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패망의 지름길 [ 역대하 25:14 - 25:28 ] 20091205 > 큐티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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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패망의 지름길 [ 역대하 25:14 - 25:28 ] 200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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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마샤가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신으로 섬깁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시지만 아마샤는 듣지 않습니다. 교만에 빠진 아마샤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지만 패합니다. 아마샤는 모반한 무리에 의해 라기스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 아마샤의 불신앙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 아마샤의 몰락
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저희가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더라
21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 또 하나님의 전 안에 오벧에돔의 지키는 모든 금은과 기명과 왕궁의 재물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5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26 아마샤의 이외의 시종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7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 열조와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본문 해설
☞ 아마샤의 불신앙 (25:14~16)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마샤는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섬기며 분향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또다시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선지자는 자신의 백성조차 구원하지 못한 신을 의지한다고 책망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위협하면서 그 메시지를 듣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승리에 취한 나머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길로 나아갑니다. 섰다고 생각할 때에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잘되게 하실 때 더욱 겸손한 자세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잘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며 그 뜻에 합당하게 서야 합니다.

☞ 아마샤의 몰락 (25:17~28)
교만이 극에 달한 아마샤는 북 이스라엘 요아스 왕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요아스는 에돔에게 승리를 거둔 것 때문에 교만해졌다고 아마샤에게 응대합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요아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벧세메스로 나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아마샤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까지 끌려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벽 약 400규빗을 헐고, 성전의 보물과 기명들 그리고 왕궁의 재물을 취하고, 사람들까지 포로로 삼아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 아마샤의 비참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그는 반역자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결국 라기스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철저히 몰락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실 때 교만에 빠지는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모든 일이 잘될 때 자만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이 돌이키라고 말씀하실 때 곧바로 돌이킵니까? 성공했던 경험과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승리의 영광을 우상에게 돌리는 어리석은 아마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소서. 제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감사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
우리 부부는 1973년에 처음으로 네덜란드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의 마음을 끈 독특한 풍습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어느 집을 방문하든 꽃을 사 들고 가는 것이었다. 나의 아내는 그 문화를 매우 좋아했다. 특히 내가 네덜란드식으로 꽃을 선물해 주면 무척 좋아했고 나 또한 기뻤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내가 꽃을 한아름 안고 집에 갔을 때 아내가 이렇게 반응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머, 예뻐라! 잠깐만 기다려요. 얼른 가서 지갑 갖고 올께요.” 꽃을 보고 반색하던 아내가 방으로 달려가서 10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나온다. “자, 이거 받으세요.” 나는 분명 어리둥절해서 물을 것이다. “이게 뭐요?” “꽃값이에요. 당신이 꽃을 주었잖아요.” 아내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나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꽃을 사다 준 이유는 꽃값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받고 “주님, 선물 값을 드릴께요. 이번 주일에 교회에 갈게요”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물을 주셨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한다면 그것 역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순수한 선물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 플로이드 맥클랑
한절 묵상 역대하 25장 15절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거룩함과 기도와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일 등에 마음이 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쉽게 타협하면서 그것을 관용이라고 말합니다. 또 쉽게 불순종하면서 그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신을 좇으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에 감사치 못하고 우상에게로, 사람에게로 그 영광을 돌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십시오. D. A. 칼슨/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신약학 교수

벤 토레이의 신앙 이야기

☞ 강권하는 사랑

12월은 사랑을 생각하는 때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놀라운 사랑의 행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축하하기를 고대한다. 지난달에 나는 흔히 ‘율법의 강령’이라 불리는 마태복음 22:35~40을 인용했다. 바울은 에베소서 5:2에서 그것을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가 사랑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 있든지 이 향기로운 사랑을 누린다는 뜻일 수 있다. 아울러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길로 행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 삶을 지배하며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하게 한다. 바울은 이것을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강권’이라는 말이 영어에는 강요나 통제 같은 말로 번역되어 있으나 나는 강권이라는 말이 제일 좋다. 이 말에는 강한 설복의 의미도 있으나 실은 그 이상이다. 강권된다는 것은 물리칠 수 없는 힘에 떠밀려 나간다는 뜻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자아 밖으로 떠민다. 이거야말로 우리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강권했던 증거를 삶 속에서 찾아보라. 당신을 사랑하시는 그분께 당신의 삶을 드렸다면, 이 강권하는 사랑이 손발의 행동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예상치 못한 때였을 수 있다. 그런 행위들이 보이거든, 당신의 마음에 그런 사랑을 심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욱 그리하실 것을 고대하라.
우주의 왕이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강권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시게 한 바로 그 사랑이 새해에도 당신을 새로운 모험과 새로운 기쁨으로 강권할 것이다. 그 사랑 안에 쉬며 그분의 뜻대로 행하시게 해드리라. 이것이 내가 여기에 남기는 마지막 생각이다. 내 부족한 글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당신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었기를 바란다. 당신이 이 사랑에 그리고 서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식에 좀더 가까워졌기를 기도한다. 주님이 그분의 출생을 축하하는 당신에게 복을 주시고 새해에도 내내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
벤 토레이/예수원 삼수령센터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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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v.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일백달란트를 포기할 수 있었던 아마샤가 에돔과의전쟁에서 승리한 후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전쟁에 승리했으면서도, 자기를 섬기는 백성들을 구할 수 없었던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그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으나 역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마음을 다하여 하지는 않았다"란 아마샤에 대한 평가가 생각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찾지 않는 자의 말로가 결국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신을 찾게될 수 있다는 귀한 교훈입니다.

아마샤의 모습이 어처구니 없지만, 그의 아버지 요아스도 잘나가다가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24:18)
그의 할아버지 아하시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처구니 없는 짓만을 행햇던 사람이요. 왕노릇했던 그의 증조할머니(?)는 아예 바알의 앞잡이요 그의 증조할아버지도 역시 바알의 앞잡이 노릇했던 자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고 갈 왕들이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조심해야겠습니다.

내 안에 과감하게 제거하지 못하는 바알과 아세라와 이방신상들은 없는지?

"마음을 다하여하지는 않았다"란 말을 항상 기억하고 정신차리도록 하겠습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점검하며 회개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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