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형통한 이유 [ 역대하 1:1 - 1:6 ] 2009.10.21수
페이지 정보
본문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하심으로 그의 왕위가 견고하고 그 나라가 창대해집니다. 이에 솔로몬이 모든 신하와 방백과 백성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 있는 하나님의 회막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일천 희생 번제를 드립니다.
☞ 솔로몬과 함께하신 하나님
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1 Solomon son of David established himself firmly over his kingdom, for the LORD his God was with him and made him exceedingly great.
☞ 먼저 하나님을 예배한 솔로몬
2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을 명하고
2 Then Solomon spoke to all Israel--to the commanders of thousands and commanders of hundreds, to the judges and to all the leaders in Israel, the heads of families--
3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
3 and Solomon and the whole assembly went to the high place at Gibeon, for God's Tent of Meeting was there, which Moses the LORD's servant had made in the desert.
4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4 Now David had brought up the ark of God from Kiriath Jearim to the place he had prepared for it, because he had pitched a tent for it in Jerusalem.
5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의 지은 놋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5 But the bronze altar that Bezalel son of Uri, the son of Hur, had made was in Gibeon in front of the tabernacle of the LORD; so Solomon and the assembly inquired of him there.
6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6 Solomon went up to the bronze altar before the LORD in the Tent of Meeting and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it.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6절) 일천 번 번제를 드렸다는 뜻이 아니라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렸다는 뜻
본문 해설☞ 솔로몬과 함께하신 하나님 (1:1)
하나님은 다윗의 여러 아들 중에서 솔로몬을 택하시고 그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우셔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해주셨고, 그와 함께하셔서 그와 그 나라를 심히 창대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에게 하신 언약대로 솔로몬을 성전 건축할 자로 택하시고 그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왕이 되어 형통하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솔로몬에게 적극적으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백성 앞에서 존귀하고 위엄 있는 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하신 자를 홀로 두시지 않고 늘 함께하시며 왕 같은 존귀함과 형통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택함을 받은 우리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함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먼저 하나님을 예배한 솔로몬(1:2~6)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왕이 된 솔로몬은 자신을 왕으로 택하시고 존귀와 형통을 주신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그는 신하들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방백과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회막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 놓은 새 장막이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모세가 만든 회막으로 나아간 것은 많은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회막으로 나아간 솔로몬은 브살렐이 만든 놋단 위에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입은 성도는 마땅히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시고 자녀 삼으신 것을 확신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하루를 기대하며 시작합니까?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되새겨 보십시오. 그 은혜와 사랑에 합당한 경배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하나님, 제 메마른 심령에 예배의 부흥을 허락해 주소서. 솔로몬이 예배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듯이, 저 역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고귀한 시간 낭비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것은 분명히 고귀한(Royal) 시간 낭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시간 낭비다. 그러나 예배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예배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예배는 시간 낭비다. 그러나 참으로 고귀한 시간 낭비다.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의 고귀한 광휘에 빠져 들게 하기 때문이다. ‘광휘에 잠겨’(Immersed in Splendor). 나는 이 말에 담긴 이미지를 좋아한다. 이것은 마치 뜨거운 여름날, 산속의 사파이어 빛 호수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예배 또한 하나님의 숭고한 속성과 행위에 우리를 잠기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개인적인 기호와 시간, 편의와 위안의 문제로 바꾸려는 시대와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릴 때 가능한 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 나태와 몽유병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광휘를 바라보며 경배와 섬김과 희생으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힘이나 성취나 성공이 아니라 이웃 사랑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열정을 심어 주고, 더 열정적인 예배로 나아가게 하는 고귀한 시간 낭비다. 예배는 시대에 뒤지며, 비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도 못하며, 때로는 우리 자신들에게조차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기도 하다.
「고귀한 시간 ‘낭비’ - 예배」/ 마르바 던
한절 묵상☞ 역대하 1장 6절
솔로몬은 예배에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무리를 이끌고 하나님 앞에서 천 마리의 희생 제물을 드렸습니다. 번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며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정결해야 했습니다. 천 마리의 짐승을 드렸으니 예배자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겠습니까!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솔로몬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김영욱/ 은혜샘교회 담임목사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v. 6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구약성경에 언급된 가장 많이 알려진 제사의 한 장면입니다.
일천마리 짐승의 생명이 드려진 제사입니다.
이 제물로 드려진 짐승을 가리켜 희생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의미있습니다.
이 한마리 한마리가 희생을 상징하고, 제물로 오신 예수님의 그림자였습니다.
솔로몬은 천마리의 짐승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헌신을 표시하였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시므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장면 속에 이상하게도 당연히 언급되었어야할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또, 법궤는 물론 없는 회막이었고, 번제단 외에는 다른 성구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온전하지 못한 제사였습니다.
온전한 제물이 되어주시고 완전하시고 영원한 제사장되시고 또 성전되시는
그 주님 안에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 솔로몬이 드린 제사보다 더욱
온전하고 거창한 -섭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하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아침 우연히 읽게된 이사야서 1장에 언급된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1: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하나님께서 천마리의 짐승을 바쳤기 때문에 솔로몬을 축복한 것일까요?
주님께서 왜,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고 유다백성들에게 물어보신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구나"
얼마나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의 문제기보다 무슨 동기로 바치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축복의 수단으로 제물을 바친다는 것이야말로 이방종교가 가르치는 제사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심정을 아는 자들이 되게하소서
정수영님의 댓글
정수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하나님은 솔로몬을 왕으로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성전건축이라는
큰 일을 계획하십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형통케 하십니다.
솔로몬의 형통의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솔로몬은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여 일천번제를 드리며
주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솔로몬의 삶의 중심에는 늘 예배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의 형통의 두번째 이유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삶의 중심에 놓겠습니다.
매 순간 순간 예배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 삶을 주님께 온전히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주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길 원합니다.
Eric_Yang님의 댓글
Eric_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4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4 Now David had brought up the ark of God from Kiriath Jearim to the place he had prepared for it, because he had pitched a tent for it in Jerusalem.
솔로몬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었습니다. 분명 솔로몬은 자신의 아버지를
존중했기에 그 아버지의 삶을 전수 받으려 했었습니다. 다윗에게 여러 아들들이 있었지만 솔로몬을 택한
이유도 분명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다윗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 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손수 보여주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요17)를 다시 한번 연상
해 봅니다.
보아스와 에녹을 주님께 기도로 올려드립니다. 오늘 좀더 그들과 마음이, 생각이 서로 가까와 지는 일들에
투자 하겠습니다.
* * * * *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 . .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다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에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정기현님의 댓글
정기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솔로몬의 처음은 좋았습니다....
다윗의 영향과 유산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함으로.....
축복과 은혜의 삶을 얻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오늘 충만하더라도 내가 게으르므로 내일 하나님께 멀어지고...
또 그 다음 날 조금 더 멀어지게 된다면 그 날의 은혜는 내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어제 받은 말씀으로, 어제 받은 은혜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오늘 또 다시 새로운 은혜를 구하고...
오늘 새롭게 주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고여있기를, 멈추어 있기를, 만족하기를 거부하는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지금 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