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한 산고(産苦) [ 갈라디아서 4:12 - 4:20 ] 2009.10.15목 > 큐티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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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위한 산고(産苦) [ 갈라디아서 4:12 - 4:20 ] 2009.10.1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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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갈라디아 교인들은 처음에 바울을 천사와 같이 영접하고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그들과 바울의 관계가 어려워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회복을 위해 다시 한 번 해산의 수고를 감수하기로 결심합니다.

☞ 갈라디아 교인들의 지극한 사랑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I plead with you, brothers, become like me, for I became like you. You have done me no wrong.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3 As you know, it was because of an illness that I first preached the gospel to you.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4 Even though my illness was a trial to you, you did not treat me with contempt or scorn. Instead, you welcomed me as if I were an angel of God, as if I were Christ Jesus himself.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15 What has happened to all your joy? I can testify that, if you could have done so, you would have torn out your eyes and given them to me.

☞ 교인들의 회복에 대한 갈망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6 Have I now become your enemy by telling you the truth?
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7 Those people are zealous to win you over, but for no good. What they want is to alienate you from us, so that you may be zealous for them.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8 It is fine to be zealous, provided the purpose is good, and to be so always and not just when I am with you.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19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20 how I wish I could be with you now and change my tone, because I am perplexed about you!


의심(20절) 헬라어로‘당황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라는 뜻

 


본문 해설☞ 갈라디아 교인들의 지극한 사랑(4:12~15)
이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과 자신 사이의 정서적 관계를 언급하며 호소합니다. 바울과 그들이 복음 안에서 얼마나 애틋한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회상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병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시험 거리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병든 바울을 무능한 종이라고 멸시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사를 대하는 것같이, 더 나아가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맞아 주었습니다. 필요하면 눈이라도 빼 줄 정도로 바울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그들의 사랑을 되새기는 이유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였습니다(12절). 이렇듯 교훈과 가르침은 사랑의 관계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 교인들의 회복에 대한 갈망 (4:16~20)
그런데 지금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으로 바울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누군가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정을 보이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18절). 하지만 유대주의자들은 불순한 동기로, 그들을 자신들의 길로 이끌려고 열심을 내어 접근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분노를 느끼며 몹시 흥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20절). 그래서 당장에라도 달려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서 불편함을 해소하기를 원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바울은 결국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되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감수하기로 결심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영적 회복을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수하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어떻게 사랑으로 도왔습니까?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잘 교훈하기 위해 어떤 사랑의 관계를 맺었나요?
● 형제자매의 영적 회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돕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큰 고통을 겪더라도 기꺼이 감당하겠습니까?



오늘의 기도주위에 많은 믿음의 동역자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과 함께 복음을 위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나에서 우리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에는 늘 그늘이 지고 습기가 잘 증발 하지 않아서,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속에 내가 있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쉽고 당연한 일 같지만, 어찌 보면 그처럼 어렵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실천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품질을 높이는 명품 리더십」/ 김병삼

한절 묵상☞ 갈라디아서 4장 12절
우리가 믿음의 단순성을 버리고 여러 가지 의식과 관습에 마음을 빼앗겨 그것들을 의지하게 되면 얼마나 엄청난 손실입니까! 그러므로 율법이나 외적인 것들에 노예처럼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바울과 같이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새로운 삶의 힘과 열정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강권하심에 복종할 때마다 자아는 작아지고 그리스도는 커져 갈 것입니다.
F. B. 마이어/ 20c 영국 신학자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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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님의 댓글

no_profile 노영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

바울과 갈라디아교인들과의 사랑의 대화를 보면서
우리 이 목사님과 박목사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이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사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눈을 너에게 너의 눈을 나에게.....
부모가 자녀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히 변치않는 21세기 교인을 향한 말씀을 도전 받았습니다.

21세기 성도님들 사랑합니다.
미국 끝에서 보내드립니다.

버지니아 놀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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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영희 목자님,

제게는 바울과 갈라디아교인들과의 사랑이

노영희목자님의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연상케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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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정수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영희 목자님의 헌신적인 섬김과 그 사랑에 늘 감동하며 도전이 됩니다. 저도 목자님과 같이 영혼을 섬기며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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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v. 15 "그 때에는 여러분에게 기쁨이 가득하더니, 지금은 그 기쁨이 어디로 갔습니까? 지금 기억하기로 그 때에는 여러분이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였습니다." (우리말 성경)

15 What has happened to all your joy? I can testify that, if you could have done so, you would have torn out your eyes and given them to me.


자신의 눈을 빼어줄 수 있을 만한 사랑의 대상이 있을 때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을 이토록 사랑할 때에) 저들에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참 기쁨이 있고 없고가 그런 대상이 있고 없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랑의 희생을 베풀 수 있는 관계성이 있다는 것은 기쁨이란 것을 다시 배웁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주님이 주시는 이런 기쁨을 위해서 사랑의 희생을 베풀 준비가 되어있는지..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으로 제 심령을 채워주소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므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케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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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_Yang님의 댓글

no_profile Eric_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19 Oh, my dear children! I feel as if I’m going through labor pains for you again, and they will continue until Christ is fully developed in your lives.


사도 바울은 진정으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항상 대상의 최고의 혜택, 최상의 삶을 기원하며 돕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생의 최고 혜택, 최상의 삶은 예수님 같이 되는 것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또다른 기회, 또 한번의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중간에 두고 우리의 모든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고 성숙해져 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서로 서로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형상을 키워가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서로에게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변화 (예수님의 형상 이루기)를 두고 저는 너무나 쉽게, 안일하게, 짧게 생각하고 일찍 포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물론이지만, 이미 믿었지만 적극적인 영적 경주에서 sideline 으로 나와있는 영혼들을 생각 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J 형제, P 형제, JW 형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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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님의 댓글

no_profile 정수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애듯하고 간절한 형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형제자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처음과 같이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을 지라도 그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그들을 사랑으로 권면하며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해산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합니다.우리안에 이런 사랑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며
다가가겠습니다. 주안에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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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선님의 댓글

no_profile 김명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 햇살을 가득 받으며 때때로 부드러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 빛갈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겠죠.
21세기 형제 ,자매님 여러 성도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될때까지 다시해산의 고통을 주셨습니다.
주님께 헌신하며 평소 서운하고 미웠던 사람들까지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꼭 안아주겠습니다.
건강하고 좋은기분에 미쳐보지못했던것 부드럽게 쓰다듬고 그리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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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을 중심으로 감사, 찬양, 깨닫은 것과 느낌 생각등을 나누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런 말씀의 나눔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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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님의 댓글

no_profile 정수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목사님, 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더욱 힘이 나네요.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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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연님의 댓글

no_profile 주지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과연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지....
굴절된 마음의 창으로 인해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에 사랑을 나눠줄수 없다는 철저한 계산으로 쌓아놓은 담으로 인해 나의 영혼이
메말라 있었음을 봅니다.

이제 다시금 영적회복을 위해 해산의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내야 합니다.
태어날 아이를 기대하며 그 무서운 산고를 이겨내는 산모처럼,
다시금 성령충만과 사랑으로 채워질 나의 영혼을 기대하며..
이 힘든 산고의 시간을 견뎌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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