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 에베소서 1:17-23 10/2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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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 1:17-23)
기도: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듣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하소서. 마음 속에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쳐 주님께 복종시키는 귀한 시간 되게 하셔서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듣는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양식 큐티에 나왔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비행기 조종사와 교수, 목사, 그리고 등산가, 이렇게 네 사람이 조그만 비행기에 타고 날아가던 중에 엔진이 멈춰버렸습니다. 조종사는 “낙하산이 세 개 밖에 없는데, 내 비행기니까 내가 하나 가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교수는 “나는 똑똑하고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니 나도 하나 가지겠습니다.”라며 뛰어내렸습니다.
목사는 등산가에게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싫으니 마지막 낙하산을 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등산가는 “아직 낙하산이 두 개 남아 있어서 우리가 하나씩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교수가 낙하산 대신 제 배낭을 메고 뛰어내렸네요!”라고 답하였습니다. 비록 교수는 자신이 땅에 안전히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확신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1. 우리 (교회) 가운데 베푸시는 능력을 알아야하고 필요한 이유는?
혹시 우리에게는 낙하산이라고 착각하는 배낭은 없습니까? 우리 인생의 끝 날에 내가 의지하던 것이 진짜 낙하산인지 아니면 배낭에 불과한지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정말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질문이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일은 믿음의 부모님들 조차도 타협하는 듯한 모습을 볼 때입니다.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좋아 한다면, 자녀의 배우자가 세상적으로 그럴 듯 하고 서로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믿음이 있던 없던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배낭을 낙하산이라 믿고 사니까 자녀들도 배낭을 낙하산으로 믿고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치 않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찬송가의 가사처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이 반드시 오게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멋있어 보이는 배낭도 배낭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고 자랑스러원 하던 식구도, 외모도,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지식도, 친구도 다 끊어질 그 날이 반드시 오게되 있습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 어떤 것인지 20-23절에 설명합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옆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이런 능력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몸된 교회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교회의 신랑이 되었다는 교회의 굉장한 위치와 특권과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토록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베푸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도록 기도하고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의 결론 부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0-11) 주 안에서 그리고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지 않으면 마귀의 간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없이는 도저히 이 세상과 우리 육체와 사탄의 능력을 대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편지합니다. 고후 11:3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을 유혹했던 사탄이 오늘날 우리도 유혹합니다. 낙하산처럼 보이는 배낭으로 우리를 미혹하며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 살아가게 합니다. 결국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떠나 결국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우리는 일생 끝나는 날까지 한발은 주님에게 다른 한발은 세상에 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드러나지 않는 삶,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치 못하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고있습니다.
2. 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왜, 2000년전의 많은 초대교회에서는 병이 고쳐지고 귀신이 쫓겨나고 박해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형제를 위하여 재산을 나누는 이런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지금도 인도네시아 같은 선교지에서는 이런 주님이 능력이 드러나는데 오늘날 우리 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교회에서는 이런 그리스도의 능력이 부분적으로만 드러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Tom Nelson이란 목사님이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4가지 잘못된 이미지를 다음과같이 소개하였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교회를 gas station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개스탱크가 바닥이 났을 때 좋은 설교를 통해서 1주일 동안 살아갈 영적개스를 공급받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교가 좋은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두번째는 사람들이 교회를 영화 상영관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시간 동안 편안 한 의자에 앉아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배란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마음의 문제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미소지면서 나올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시간 부담없이 편안히 즐기다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세번째는 교회를 drug store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픈 부분을 치료 받을 수 있는 해결책을 주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네번째는 교회를 월마트 같은 big box retailer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서 모든 연령층의 모든 종류의 필요을 채워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취사 선택해서 듣고 참여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교회를 찾습니다.
나를 채워주십시요. 나를 즐겁게 해주십시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요.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주십시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교회의 이미지는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비자인 성도들의 기호에 맞추어 주어야 하는 사업처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의 모습이 베스트 딜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언제든지 좀 더 나은 딜이 있으면 교회를 떠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묘사된 교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선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잊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성도나 교회들의 모습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목사들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을 인정합니다. 목사들이 자신을 교회의 머리라고 착각할 때가 많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누구 목사교회라고 지칭할 때가 많습니다. 담임목사 세습도 목사가 교회의 주인 라는 하나의 추태일 수 있습니다. 크고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는 어깨를 펴고 다니고 숫자가 적고 그나마 성장치 못하는 교회의 목사는 어깨를 움추리고 다니는 것도 역시 교회의 머리가 목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영적지도자들부터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란 것을 삶과 사역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고 가르치고 실천하지 못했기때문에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란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보기에 그럴 듯한 교회를 찾아 헤메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교회 식구들도 문제입니다. 마치 소비자가 사업처에 대해 물건이 왜이러냐, 써비스가 왜 이러냐 교회에 대해서 불평하고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교회마다 불평이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롬 14:4 정말 예수님을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교회를 함부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교회 내의 목회자들이나 다른 지체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나의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분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머리로 모시지 않는 증거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전무하면서, 회의하는 시간에만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를 머리로 착각하는 증거일 것입니다. 회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게을리 하므로 주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죄를 짓는 일을 범치 말아야할 것입니다.
자신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세번 간구한 바울에게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응답을 받은 사도바울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약할 때 강함주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의 필요를 주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의존하므로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을 교회의 머리란 생각을 잊고 주님을 의지 하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힘으로 사역을 감당하려고합니다.
오늘날 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모시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머리의 역할을 하려고 하기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소원하고 기대하는 부흥은 먼저 철저히 주님이 교회의 주님되시고 머리되심을 인정함으로 시작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으로 교회의 머리시라면 우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교회를 친히 다스리셔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리라는 소원을 가지고 포기하지맙시다.
또 한가지 교회의 중요한 문제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기도했다는 것은 에베소교회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주님의 영광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낸 후 몇십년 후에,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소개됩니다. 계 2: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 수준으로는 에베소 교회는 굉장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감당했고 수고하고 인내했고 악한 자들을 쫓아내고 교리적으로도 올바르게 서려고 노력했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소망을 잃지 않았지만 결국 주님께서 그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교회일이나 영적인 일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자녀들을 잘 돌보고 집안 살림 잘해주어도 남편을 사랑치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신부이기때문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게되면 아내의 소유가 남편의 소유가 되고 남편의 소유가 아내의 소유가됩니다. 교회가 주님과 연합하므로 주님의 능력이 교회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마음을 멀리할 수록 주님의 능력도 소원하게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만큼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후 11:3말씀을 읽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탄의 목적은 단 한가지입니다. 성도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뺏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멀어지면 사탄과 세상과 싸워이길 능력도 없어지게 됩니다. 연속극이나 뉴스나 스포츠를 볼 시간은 있으면서도 주님과 함께할 시간을 가질 여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아니 한 수 더떠서 스스로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오히려 오히려 주님과 주님의 사람들에게 적대자 노릇을 할 수도 있습니다.
3. 교회가운데 베푸시는 능력이 드러나려면
그래서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도록" 간구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신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동행하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신혼부부의 사랑처럼, 예수님을 미치도록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사도바울은 “그들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간구합니다.” 엡 3:17-19 예수님은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기대하시고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만유를 지배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시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사실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안목이 열려야겠습니다.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예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권이 되도록 기도하면 그 분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미치는 것이 능력입니다 비록 우리는 소수지만, 우리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로서 모인다면 우리 가운데 영적인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들, “주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다면,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요 또한 신랑이란 사실을 진실로 믿는 소수가 함께 모인다면 영적인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폭팔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소원합니다
주님,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토록 귀히 여기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보게 하소서. 주님 안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라는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진정한 필요는 주님 자신인 것을 보게 하소서 주님께 미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백성이 배고프고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떡이 없어서가 마실 물이 없어서고 아니고 주님에 대한 배고픔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생수를 생명의 떡을 맛보게 하소서.
주님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 마음을 채우소서.
주님,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볼 수 없기에 낙망에 빠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 이유를 압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교회의 주인으로 교회의 머리로 인정치 않을 때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가 입술로는 주님의 교회라고 말하지만, 실지로는 우리교회라고 부르면서 우리 스스로가 교회를 세우며 교회를 책임져야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존재할 뿐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21세기 침례교회를 생각할 때에 염려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머리이시므로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저희들은 단지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주님이 머리도심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고백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또 관계성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의 머리되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부흥이 있게 하옵소서.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 1:17-23)
기도: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듣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하소서. 마음 속에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쳐 주님께 복종시키는 귀한 시간 되게 하셔서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듣는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양식 큐티에 나왔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비행기 조종사와 교수, 목사, 그리고 등산가, 이렇게 네 사람이 조그만 비행기에 타고 날아가던 중에 엔진이 멈춰버렸습니다. 조종사는 “낙하산이 세 개 밖에 없는데, 내 비행기니까 내가 하나 가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교수는 “나는 똑똑하고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니 나도 하나 가지겠습니다.”라며 뛰어내렸습니다.
목사는 등산가에게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싫으니 마지막 낙하산을 쓰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등산가는 “아직 낙하산이 두 개 남아 있어서 우리가 하나씩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교수가 낙하산 대신 제 배낭을 메고 뛰어내렸네요!”라고 답하였습니다. 비록 교수는 자신이 땅에 안전히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확신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1. 우리 (교회) 가운데 베푸시는 능력을 알아야하고 필요한 이유는?
혹시 우리에게는 낙하산이라고 착각하는 배낭은 없습니까? 우리 인생의 끝 날에 내가 의지하던 것이 진짜 낙하산인지 아니면 배낭에 불과한지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정말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질문이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일은 믿음의 부모님들 조차도 타협하는 듯한 모습을 볼 때입니다.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좋아 한다면, 자녀의 배우자가 세상적으로 그럴 듯 하고 서로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믿음이 있던 없던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배낭을 낙하산이라 믿고 사니까 자녀들도 배낭을 낙하산으로 믿고 사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치 않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찬송가의 가사처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이 반드시 오게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멋있어 보이는 배낭도 배낭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고 자랑스러원 하던 식구도, 외모도,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지식도, 친구도 다 끊어질 그 날이 반드시 오게되 있습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 어떤 것인지 20-23절에 설명합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옆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이런 능력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몸된 교회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교회의 신랑이 되었다는 교회의 굉장한 위치와 특권과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토록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베푸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도록 기도하고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의 결론 부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0-11) 주 안에서 그리고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지 않으면 마귀의 간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없이는 도저히 이 세상과 우리 육체와 사탄의 능력을 대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편지합니다. 고후 11:3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을 유혹했던 사탄이 오늘날 우리도 유혹합니다. 낙하산처럼 보이는 배낭으로 우리를 미혹하며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 살아가게 합니다. 결국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떠나 결국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우리는 일생 끝나는 날까지 한발은 주님에게 다른 한발은 세상에 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드러나지 않는 삶,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치 못하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고있습니다.
2. 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왜, 2000년전의 많은 초대교회에서는 병이 고쳐지고 귀신이 쫓겨나고 박해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형제를 위하여 재산을 나누는 이런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지금도 인도네시아 같은 선교지에서는 이런 주님이 능력이 드러나는데 오늘날 우리 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교회에서는 이런 그리스도의 능력이 부분적으로만 드러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Tom Nelson이란 목사님이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4가지 잘못된 이미지를 다음과같이 소개하였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교회를 gas station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개스탱크가 바닥이 났을 때 좋은 설교를 통해서 1주일 동안 살아갈 영적개스를 공급받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교가 좋은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두번째는 사람들이 교회를 영화 상영관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시간 동안 편안 한 의자에 앉아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배란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마음의 문제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미소지면서 나올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시간 부담없이 편안히 즐기다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세번째는 교회를 drug store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픈 부분을 치료 받을 수 있는 해결책을 주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네번째는 교회를 월마트 같은 big box retailer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곳에서 모든 연령층의 모든 종류의 필요을 채워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취사 선택해서 듣고 참여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교회를 찾습니다.
나를 채워주십시요. 나를 즐겁게 해주십시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요.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주십시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교회의 이미지는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비자인 성도들의 기호에 맞추어 주어야 하는 사업처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의 모습이 베스트 딜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언제든지 좀 더 나은 딜이 있으면 교회를 떠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묘사된 교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선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잊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성도나 교회들의 모습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목사들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을 인정합니다. 목사들이 자신을 교회의 머리라고 착각할 때가 많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누구 목사교회라고 지칭할 때가 많습니다. 담임목사 세습도 목사가 교회의 주인 라는 하나의 추태일 수 있습니다. 크고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는 어깨를 펴고 다니고 숫자가 적고 그나마 성장치 못하는 교회의 목사는 어깨를 움추리고 다니는 것도 역시 교회의 머리가 목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영적지도자들부터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란 것을 삶과 사역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고 가르치고 실천하지 못했기때문에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란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보기에 그럴 듯한 교회를 찾아 헤메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교회 식구들도 문제입니다. 마치 소비자가 사업처에 대해 물건이 왜이러냐, 써비스가 왜 이러냐 교회에 대해서 불평하고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교회마다 불평이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롬 14:4 정말 예수님을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교회를 함부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교회 내의 목회자들이나 다른 지체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나의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분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머리로 모시지 않는 증거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전무하면서, 회의하는 시간에만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를 머리로 착각하는 증거일 것입니다. 회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게을리 하므로 주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죄를 짓는 일을 범치 말아야할 것입니다.
자신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세번 간구한 바울에게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응답을 받은 사도바울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약할 때 강함주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의 필요를 주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의존하므로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을 교회의 머리란 생각을 잊고 주님을 의지 하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힘으로 사역을 감당하려고합니다.
오늘날 교회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모시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머리의 역할을 하려고 하기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소원하고 기대하는 부흥은 먼저 철저히 주님이 교회의 주님되시고 머리되심을 인정함으로 시작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으로 교회의 머리시라면 우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믿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교회를 친히 다스리셔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리라는 소원을 가지고 포기하지맙시다.
또 한가지 교회의 중요한 문제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기도했다는 것은 에베소교회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주님의 영광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낸 후 몇십년 후에,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소개됩니다. 계 2: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 수준으로는 에베소 교회는 굉장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감당했고 수고하고 인내했고 악한 자들을 쫓아내고 교리적으로도 올바르게 서려고 노력했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소망을 잃지 않았지만 결국 주님께서 그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교회일이나 영적인 일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자녀들을 잘 돌보고 집안 살림 잘해주어도 남편을 사랑치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신부이기때문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게되면 아내의 소유가 남편의 소유가 되고 남편의 소유가 아내의 소유가됩니다. 교회가 주님과 연합하므로 주님의 능력이 교회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마음을 멀리할 수록 주님의 능력도 소원하게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만큼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후 11:3말씀을 읽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탄의 목적은 단 한가지입니다. 성도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뺏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멀어지면 사탄과 세상과 싸워이길 능력도 없어지게 됩니다. 연속극이나 뉴스나 스포츠를 볼 시간은 있으면서도 주님과 함께할 시간을 가질 여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아니 한 수 더떠서 스스로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오히려 오히려 주님과 주님의 사람들에게 적대자 노릇을 할 수도 있습니다.
3. 교회가운데 베푸시는 능력이 드러나려면
그래서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도록" 간구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신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동행하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신혼부부의 사랑처럼, 예수님을 미치도록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사도바울은 “그들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간구합니다.” 엡 3:17-19 예수님은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기대하시고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만유를 지배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시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사실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안목이 열려야겠습니다.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예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권이 되도록 기도하면 그 분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미치는 것이 능력입니다 비록 우리는 소수지만, 우리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로서 모인다면 우리 가운데 영적인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들, “주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다면,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요 또한 신랑이란 사실을 진실로 믿는 소수가 함께 모인다면 영적인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폭팔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소원합니다
주님,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토록 귀히 여기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보게 하소서. 주님 안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라는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진정한 필요는 주님 자신인 것을 보게 하소서 주님께 미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백성이 배고프고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떡이 없어서가 마실 물이 없어서고 아니고 주님에 대한 배고픔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생수를 생명의 떡을 맛보게 하소서.
주님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 마음을 채우소서.
주님,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볼 수 없기에 낙망에 빠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 이유를 압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교회의 주인으로 교회의 머리로 인정치 않을 때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가 입술로는 주님의 교회라고 말하지만, 실지로는 우리교회라고 부르면서 우리 스스로가 교회를 세우며 교회를 책임져야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존재할 뿐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21세기 침례교회를 생각할 때에 염려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머리이시므로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저희들은 단지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주님이 머리도심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고백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또 관계성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의 머리되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부흥이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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