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영도자 예수 그리스도 [ 히브리서 2:1 - 2:10 ] 2010.07.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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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은 천사보다 더욱 크신 분이므로 우리는 더욱 삼가야 합니다. 천사들을 통해 주어진 말씀에 거역해도 그에 상응하는 보응이 있었는데, 아들을 통해 주어진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그에 대한 보응이 더욱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 실낙원을 넘어 복낙원으로
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1 We must pay more careful attention, therefore, to what we have heard, so that we do not drift away.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2 For if the message spoken by angels was binding, and every violation and disobedience received its just punishment,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3 how shall we escape if we ignore such a great salvation? This salvation, which was first announced by the Lord, was confirmed to us by those who heard him.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4 God also testified to it by signs, wonders and various miracles, and gifts of the Holy Spirit distributed according to his will.
5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5 It is not to angels that he has subjected the world to come, about which we are speaking.
6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6 But there is a place where someone has testified: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7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7 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you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8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8 and put everything under his feet." In putting everything under him, God left nothing that is not subject to him. Yet at present we do not see everything subject to him.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9 But we see Jesus, who was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now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because he suffered death, so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 구원의 영도자이신 예수님
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10 In bringing many sons to glory, it was fitting that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exists, should make the author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3절) 사도들을 비롯해서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이 구원의 증인으로 나서서 보증한
본문 해설☞ 실낙원을 넘어 복낙원으로 (2:1~9)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게 인간을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존귀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해 이 사실을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시편 8편 속에 나타나지 않은 어두운 현실이 있습니다. 인간이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런 지위와 사명을 수행할 능력을 잃은 것입니다. 실낙원에 아픔이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예수님 안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만물이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귀와 사명은 예수님을 통해 회복됩니다.
☞ 구원의 영도자이신 예수님 (2:10)
우리가 누리는 크고 작은 혜택의 배후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있었기에 내가 좀 더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혜택을 누리게 된 일에 대해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와 죽음의 곤궁 속에 빠져 있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주’(10절)는 주님의 개념이 아니라 영도자(領導者)의 의미를 가진 독특한 단어입니다. 이는 곤궁에 빠진 우리 곁으로 친히 다가와 우리를 그 곤궁으로부터 건져 주신 분을 가리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필요치 않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영도자 되신 주님을 따라 아들의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 시편 8편은 그 아름다운 가사에도 불구하고 왜 슬픔의 노래가 되었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나의 참된 존귀와 사명을 발견했습니까?
● 곤궁에 빠져 괴로워할 때 도와준 은인은 누구입니까? 나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신 예수님처럼 나도 말없이 양보하고 희생합니까?
오늘의 기도모든 것의 주인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저를 위해 고난을 받으러 세상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제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을 전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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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v. 1-4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2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그러므로란 서두의 단어는, 1장말씀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란 뜻이다. 1장에는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위치에 대해 언급되어있다. 다시 말하면,예수님께서 이토록 놀라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3절) 그 분의 말씀에 대해서도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권고의 말씀이다.
2절과 3절에서 이미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자세하게 귀기울여야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미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소홀한 것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소홀한 것에 대해서 같은 문제로서 다룬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자세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나의 자세이다. 내가 그 분을 따르고 아니고는 그 분의 말씀에 대한 나의 자세에서 드러난다..
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자세는 그 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치루신 댓가에 대한 나의 자세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소홀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란 큰 댓가를 치루고 얻은 구원에 대해서 소월한 것과 동일시 된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만 주님이 주신 큰 구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약 1:21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돌아보며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있으면 그 상태로 머물러 있게되는 것이 아니라, 흘러 떠내려 간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더라도, 등한히 여기면 (소홀하면) 타락의 길을 걷게된다.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축복이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pay more careful attention,)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항상 발견한다. 교회 website가 생기고 경건의 시간을 나누는 란이 있는 것은 내게 큰 축복이다. 혼자서는 소홀하기 쉬운 자신이지만, 이 곳 경건의 시간을 나누는 란에 내 스스로 의무적으로 경건의 시간에서 깨달은 것을 나누도록 작정하므로, 좀 더 신경써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여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것을 결단해본다.
* 몇년전에 기록했던 묵상을 다시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