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 요한복음 19:25 - 19:30 ] 2010.03.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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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십니다. 그 후에 예언 성취를 위해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드립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십니다.
☞ 십자가 주변의 여인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5 Near the cross of Jesus stood his mother,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6 When Jesus saw his mother there, and the disciple whom he loved standing nearby, he said to his mother, "Dear woman, here is your son,"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7 and to the disciple, "Here is your mother." From that time on, this disciple took her into his home.
☞ 다 이루신 예수님
28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8 Later, knowing that all was now completed, and so that the Scripture would be fulfilled, Jesus said, "I am thirsty."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29 A jar of wine vinegar was there, so they soaked a sponge in it, put the sponge on a stalk of the hyssop plant, and lifted it to Jesus' lips.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30 When he had received the drink, Jesus said, "It is finished." With that,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his spirit.
해융(29절) 바다의 돌이나 해초에 붙어사는 해면동물, 흡수성이 좋아 솜 대신 사용해 갯솜이라고도 함
우슬초(29절) 짙은 향기의 꽃과 잎을 가진 작은 식물로 희생 제물, 정결 의식 등에 사용됨
댓글목록
유영훈님의 댓글
유영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본문 해설☞ 십자가 주변의 여인들 (19:25~27)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달아난 상황에서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증인이 되었고, 그중 일부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직후에 시므온이 했던 예언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5). 예수님은 아들을 잃고 애통하는 여인, 곧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긍휼을 십자가 위에서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십자가 위에서 더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 다 이루신 예수님 (19:28~30)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고통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데 모든 정신을 쏟으십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1)라는 말씀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예수님께 드림으로써 구약의 예언이 이뤄졌는데(참조 마 27:34; 막 15:23), 이때 사용된 우슬초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을 연상시킵니다. 즉 예수님이 온 세상 죄를 대속하시는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과 함께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십니다.
●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어떤 사랑을 깨닫습니까? 그 주님을 끝까지 따르며 순종하겠습니까?
●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자신을 바치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십자가 고난을 참으시고 생명을 다해 저를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이 제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제 안에 영생의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meejeanyang님의 댓글
meejean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아들이기도 했던 예수님.
예수님의 십자가의 예언이라 할 만큼 비슷한 경험을 예수님의 1000년 전 조상 다윗이 경험했다.
극도의 갈증, 고통, 수치, 조롱, 자신의 고통을 놀림거리 삼는 자들에게 둘러 싸임...(시69)
다윗이 광야에서, 또는 그의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서 경험한 고통들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일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다윗은 아직 어릴 때 골리앗을 쳐 죽였고 (아마도 전쟁 천재?),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으며, 실제 왕이었지만 그가 광야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쫓겨 다닐 때 가장 인간다운 '사람의 아들'이었던 것 같다.
사람으로서 타고난 명백한 한계에 매일 직면하며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며,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광야.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이면 그의 영은 솟구쳐 올라 그야말로 정복자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곤 했다.
우리 모두 역시 인생의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광야에 서있다.
광야를 오아시스로 바꾸어 놓기는 커녕 나 한 사람의 목마름도 해결할 수 없는,
그래서 그것이 웃음거리가 되는, 결국은 한 줌의 흙일 뿐이라고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광야에 서있다.
그런데 거기 우리의 옆에 또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너덜너덜 찢겨 '무능력'하게 죽어가고 있다.
자기의 목마름도, 묶임도, 고통도, 죽음도 해결할 수 없는 나와 똑같은 모습의 그 사람, '사람의 아들'.
타는 갈증에 비웃는 자들이 준 식초를 물인 줄 알고 마시려 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가장 나이 어린 자에게 부탁하고 있다. 드디어 부르짖는다.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윗 시절, 광야에서 수도 없이 울려퍼졌던 부르짖음이다. 우리 모두가 “도대체 왜…?”라고 탄식하던 신음이다.
전능한데 무능한 척 한 것도 아니고, 원래 무능했던 것도 아니고, 전능한 자가 스스로 무능한 자가 되어버린 그 시간을 나는 오래 오래 생각하고 싶다.
이상하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사람에게 가해질 수 있는 모든 폭력과 저주와 조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만으로도 사람인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광야에 꽂혀진 십자가 앞에서 나는 나음을 입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광야의 현장에서 상하고 부르짖는 인간의 한계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서는 전능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줄 수 없었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