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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 마태복음 27:57 - 27:66 200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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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의 말씀 요약]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자기 무덤에 장사지냅니다. 한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갈까 봐 무덤을 인봉하고 파수꾼을 세웁니다.

☞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와 헌신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7 As evening approached, there came a rich man from Arimathea, named Joseph, who had himself become a disciple of Jesus.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58 Going to Pilate, he asked for Jesus' body, and Pilate ordered that it be given to him.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59 Joseph took the body, wrapped it in a clean linen cloth,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0 and placed it in his own new tomb that he had cut out of the rock. He rolled a big stone in front of the entrance to the tomb and went away.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1 Mary Magdalene and the other Mary were sitting there opposite the tomb.

☞ 부활을 거부하는 세력들
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2 The next day, the one after Preparation Day,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went to Pilate.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3 "Sir," they said, "we remember that while he was still alive that deceiver said, 'After three days I will rise again.'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4 So give the order for the tomb to be made secure until the third day. Otherwise, his disciples may come and steal the body and tell the people that he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is last deception will be worse than the first."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5 "Take a guard," Pilate answered. "Go, make the tomb as secure as you know how."
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66 So they went and made the tomb secure by putting a seal on the stone and posting the guard.


세마포(59절) 올이 고운 삼베
예비일 다음 날(62절) 안식일을 일컫는 말

 


본문 해설☞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와 헌신 (27:57~61)
아리마대 요셉은 십자가 사건을 지켜본 후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충성심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를 참 제자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의 신분을 고려할 때, 그의 행동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정성껏 싸서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새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참된 제자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참된 헌신은 소중한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참 제자로 거듭난 아리마대 요셉은 참된 헌신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의 장을 마련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 부활을 거부하는 세력들 (27:62~66)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기억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주님의 말씀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다시 살 것이라는 생명의 말씀, 더 이상 끝이 아니라는 소망의 말씀, 죽음을 이길 것이라는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말씀에 대한 그들의 행동은 철저한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가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릴까 봐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봉인하고 파수꾼을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불신앙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숨기려 했던 그들의 악한 의도를 보여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이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드릴 준비가 돼 있습니까?
●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려면 내 안에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고백과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주님, 믿음을 드러낼 순간이 올 때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용기를 주소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처럼 말씀을 알지만 믿지 않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믿음은 동사다!
위대한 모험가들은 믿음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본다. 믿음은 당신이 가진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이 행하는 어떤 것이다. 아벨에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게 하고, 노아에게 해가 쨍쨍 내리쬐어도 방주를 만들게 하며,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게 하고, 다니엘에게 죽음의 위협 속에도 기도하게 하는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고, 그분의 성품으로 인해 그 말씀이 진실인 것을 안다. 또 그 가운데 많은 대가가 포함돼 있다는 것도 안다. 히브리서 11장에 실린 많은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만, 아직 약속된 나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죽임을 당했고, 어떤 사람은 추방당했으며, 어떤 사람은 박해를 받았다. 세상은 그들을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앞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고, 위대한 모험을 감수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크리스천은 안전하게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어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뒤에 버려두기를 원하시는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가 있는가? 아니면 다시 찾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당당히 맞서야 하는, 일어서서 대적해야 하는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가 있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그만 걱정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행하도록 부르셨다고 알고 있는 어떤 일을 행하라. 모험이 없는 곳에 믿음도 없다!
「위대함, 크리스천의 소명」/ 칩 잉그램

한절 묵상☞ 마태복음 27장 57~58절
우리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십시오. 안락의자에 앉거나, 십자가 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이 제자의 삶은 아닙니다. 제자는 두 나라가 접전하는 전투에 참여합니다.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전투에 참여하기를 자원합니다. 어느 날 주님의 보좌 앞에 서서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려 했지만 너무 위험했습니다”라고 변명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안전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크리스 티그린/ 기독교 저술가

이무석 교수와 떠나는 내면 여행

☞ 울어야 할 때 울어라

우리 교회에서 내 별명은 ‘울보 장로’다. 그 이유는 대표 기도를 하다가 자주 울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긴 남자가 대중 앞에서 우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한국 문화권에서 남자가 우는 것은 나약하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러면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인 나로서도 매우 난감해진다. 그래서 나는 대표 기도를 하기 전에 울지 않으려 마음을 다진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관심을 돌릴 만한 여러 가지 상상도 준비한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번번이 무너진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격스러워 울게 되고, 내 죄가 부끄러워 울게 된다. 부족한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면 예배 후에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은 고맙게도 나를 위로해 준다. “장로님, 감사해요. 저도 장로님을 따라서 같이 울었어요.” 연로하신 선배 한 분은 예배 후에 일부러 찾아오셔서 말없이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성령님이 메마른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감격과 눈물을 주셨다’라며 감사하셨다.
사실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예수님도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그 눈물을 본 사람들은 ‘와, 예수님이 나사로를 정말 사랑하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다. 그 처참한 종말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분의 발을 눈물과 향유로 적셨던 여인의 눈물을 귀히 여기기도 하셨다. 예수님은 인정이 참 많은 분이셨다.
눈물은 슬픔을 씻어 내는 약이다. 아이들은 서러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운다. 배고플 때도, 억울할 때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도 운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슬픔 억누르기’를 배우게 된다. 자신을 강하게 보이기 위해 슬픔을 억누르고, 자기 조절을 못하게 될까 봐 슬픔을 억누른다. 그러나 영국의 정신과 의사 모즐리 박사는 “눈물에 씻겨 내려가지 못한 슬픔은 위장을 아프게 한다”라고 말했다. 위장뿐 아니다. 가슴도 아프게 하고 우울증에 빠뜨리게도 한다. 메마른 말과 지식만으로 마음과 영혼을 치유할 수 없다. 성령의 단비 같은 눈물이 필요하다. 기도하며 울고, 말씀을 보며 울고, 간증하며 울자.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으면 건강한 인격이다.
이무석/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국제정신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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