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 [ 히브리서 11:1 - 11:7 ] 9/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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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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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2010
v.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세상사람들은 seeing is beliving이라고 말합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저들은 말합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실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땅에 속한 것 또 피조세계에 속한 것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로 표현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결국 변하고 상하고 없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런 일시적인 것들 피조세계에 속한 것들을 실체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해서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란 뜻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 영적인 것, 하늘에 속한 것, 창조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참실재를 말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대로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창조되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이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변하게되어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실재 (realtiy)입니다 (벧전 1:25).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눈이 실체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므로 믿음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실체란 것을 인정하므로 믿음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편지)를 읽은 첫 독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저들은 새언약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버리고) 옛언약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눈에 환히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소에서 날마다 눈에 보이는 제사장들이 눈에 보이는 제물들을 드리는 것을 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을 신봉하는 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당장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신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율법)에 속한 모든 이런 것들은 원형(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밝힙니다 (히 10:1). 모형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원형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원형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 그림자를 신봉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후퇴일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매일 이런 도전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것인가란 도전을 거의 매일 받고 살게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서 설명을 한 뒤에 실지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예를 들어 믿음을 갖도록 격려합니다: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한 삶에 대해서, 노아의 방주를 짓는 삶에 대해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약속된 땅으로 떠났던 그리고 25년이나 기다린 후에 이삭을 아들로 가질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상식으로서는 납득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자들이요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만이 행하실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는 일을 이해할 수있게되고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남들이 행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할 수 있게됩니다.” (Warren Wiersbe). 이런 의미에서 저는 beliving is seeing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믿는 것은 보는 것이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해드릴 수 없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관점을 이해치 못하면서 그 분을 기쁘게해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우리를 교육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요일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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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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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을 보인 자들의 - 아벨, 에녹, 노아 - 특징은 그들의 믿음이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들은 삶으로 그들의 믿음을 증거한 자들이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동의하는 것을 마치 믿음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큰 경고가 되는 말씀이다. 가인처럼 자기 중심적인 삶을 포기 하지 못하고, 계속 자기 것을 고집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이 이와같은 것이 아닐까?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던 가인의 모습에서 회개란 찾아 볼 수 없는 오늘날 소위 예배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그 것은 단지 생각과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지 실지로 이로 인한 회개와 삶의 결단까지로 이어지진 않는다.
영적지도자로서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주님, 저로 주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노아처럼 평생 주님이 주신 말씀을 삶의 소명으로 여기고 비나 오나 눈이 오나 방주짓기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