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을 향한 모함과 거짓 [ 사도행전 24:1 - 24:9 ] 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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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이 변사 더둘로를 고용해 바울을 고소합니다. 더둘로는 벨릭스 총독을 향해 감사를 표한 후에 바울을 고소하는 이유를 나열합니다. 소요를 일으키고 이단 사설을 전하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 고소의 이유입니다.
☞ 거짓된 아부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1 Five days later the high priest Ananias went down to Caesarea with some of the elders and a lawyer named Tertullus, and they brought their charges against Paul before the governor.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2 When Paul was called in, Tertullus presented his case before Felix: "We have enjoyed a long period of peace under you, and your foresight has brought about reforms in this nation.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3 Everywhere and in every way, most excellent Felix, we acknowledge this with profound gratitude.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4 But in order not to weary you further, I would request that you be kind enough to hear us briefly.
☞ 거짓된 고소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5 "We have found this man to be a troublemaker, stirring up riots among the Jews all over the world. He is a ringleader of the Nazarene sect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6 and even tried to desecrate the temple; so we seized him.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8 By examining him yourself you will be able to learn the truth about all these charges we are bringing against him."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9 The Jews joined in the accusation, asserting that these things were true.
변사(1절) 원래 공적인 연설자나 웅변가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법률 문제에 정통한 변호사를 말함
염병(5절) 장티푸스나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괴수(5절) 두목, 주모자, 선두에 선 자
본문 해설☞ 거짓된 아부 (24:1~4)
바울이 호송된 지 5일 만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유대 장로들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더둘로라는 변사(변호사)까지 고용했습니다. 더둘로는 송사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벨릭스 총독을 향해 아부성 발언을 쏟아 냅니다(3~4절). 한마디로 벨릭스의 선한 통치 덕분에 백성이 태평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AD 52~59년에 유대 총독을 지낸 벨릭스는 성격이 포악해서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들의 폭동은 더 늘어났습니다. 결국 가이사랴 시민들의 고소로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27절). 더둘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악한 인물을 향해 아부를 하면서까지 선한 바울을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 거짓된 고소 (24:5~9)
아부로 말문을 연 더둘로는 이제 본격적으로 바울에 대한 고소 이유를 나열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 역시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먼저, 더둘로는 바울이 각지에서 유대인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킨다고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선동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까지 선동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소요를 일으킨 것입니다. 더둘로는 로마 관리들이 제일 민감하게 생각하는 선동죄를 바울에게 덮어씌우려고 했습니다. 또한 더둘로는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려 했다고 고소합니다. 그러나 이 고소도 사실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성전에서 율법에 따른 의식을 행했을 뿐입니다.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왔다는 혐의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21:28~29). 바울을 고소하는 더둘로의 말에는 화려한 수사는 있을지언정 진실은 없었습니다.
●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악한 세력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세상은 목적을 위해서 거짓을 합리화하곤 합니다.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씁니까?
오늘의 기도바울은 전염병 같은 사람이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불리며 고발을 당했습니다. 주님, 제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난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기쁘게 감당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마르틴 루터의 삶의 비밀
마르틴 루터는 1520년에 두 가지 명제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은 완벽하게 모든 만물의 자유로운 주인이며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완벽하게 모든 만물의 충성스러운 종이며 모든 것에 종속된다.”
1년 후 그는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으며, 모든 것에 종속된다’라는 이 이중적인 진리를 삶으로 보여 주었다. 1521년 4월 16일,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극심한 시련과 마주하기 위해 보름스에 도착했다. 그는 엄청난 대중 시위가 진행되고 있던 그 도시로 들어가서 피곤에 지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 그의 생에서 그 자신이 ‘완벽하게 자유로운 주인이며,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음’을 주장하기 위해 의회 앞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일어나 무엇을 했는가? 당신과 내가 그럴 것처럼 그도 강연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해 열정적인 몇 시간을 보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완벽하게 충성스러운 종, 모든 것에 종속된 자’로서 그 아침을 보냈다.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죽어 가는 한 남자를 방문한 것이다. 그날 오후 그는 자신을 기소한 사람들 앞으로 갔다.
이 이야기에 자유로운 삶의 깊은 비밀이 있다. 자아를 중심에 둔 두려움에서 해방될 때, 자신의 능력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자
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자유를 누린다.
「자유」/ 유진 피터슨
한절 묵상☞ 사도행전 24장 5절
세상은 늘 참된 제자들의 삶의 방식을 나무라며 그들에게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들이라는 표지를 재빠르게 붙여 왔습니다. 바울은 결코 염병, 즉 평화를 깨뜨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어둠에 갇혀 있더라도 인내할 수 있다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비난하든지 간에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느끼면서 그런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H. A. 아이언사이드/ 전 무디기념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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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대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 더둘로는 바울을 가르켜“염병같은 자로”(Trouble maker) 그리고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들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로 표현합니다. 더둘로의 사도바울에 대한 평가는 왜곡된 평가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의 말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을 만나주시고 그에게 변화를 주신 주님은 화평을 주시기 위해오신 분이 아니라, 검을 주러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게하시려고 짐안의 식구끼리 원수가 되게끔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0:34-36)
예수님이 개입되는 곳마다, 불화를 가져오게될 것이라고 주님은 예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자신의 주권을 요구하시며, 자신을 왕으로서 그리고 주인으로서 받아들일 것을 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또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고 주인으로 모실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의가 바르고 점잖습니다. 평화로운 것 같고 편한 것 같지만 무기력합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실 것을 전하거나 선포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저는 예수믿지 않는 중고등학교 동창에게 복음을 증거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도전하자, 이 동창친구가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야! 내 친구 목사님은 지난 20년동안 우리 집을 방문하고 서로 사귐을 가졌지만, 단 한번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나 더 더욱 에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은 안했는데, 너는 왜 나를 이렇게 push하냐?”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소위 예수믿는 다는 자들의 도덕성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수모가 있다면 그 것은 예수님을 증거해서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 수준에도 이르지 못할 도덕적인 수준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왕이요 주인이신 예수님을 honor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삶으로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고, 또 우리들의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사람들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도록 초청하는 것입니다
meejeanyang님의 댓글
meejean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목사님의 묵상에 전적으로 아멘합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주변에 있는 비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에 의해 감동을 받든지 아니면 도전을 받든지 둘중에 하나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동도 도전도 주지 못하면서 무시와 조롱을 당한다면 너무 비참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영광받으셔야 할 하나님께 모욕을 돌려드리는 죄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그런 일은 없을텐데..
왕이신 예수님의 ambassador에 걸맞는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