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와 복 [ 역대상 13:9 - 13:14 ]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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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하나님의 진노와 복
[ 역대상 13:9 - 13:14 ]
오늘의 말씀 요약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자 웃사가 궤를 붙듭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웃사를 치십니다. 다윗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놓습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십니다.
☞ 웃사의 죽음
9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9 When they came to the threshing floor of Kidon, Uzzah reached out his hand to steady the ark, because the oxen stumbled.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0 The LORD's anger burned against Uzzah, and he struck him down because he had put his hand on the ark. So he died there before God.
11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11 Then David was angry because the LORD's wrath had broken out against Uzzah, and to this day that place is called Perez Uzzah.
12 그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2 David was afraid of God that day and asked, "How can I ever bring the ark of God to me?"
☞ 오벧에돔에게 임한 복
13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 메어 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니라
13 He did not take the ark to be with him in the City of David. Instead, he took it aside to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14 The ark of God remained with the family of Obed-Edom in his house for three months, and the LORD blessed his household and everything he had.
충돌하시므로(11절) 히브리어로는 ‘부수다, 흩어 버리다, 산산조각 내다’라는 의미
본문 해설☞ 웃사의 죽음 (13:9~12)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자기가 거하고 있는 성으로 옮기려는 순전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규례와 방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레위 사람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할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어 옮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수레를 몰던 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궤가 떨어질 것 같아 웃사가 궤를 붙들었고, 그때 하나님이 그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따르지 않은 인간적인 열정에 대해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 오벧에돔에게 임한 복 (13:13~14)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가 갑작스럽게 웃사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행진을 멈춥니다. 그 사건을 보고 하나님의 궤에 대해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잘못해서 자신도 웃사처럼 화를 당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궤를 왕궁으로 옮겨 오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놓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을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씀과 다른 방법으로 대한 사람을 징벌하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하나님의 궤가 머물러 있는 집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대로 그분을 섬기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복을 부어 주십니다.
● 나의 믿음 생활을 점검해 보십시오. 말씀에 충실하게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전통과 습관에 따라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나는 삶의 중심에, 가정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어떤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로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만,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할 때가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라
지금은 어림도 없지만, 애들이 어렸을 적에는 내가 집에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기만 하면 다들 달려 나와서 춤을 추곤 했다. 딸아이들은 집 앞에 차를 세우는 소리를 들으면 “아빠 왔다!”라고 소리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러곤 마당에 서서 막 몸을 흔들어 댄다. 얼굴은 초콜릿 투성이에 기저귀를 찬 채로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당연히 온 동네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불쾌해할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궁금하실지도 모른다. ‘애들이 내 임재를 즐거워할까?’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모래 위에서 춤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시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웃사는 이걸 놓친 것 같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궤짝 하나에 담길 만큼 조그만, 그래서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어야 할 분으로 보였다. 그는 주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거룩한 분의 임재 앞에 서기 전에 스스로 정결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회개니 순종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생략하고 수레 뒤에 언약궤를 싣고 신나게 출발했다.
하나님을 향한 외경심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 창조주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신다. 여호와는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경건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에 주린 영혼을 찾으신다. 그런 이들을 찾으시면 즉시 찾아오신다.
「믿음 연습」/ 맥스 루케이도
한절 묵상☞ 역대상 13장 10절
웃사는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위험 표지입니다. ‘하나님을 주의하십시오.’ 처음 신앙생활 때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에 대해 배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선을 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리에 서서 으스대며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저 가장 중요하신 분의 곁에 선 것임을 잊어버립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유진 피터슨/ 리전트 칼리지 명예교수
댓글목록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웃사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넘어질 듯한 언약궤를 엉겁결에 붙들었다가 죽임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 말씀은 절대적이라는 사실. 공의와 심판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준 사건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속한 일에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반면에 오벧에돔은 엉겁결에 언약궤를 모시는 영광을 얻고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 자체가 죄인에게는 큰 축복임을 아울러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무로 만든 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고 그 위에 속죄소가 있는 언약궤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그 속에 신성을 가지시고 또 세상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마치 구약시대에 언약궤를 대하는 백성들과 같아야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마치 구약시대에 언약궤를 대하는 백성들과 같아야 될 것입니다"란 목사님의 커멘트를 읽으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에게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 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 23:28)
마치 수레에서 떨어질 것 같았던 법궤가 문제가 아니라 법궤를 만져서는 안될 웃사의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내 자신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으로 항상 생각하며 주님과 사람 앞에 내 자신을 항상 돌아볼 줄 아는 자가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