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복음을 변증한 바울 [ 사도행전 24:10 - 24:23 ] 20090807 > 큐티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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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복음을 변증한 바울 [ 사도행전 24:10 - 24:23 ] 200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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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더둘로가 제기한 고소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고소 내용에 대한 증거나 증인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변증합니다. 벨릭스는 천부장이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합니다.

☞ 바울의 변호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0 When the governor motioned for him to speak, Paul replied: "I know that for a number of years you have been a judge over this nation; so I gladly make my defense.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못 되었고
11 You can easily verify that no more than twelve days ago I went up to Jerusalem to worship.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2 My accusers did not find me arguing with anyone at the temple, or stirring up a crowd in the synagogues or anywhere else in the city.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3 And they cannot prove to you the charges they are now making against me.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4 However, I admit that I worship the God of our fathers as a follower of the Way, which they call a sect. I believe everything that agrees with the Law and that is written in the Prophets,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5 and I have the same hope in God as these men, that there will be a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16 So I strive always to keep my conscience clear before God and man.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7 "After an absence of several years, I came to Jerusalem to bring my people gifts for the poor and to present offerings.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18 I was ceremonially clean when they found me in the temple courts doing this. There was no crowd with me, nor was I involved in any disturbance. 19 But there are some Jews from the province of Asia, who ought to be here before you and bring charges if they have anything against me.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0 Or these who are here should state what crime they found in me when I stood before the Sanhedrin--21 unless it was this one thing I shouted as I stood in their presence: 'It is concerning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at I am on trial before you today.' "
☞ 벨릭스의 재판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2 Then Felix, who was well acquainted with the Way, adjourned the proceedings. "When Lysias the commander comes," he said, "I will decide your case." 23 He ordered the centurion to keep Paul under guard but to give him some freedom and permit his friends to take care of his needs.

 


본문 해설☞ 바울의 변호 (24:10~21)
더둘로의 발언이 끝나자 바울은 모든 고소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정황을 이야기하면서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한 일도 없었고, 성전 안에서 의례를 행한 것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고소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나 증인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야기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변호의 시간을 로마 총독과 관리들 그리고 유대인들 앞에서 복음을 변증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가 결코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른 신앙임을 강변합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 벨릭스의 재판 (24:22~23)
바울의 변론을 듣고 난 총독 벨릭스는 재판을 중지시키고 처음에 사건을 조사한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재판을 속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조처한 이유는 그가 기독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총독으로 있으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보고를 자주 들었을 것이고,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를 통해서도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던 그가 바울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하는 등의 호의를 베푼 것은 기독교에 대한 그의 인식이 나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평화적인 삶을 추구한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 나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복음을 당당하게 전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용기가 있습니까?
●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의 기도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 위해 노력한 바울의 자세를 본받게 하소서. 주님, 저의 양심과 행실을 바울처럼 깨끗하게 하여 주소서.



 

 묵 상 에 세 이
☞ 복음의 변증
1904년 영국 웨일스 대부흥 기간, 한 신문기자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운동의 취재를 맡았다. 카디프의 기차역에 도착한 후,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역무원에게 물었다. “대부흥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이 안에 있습니다.” 역무원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님의 큰 운동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부흥이 어디서 벌어지는가? 그것은 건물이나 다른 어떤 장소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들의 마음에서만 생겨난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역사하길 기도할 때 주위에서 그 응답을 찾지 말라. 내면에서 찾으라. 하나님의 가장 큰 기적은 인간의 영혼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 말은 많지만 능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통해 사람들과 사회가 변할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있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일에 감탄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우리가 채울 수 없는 필요들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집을 줄 수 없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무력하다.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된다.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한절 묵상☞ 사도행전 2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양심입니다. 양심은 비록 죄로 무디어지거나 어두워질 때조차 여전히 선과 악의 실체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나타냅니다. 양심이 없다면 우리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은 배처럼 그리고 방향 체계를 잃어버린 유도 장치 미사일처럼 방황할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 순회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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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Or these who are here should state what crime they found in me when I stood before the Sanhedrin--21 unless it was this one thing I shouted as I stood in their presence: 'It is concerning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at I am on trial before you today.' "

자신을 재판하는 벨릭스 총독과 자신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에 둘러싸여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잘못한 것이 혹시 있다면, 그 것은 하나님 안에서 갖고 있는 부활에 대한 소망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갖고 있는 소망이 다만 이 세상에 관한 것 뿐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없는 자보다 더욱 불쌍한 자니라라고 말할 정도로 그가 갖고 있는 부활에 대한 소망은 그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고전 15:19)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시고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돌아가실 어머니를 생각할 때에 더욱 우리 신앙의 핵심이 부활임을 피부로 느낍니다. 부활이 없다면, 나의 믿음은 헛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겠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은 낭비된 것이라고까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갖고 있는 수많은 좋은 목적들이 있지만, 결국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죽으신 것도 결국은 사망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대열에 참여하게 하신 것임을 믿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인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목적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부활에 대한 소망때문에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제 QT 본문에 언급한 제 동창친구는 미국에 35년전 쯤 들어와서 영어와 미국사회를 일찍 배운 덕택으로 그 곳 (라스베가스) 한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고 (한인회장도 하였음) 또, 한인들을 접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회의를 많이 갖게되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교회직분도 있고 굉장한  신앙을 가진 것 같은 분들의 삶이 거의 예외가 없이,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도덕적인 수준이 낮은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등쳐먹기까지하는 경우들을 너무 많이 당해서 더 이상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신뢰를 갖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가졌다고 하지만, 마치 보이는 이세상이 전부인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믿음이고 현실은 현실이다라는 것이 수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아닐까요?  내게도 그런 성향이 있음을 조심하여야겠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걱정하고 관심이 많고 조바심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살게될 나라를 염두에두고 오늘 이 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리하여, 우리가 주안에서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란 것을,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야야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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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jeanyang님의 댓글

no_profile meejean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본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바울처럼 예수님도 자신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졌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론하며 복음증거의 기회를 삼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예수님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해 자신을 고소하는 자들의 거짓 증거에 대해 침묵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억지로, 억울하게, 할수없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계획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미 준비된 끔찍한 사형틀에 자신의 몸을 놓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법정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받아 담대하게 순종했습니다.
똑같은 법정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사명을 순한 어린양처럼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나를 사랑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께 주님을 따르겠다고, 억지로가 아니라, 좋아서, 자원하여 주님을 따라가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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