지만 속은 바위가 깔린 박토임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7절)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먼저 밭갈이를 해서 잡초(가시 떨기)를 없앤 다음에 씨를 뿌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씨를 뿌린 다음에 밭갈이를 했기 때문에 잡초 속에 씨앗이 떨어지기 마련이었음

 


본문 해설☞ 네 종류의 밭(13:1~9)
본문은 씨 뿌리는 자나 뿌려진 씨가 아닌, 씨를 받아들이는 밭에 중점을 둔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리새인처럼 정죄하며 거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놀라워하면서도 기이하게만 여길 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네 종류의 밭에 비유됩니다. 나쁜 땅을 개간해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 또한 기름진 땅이 될 수도, 메마른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 방해물이 많지만, ‘좋은 땅’은 이 모든 것을 걸러 낸 마음입니다. 복음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라나고 결실합니다.

☞ 있는 자와없는 자(13:10~17)
복음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제자들이 묻자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대답하십니다. 제자들은 ‘있는 자’이고 그들은 ‘없는 자’입니다. 있는 자가 더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표현은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과연 제자들에게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듣고 그분을 영접해 제자가 된 이들에게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완악한 마음으로 복음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복음을 향해 열린 마음은 천국 복음을 깨닫지만 그렇지 못한 마음은 깨닫지도, 회개하지도 못합니다.

● 내 마음은 길가, 돌밭, 가시 떨기, 좋은 땅 가운데 무엇입니까? 좋은 땅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방해물(염려, 욕심 등)은 무엇입니까?
● 내 마음은 복음을 향해 열려 있습니까, 세상을 향해 열려 있습니까? 내 신앙 여정을 돌아볼 때 갈수록 넉넉해집니까, 갈수록 곤궁해집니까?

 

오늘의 기도제 마음이 말씀의 씨가 열매 맺는 좋은 밭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제 생각으로 가득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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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장에 천국에 대한 비유를 계속 말씀하시는데,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관해서는  “천국은 이와같으니”란 말로 시작되지 않는다.  대신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천국이 어떻게 시작되는 가를  묘사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시작된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씨가 심어지므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씨로 비유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했고, 좋은 토양에 떨어진 씨만 열매를 맺었다. 열매를 맺는 여부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는가의 여부를 결정한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군중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와렌 위어즈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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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 들 중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는가?

거의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배우는 뜻이있다기 보다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베푸시는 그 무엇에 관심을 더 많이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지 않아서이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간절한 소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눈과 귀가 열리기를 원하시고, 그 분의 뜻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설교말씀을 듣던지 성경공부를 하던지, 알기를 원하는 질문을 갖고 대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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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구약에 속한 모든 예언자들과 의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였고 기대했던 자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구약성경 (모세, 선지자, 시편)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의 속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벧전 1:10- 12 “예언자들이 이 구원을 추구하고 연구하였으며,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11    그들은 누구에게, 그리고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12    예 언자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이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일들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합니다.”

오시리라 약속된그 예수님께서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 복음은 놀라운 진리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듣기를 원했던 것들을 우리는 보고 들으면서도, 그 것의 귀중함을 간과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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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9절, 43)란 말씀이 두번 반복된다. 그리고 귀는 듣지 못하고란 말이 적어도 세번 반복된다 (13,14,15).  신앙생활에 있어서 듣는 것은 절대적인 문제이다.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란 말씀은 듣고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은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꺠닫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14) 이 말씀은 실로 두려운 말씀이다.

영어에도 listening이란 말은 들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데, 주님이“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깨닫고 이에 따른 삶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예를 들면, 주일 설교 말씀이나 성경공부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 도전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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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도 강력하게, 사탄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분치 못할 소리를 듣는다.

QT란에 글을 올리기가  거북함 혹은 죄책감을 느끼게할 정도로 내게 어려움을 주는 음성이다.

네가 말씀가르치든지 공부해보았자 무슨 소용있느냐? 네가 설교를 하거나, 들어도 무슨 소용있느냐?

기도해보았자 무슨 소용있느냐? 네가 암만 뭘해도 결코 변할 수 없다.

네자신도 변할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도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네가 전한 말씀을 네 스스로도 간직하고 지키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기대하느냐?

장난 그만해라.  네 인생을 그만 낭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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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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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

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

으니라.

그러나 아니라,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

랑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임이니라."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

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는 죄인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이같이 거역한 것을 견디어 내신 분을 깊이 생각할지니 이것은 너희

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박목사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위에서 용기를 얻으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오늘 내내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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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에릭님의 댓글

no_profile 양에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 목사님에게 다가오는 비판과 정죄의 목소리는 전혀 새로운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너무 많이 들리는 소리)

사탄의 소리인줄 알지만, 어느땐 무게가 실린 강타가 됩니다.

사역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의가 분명해 질때 저에겐 위로와 도전을 얻게됩니다.

요 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나에게 꼭 질문하시고 확인하고 싶어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과 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될때,

나의 사역의 성과, 결과에 대한 악박감, 수치감, 절망감에서 놓임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박목사님을 "착하고 충성된 종" (마25:23) 으로서 인정하시고 기뻐해 주 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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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no_profile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목사님

솔직한 심정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간이 우리의 심령을 흔들어 놓는 이 소리는 분명,
사탄이 예수님께 도전했던 그 똑같은 소리라고 믿어집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를 통해서 격려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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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정님의 댓글

no_profile 홍혜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목사님의 나눔을 감사합니다.

항상 나에게 부담이요, 저 높은 커트라인 같은 생각이 들때가 바로 지금 말씀하신

"듣기" 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듣고, 듣고, 또 듣고 하였는데

내 삶에 일어난 변화나 새로운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나는 안되나 보다, 여기가 한계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자욱이 깔려있어

늘 추스리기 힘든 부분입니다.

듣긴 들었는데 과연 나는 들었을까???

말씀을 우습게 아는 못된 버릇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년 이맘떄 최목사님이 성령에 관해 말씀하실떄 말씀해주신 것을 떠올립니다.

말씀하나 듣고 오늘 조금 바뀌고 또 내일  말씀 하나 듣고 조금 바뀌고 매일매일 하다보면 

이것들이 모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턱없이 부족해고 듣지 않는 것 같아도 자꾸 말씀을 듣다보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들이 말씀을 듣는것에 그치지 않고 가르치신것을 지키게 하려 애쓰시는 박목사님의

심정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귀한 목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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