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피는 선교의 씨앗 [ 사도행전 7:46 - 7:60 ] 200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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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의 말씀 요약 ]
스데반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 조상들의 죄를 반복하고 예수님을 죽인 것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쳐 죽이고, 그는 예수님이 했던 기도를 드리며 순교합니다.
☞ 조상들의 죄를 반복한 이스라엘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6 who enjoyed God's favor and asked that he might provide a dwelling place for the God of Jacob. 47 But it was Solomon who built the house for him.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48 "However, the Most High does not live in houses made by men. As the prophet says: 49 " 'Heaven is my throne, and the earth is my footstool. What kind of house will you build for me? says the Lord. Or where will my resting place be? 50 Has not my hand made all these things?'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1 "You stiff-necked people, with uncircumcised hearts and ears! You are just like your fathers: You always resist the Holy Spirit!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2 Was there ever a prophet your fathers did not persecute? They even killed those who predicted the coming of the Righteous One. And now you have betrayed and murdered him-- 53 you who have received the law that was put into effect through angels but have not obeyed it."
☞ 스데반의 순교
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4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furious and gnashed their teeth at him.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5 But Stephen, full of the Holy Spirit, looked up 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6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7 저희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7 At this they covered their ears and, yelling at the top of their voices, they all rushed at him, 58 dragged him out of the city and began to stone him. Meanwhile, the witnesses laid their clothes at the feet of a young man named Saul.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9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60 Then he fell on his knees and cried out,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발등상(49절) 발을 올려놓는 데 쓰는 가구
자니라(60절) 여기서 잠은 죽음을 뜻하는 완곡 어법
본문 해설☞ 조상들의 죄를 반복한 이스라엘(7:46~53)
스데반은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정작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에만 계시는 제한된 분이 아님을 지적했습니다. 이 세상이 모두 하나님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기대와는 다른 형식적인 종교를 세웠고, 결국에는 그 조상들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패역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는데, 그들은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엄청난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은 기나긴 변론을 통해 마침내 그들의 패역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성령을 거스를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지 깨달아야 합니다.
☞ 스데반의 순교(7:54~60)
불의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됩니다. 성령을 거슬러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수님을 죽인 패역한 이스라엘이 이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악한 세상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스데반을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의 광경을 증언하는 스데반의 말이 듣기 싫어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증인들을 세우는 그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불의의 제물이 된 스데반은 예수님의 위대한 용서의 기도를 반복하고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역사는 이런 불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증인이었던 사울을 통해 확산되어 나갑니다.
● 내 마음과 귀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잘못과 실패를 나도 똑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 불의의 자리에 서서 진리를 배척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귀를 막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기도죽기까지 복음을 전한 스데반처럼 제 삶을 통해 복음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을 늘 기억하며, 목숨도 아끼지 않는 담대한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사랑의 척도
나는 최근에 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원리를 발견했다. 한 작은 암사자가 새끼들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 먹잇감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그 먹이를 새끼들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가기에 덩치가 작았던 암사자는 새끼들을 데리고 먹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예닐곱 마리의 하이에나가 나타나 암사자와 새끼들을 에워쌌다. 암사자는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암사자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자기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 그리고 암사자가 자기 새끼들을 공격하려는 하이에나들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이유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헌신이 창조 질서 안에 심겨져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나 무언가에 진정으로 헌신할 때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시간, 에너지, 돈 그리고 당신의 꿈을 어디에 투자하는지 보면 된다. 우리가 무엇을 바쳐야 하든 그것은 우리가 가장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희생하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느냐와 정확히 일치한다. 위대한 크리스천은 위대한 희생을 함으로써 위대한 사랑을 입증한다.
「위대함, 크리스천의 소명」/ 칩 잉그램
한절 묵상☞ 사도행전 7장 55절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었습니다. 곧 하나님을 향한 스데반의 변함없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험악한 위기에 대해서 전혀 불평할 뜻이 없음을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알기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위기를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옴을 뜻합니다. 인생에 위기와 고난이 옵니까? 오직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십시오.
이상원/ 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박경수 교수의 이야기 교회사
☞ 중세 십자군 이야기
교회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다.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긴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분 아래 감행된 이 전쟁은 1096년 1차 원정부터 1291년 8차 원정까지 근 2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런데도 이 긴 기간 중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한 것은 1차와 6차 원정 때 잠시뿐이었고, 대부분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4차 원정 때는 같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학살과 노략질을 자행함으로써 동방과 서방 교회 사이에 지금껏 가시지 않는 적대감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원정 중에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를 자행함으로써 이후 유럽 역사에서 이 망령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도록 만들었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슬람의 근본적인 적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십자군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가슴이나 깃발에 십자가 표시를 새긴 데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과연 십자가와 전쟁이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전쟁을 독려했던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을 ‘거룩한 전쟁’ 혹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일찍이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전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달콤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쟁은 멀리 떨어져서 말로만 싸우는 몇몇 사람의 욕심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불행일 수밖에 없다. 십자군 전쟁이 서유럽인, 유대인, 비잔틴인, 아랍인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듯이, 전쟁에는 오직 패자만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원자력과 핵을 들먹이는 시대에 전쟁은 공멸(共滅)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서는 인간의 욕심과 죄의 총체적 산물인 전쟁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그리스도교조차도 그 전쟁에 편승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사이에 ‘샬롬’(평화)을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 땅에 6월이 오면 우리에게 평화에의 염원은 더욱 간절해진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스데반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 조상들의 죄를 반복하고 예수님을 죽인 것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쳐 죽이고, 그는 예수님이 했던 기도를 드리며 순교합니다.
☞ 조상들의 죄를 반복한 이스라엘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6 who enjoyed God's favor and asked that he might provide a dwelling place for the God of Jacob. 47 But it was Solomon who built the house for him.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48 "However, the Most High does not live in houses made by men. As the prophet says: 49 " 'Heaven is my throne, and the earth is my footstool. What kind of house will you build for me? says the Lord. Or where will my resting place be? 50 Has not my hand made all these things?'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1 "You stiff-necked people, with uncircumcised hearts and ears! You are just like your fathers: You always resist the Holy Spirit!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2 Was there ever a prophet your fathers did not persecute? They even killed those who predicted the coming of the Righteous One. And now you have betrayed and murdered him-- 53 you who have received the law that was put into effect through angels but have not obeyed it."
☞ 스데반의 순교
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4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furious and gnashed their teeth at him.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5 But Stephen, full of the Holy Spirit, looked up 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6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7 저희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7 At this they covered their ears and, yelling at the top of their voices, they all rushed at him, 58 dragged him out of the city and began to stone him. Meanwhile, the witnesses laid their clothes at the feet of a young man named Saul.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9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60 Then he fell on his knees and cried out,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발등상(49절) 발을 올려놓는 데 쓰는 가구
자니라(60절) 여기서 잠은 죽음을 뜻하는 완곡 어법
본문 해설☞ 조상들의 죄를 반복한 이스라엘(7:46~53)
스데반은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정작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에만 계시는 제한된 분이 아님을 지적했습니다. 이 세상이 모두 하나님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기대와는 다른 형식적인 종교를 세웠고, 결국에는 그 조상들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패역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는데, 그들은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엄청난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은 기나긴 변론을 통해 마침내 그들의 패역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성령을 거스를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지 깨달아야 합니다.
☞ 스데반의 순교(7:54~60)
불의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됩니다. 성령을 거슬러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수님을 죽인 패역한 이스라엘이 이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악한 세상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스데반을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의 광경을 증언하는 스데반의 말이 듣기 싫어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증인들을 세우는 그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불의의 제물이 된 스데반은 예수님의 위대한 용서의 기도를 반복하고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역사는 이런 불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증인이었던 사울을 통해 확산되어 나갑니다.
● 내 마음과 귀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잘못과 실패를 나도 똑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 불의의 자리에 서서 진리를 배척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귀를 막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기도죽기까지 복음을 전한 스데반처럼 제 삶을 통해 복음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을 늘 기억하며, 목숨도 아끼지 않는 담대한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사랑의 척도
나는 최근에 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원리를 발견했다. 한 작은 암사자가 새끼들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 먹잇감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그 먹이를 새끼들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가기에 덩치가 작았던 암사자는 새끼들을 데리고 먹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예닐곱 마리의 하이에나가 나타나 암사자와 새끼들을 에워쌌다. 암사자는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암사자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자기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 그리고 암사자가 자기 새끼들을 공격하려는 하이에나들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이유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헌신이 창조 질서 안에 심겨져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나 무언가에 진정으로 헌신할 때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시간, 에너지, 돈 그리고 당신의 꿈을 어디에 투자하는지 보면 된다. 우리가 무엇을 바쳐야 하든 그것은 우리가 가장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희생하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느냐와 정확히 일치한다. 위대한 크리스천은 위대한 희생을 함으로써 위대한 사랑을 입증한다.
「위대함, 크리스천의 소명」/ 칩 잉그램
한절 묵상☞ 사도행전 7장 55절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었습니다. 곧 하나님을 향한 스데반의 변함없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험악한 위기에 대해서 전혀 불평할 뜻이 없음을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알기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위기를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옴을 뜻합니다. 인생에 위기와 고난이 옵니까? 오직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십시오.
이상원/ 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박경수 교수의 이야기 교회사
☞ 중세 십자군 이야기
교회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다.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긴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분 아래 감행된 이 전쟁은 1096년 1차 원정부터 1291년 8차 원정까지 근 2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런데도 이 긴 기간 중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한 것은 1차와 6차 원정 때 잠시뿐이었고, 대부분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4차 원정 때는 같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학살과 노략질을 자행함으로써 동방과 서방 교회 사이에 지금껏 가시지 않는 적대감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원정 중에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를 자행함으로써 이후 유럽 역사에서 이 망령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도록 만들었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슬람의 근본적인 적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십자군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가슴이나 깃발에 십자가 표시를 새긴 데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과연 십자가와 전쟁이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전쟁을 독려했던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을 ‘거룩한 전쟁’ 혹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일찍이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전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달콤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쟁은 멀리 떨어져서 말로만 싸우는 몇몇 사람의 욕심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불행일 수밖에 없다. 십자군 전쟁이 서유럽인, 유대인, 비잔틴인, 아랍인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듯이, 전쟁에는 오직 패자만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원자력과 핵을 들먹이는 시대에 전쟁은 공멸(共滅)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서는 인간의 욕심과 죄의 총체적 산물인 전쟁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그리스도교조차도 그 전쟁에 편승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사이에 ‘샬롬’(평화)을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 땅에 6월이 오면 우리에게 평화에의 염원은 더욱 간절해진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댓글목록
meejeanyang님의 댓글
meejeany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엄청나신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게 '쇼'를 하다니...
잘 믿는 척, 누구보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인척... 하면서
마음속에 꼭꼭 간직한 자기중심, 정당화, 미움, 멸시, 냉정, 무관심...
이 외에도 아주 다양한 색깔의 죄들에서 냄새를 풍기니
참아 주셨던 하나님의 인내심에 다시 한번 놀라고
사랑해서 참는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나를 감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그분 앞에서만은 내 속을 다 드러내놓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샅샅이 비춰주시어
주님이 베드로의 발가락 사이사이 씻어주신 것처럼
내 마음속 구석 구석 냄새 나는 것들
씻어주세요.
회개하고 용서받고
십년묵은 체증 내려가듯이
오래된 변비(?) 뻥 뚤리듯이
가볍고 날아갈 듯한 기분,
기쁨, 평안, 자유, 소망 딱 가지고
다시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