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부정함 씻어내기" 민수기 19:11-22 2023년 3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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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1)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11 “Whoever touches a human corpse wi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2 They must purify themselves with the water on the third day and on the seventh day; then they will be clean. But if they do not purify themselves on the third and seventh days, they will not be clean. 13 If they fail to purify themselves after touching a human corpse, they defile the Lord’s tabernacle. They must be cut off from Israel. Because the water of cleansing has not been sprinkled on them, they are unclean; their uncleanness remains on them.
14 “This is the law that applies when a person dies in a tent: Anyone who enters the tent and anyone who is in it wi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5 and every open container without a lid fastened on it will be unclean.
16 “Anyone out in the open who touches someone who has been killed with a sword or someone who has died a natural death, or anyone who touches a human bone or a grave, wi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7 “For the unclean person, put some ashes from the burned purification offering into a jar and pour fresh water over them. 18 Then a man who is ceremonially clean is to take some hyssop, dip it in the water and sprinkle the tent and all the furnishings and the people who were there. He must also sprinkle anyone who has touched a human bone or a grave or anyone who has been killed or anyone who has died a natural death. 19 The man who is clean is to sprinkle those who are unclean on the third and seventh days, and on the seventh day he is to purify them. Those who are being cleansed must wash their clothes and bathe with water, and that evening they will be clean. 20 But if those who are unclean do not purify themselves, they must be cut off from the community, because they have defiled the sanctuary of the Lord. The water of cleansing has not been sprinkled on them, and they are unclean. 21 This is a lasting ordinance for them.
“The man who sprinkles the water of cleansing must also wash his clothes, and anyone who touches the water of cleansing will be unclean till evening. 22 Anything that an unclean person touches becomes unclean, and anyone who touches it becomes unclean till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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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검은 부정한 것으로 율법은 선포한다. 가까운 식구들의 주검이던 나그네의 주검이던, 늙어 죽던 병들어 죽던 살해 되어 죽던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든 사람의 주검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사람의 시체를 만진자들도 부정하게 여겨진다. 주검뿐 아니라, 그 뼈나 무덤에 몸이 닿았더라도(16) 부정한 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부정한 사람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해지는 전염성이 있는 부정이었다. (22). 또한 이 부정을 스스로 정결케 하지 않는 자는, 주의 성막을 더럽히는 것이요, 이 자는 반드시 이스라엘에서 끊어져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정이었다. (13)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죽은 자를 만지셨다. (마9:24, 눅 7:12) 그리고 이 죽은자를 만지실 때마다 그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 문둥병자를 만지시고 고치신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를 만지시면, 예수님이 부정해 지시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자들이 정결케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이 율법 위에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의 주인공이심을 알리셨다. (요 5:46)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만 율법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 (마 5:17, 산상수훈). 이런 의미에서 오늘 민수기 19장에 언급된,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해주는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님을 그리고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여진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으로서 그가 만지시는 분마다 정결케 되고 생명을 주셨다. 이제 예수님께서 “붉은 암송아지”처럼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가 정결해지고 새 생명을 얻게되는 방법을 마련하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정결과 상처의 치료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그리스도인들. 부정한 자들, 연약한 자들 생명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므로,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역사, 치료하시는 역사 생명을 살리시는 역사가 내 삶과 사역 가운데, 그리고 교회의 삶과 사역 가운데 왕성하게 있기를 소원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