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하는 자들의 악함과 어리석음 [ 사도행전 21:27 - 21:40 ] 20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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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붙잡고 소동을 일으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폭행을 가하지만 천부장이 출동해서 바울을 체포하고 영문 안으로 데려갑니다.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백성 앞에서 변론을 시작합니다.
☞ 성전에서 일어난 폭동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27 When the seven days were nearly over, some Jews from the province of Asia saw Paul at the temple. They stirred up the whole crowd and seized him, 28 shouting, "Men of Israel, help us! This is the man who teaches all men everywhere against our people and our law and this place. And besides, he has brought Greeks into the temple area and defiled this holy place."
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29 (They had previously seen Trophimus the Ephesian in the city with Paul and assumed that Paul had brought him into the temple area.)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0 The whole city was aroused, and the people came running from all directions. Seizing Paul, they dragged him from the temple, and immediately the gates were shut. 31 While they were trying to kill him, news reached the commander of the Roman troops that the whole city of Jerusalem was in an uproar.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2 He at once took some officers and soldiers and ran down to the crowd. When the rioters saw the commander and his soldiers, they stopped beating Paul. 33 The commander came up and arrested him and ordered him to be bound with two chains. Then he asked who he was and what he had done.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 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
34 Some in the crowd shouted one thing and some another, and since the commander could not get at the truth because of the uproar, he ordered that Paul be taken into the barracks. 35 When Paul reached the steps, the violence of the mob was so great he had to be carried by the soldiers. 36 The crowd that followed kept shouting, "Away with him!"
☞ 변론을 시작하는 바울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7 As the soldiers were about to take Paul into the barracks, he asked the commander, "May I say something to you?" "Do you speak Greek?" he replied. 38 "Aren't you the Egyptian who started a revolt and led four thousand terrorists out into the desert some time ago?"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39 Paul answered, "I am a Jew, from Tarsus in Cilicia, a citizen of no ordinary city. Please let me speak to the people." 40 Having received the commander's permission, Paul stood on the steps and motioned to the crowd. When they were all silent, he said to them in Aramaic:
천부장(31절) 당시 예루살렘의 천부장은 글라우디오 루시아(행 23:26)로서 760명의 보병과 240명의 기병을 두고 있었음
영문(34절)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안토니아 요새를 말함, 헤롯 성전 서북쪽 언덕 위에 위치
본문 해설☞ 성전에서 일어난 폭동 (21:27~36)
바울이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행한 결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발견하자마자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한 소문이 진실인지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에베소인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섣불리 오해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바울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을 죽일 때와 똑같이 바울을 향해 몰려들어 폭행을 가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천부장 앞에서는 예수님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없애라’라고 쉬지 않고 외쳤습니다. 진리에서 멀어져 복음을 대적하는 인간은 악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습니다.
☞ 변론을 시작하는 바울 (21:37~40)
위기는 기회입니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천부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힙니다. 그는 유창한 헬라어로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천부장의 허락에 따라 바울은 백성 앞에서 변론을 시작합니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그를 없이 하자’라고 외치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바울은 ‘층대 위에 서서’ 말합니다. 이 모습은 결코 죄수의 모습이 아닙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협과 살기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운 일에 직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훈련된 일꾼은 위기의 순간에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대신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바울에 대한 무리의 말이 서로 달랐던 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나에게 있습니까?
● 예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회피하기보다 기회를 만들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사람들의 폭행을 피해 군인들에게 들려가면서도 복음 전파의 기회를 엿보는 바울을 발견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도록 비둘기 같은 정결함과 뱀 같은 지혜를 구합니다.
묵 상 에 세 이
☞ 삶의 가치들
때로 사람들은 이상한 것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한 어린이가 아프리카에 있는 조부모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조부모는 그 어린이를 수렵 여행에 데려갔다. 어린이는 사자와 기린, 코끼리와 원숭이 등 온갖 진귀한 동물들이 이리저리 들판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또 아프리카 음식을 먹었고,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오직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에서나 읽을 장소들을 방문했다. 그 어린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는 그에게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물었다. 아프리카에서 그가 본 것 중 무엇이 가장 기이한 것으로 그의 뇌리에 박혔을까? 우습고도 황당하게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이빨을 다 빼내실 수 있어요.” 어린이들은 그와 같다. 가장 기이한 것에 감동을 받고 그것을 말하는 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폭도들 역시 그와 같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고,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을 했다(행 21:34).
가치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 기도를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기도 모임에 가기를 힘쓴다.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는 데 그들의 시간을 쓴다.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할 기회를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기 위해 불편을 참고 심지어 희생까지 한다. 바울은 그 용기로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Main Idea로 푸는 사도행전」/ 케네스 O. 갱글
한절 묵상☞ 사도행전 21장 32~33절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 전통은 그들을 반항적인 무질서로 몰아갔습니다. 반면에 냉혹한 로마의 사법관들은 바울이 가는 도시마다 부딪힌 종교적인 폭도들보다 복음 전도를 위해 더 나은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대사들이며 법과 질서의 보호자들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말한 대로 ‘예의바름’(civility)이 잃어버린 예술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공적인 무대에 회복시키는 데 가장 관심을 갖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맥스 앤더스/ 성경주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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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에베소에서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올 정도였던 유대교의 골수분자들이 사도바울과 에베소사람 드로비모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자들이 분명히 이미 에베소에서부터 사도바울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여겨 보고 있었을 터이고, 특별히,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율법없는 자들을 얻기 위해 율법없는 자처럼 행하고 있었던 것을 목격하고 이미 잘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드로비모가 실질적으로 성전까지 들어온 것을 목격하지 못했음에도, 바울이 성전에도 서슴없이 드로비모를 데리고 들어왔으리라 짐작했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이방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마당과 유대인들만이 접근할 수있는 마당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참고- http://www.lutheranchurch.ca/resources/fundraising_study_student.pdf) 그리고 그 것을 구분하는 벽이 있었는데, 그 벽에는 이방인으로서 이 선을 넘어서 들어가면 죽음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 밑에 있긴 하였지만, 로마정부도 유대인들에게 이런 특별한 권리를 인정해주었다고 합니다. (Warren Wiersbe 신약주석 Vol 1 p. 491)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에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셔서,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입니다. (17) 그분께서는 오셔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이방인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구원이란, 단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로 인한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할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사이를 가로막는 장벽까지도 허물어 버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와 자유로이 함께 다닐 수 있었던 것을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사도바울은 자유케하는 그리스도의 율법을 경험하고 속한자로서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도바울이 유대인 군중들에게 거의 죽음을 당할 뻔한 위기에 처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허무신 이 장벽을 그가 맘껏 누릴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성전을 가리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가 11:17) 하나님의 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 혹은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만인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명절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에서 일부러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이들의 열심을 보십시요. 그러나, 자신들이 세운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들 유대인들은 오히려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를 낫게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인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진정한 화해를 가져다 주는 길임을 확인합니다. (고후 5:16) 우리교회가 이런 화해의 복음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고 낯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 간의 화해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항상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