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격려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0-11 12/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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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10-1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이번에 새 해를 계획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에서 우리 교회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쁨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란 말이 여러번 언급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기독교계 적으로도 또 개교회적으로도 어쩌면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어두운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에 상관없이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로서 어떻게 행복한 교회 그리고 기쁨이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제가 이번에 이 주제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살펴보니까, 수많은 교회 중에 특별히 기쁨의 교회라고 알려진 교회는 오순절때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 그리고는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된 교회" (살전 1:8)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1,2)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 지역에 속한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기쁨이 풍성한 이유가 무엇일까?
2:9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가르치심을 받아서, 10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것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더욱더 그렇게 하기를,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보통은 교회들마다 사랑하라고 가르치는데이 교회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이미 이들은 서로 사랑할 뿐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서로 세워주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씀아닙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기쁨이 넘치는 교회란 사실은 사랑이 넘치고 격려가 넘치는 교회란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 교회안에, 이민족 사회안에, 직장안에 기쁨이 있고 행복하려면 사랑과 격려가 있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가?
저는 이번 Black Friday때 휴대용 컴표터를 Walmart를 통해 하나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10일정도 기다려서 물건이 도착했다고 해서 막상 가보니까 제가 주문했던 검정색갈이 아니라 별로 맘에 안드는 어린이용 밝은 청색 blue색갈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색갈로 물건이 왔다고 일하는 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이 분이 청색갈도 보기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색갈이 그럴 듯 해보여서 가지고 왔는데 제 아내가 컴퓨터를 보자마자 이 것은 완전히 어린이 용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물건을 돌려보냈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고 나빠보이기도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경험했습니다. 엑스레이나 엠알아이등 같은 감사 결과를 놓고도 의사가 어떤 자세로 진단해 주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이 안심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사실을 앞에 놔두고 한 의사는 소망을 주고 다른 의사는 절망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날 저의 집에 파블로 형제라고 우리 교회 창립예배때부터 알게된 형제부부가 저희를 방문했습니다. 그 분이 아는 분이 췌장암에 걸렸는데 의사가 4개월 밖에는 못살겠다고 진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강에 별 문제 없어 보였고 정상적으로 살던 분이 의사의 진단을 받던 그 날부터 죽음의 공포 속에 살다가 정확하게 4개월 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파블로 형제의 말이 그 분이 차라리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훨씬 더 오래 평안히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사람의 “말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말이 독이 되기도 하고 열매가 되기도 한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잠18:21, Msg).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각지파에서 선발된 가장 똑똑한 족장 대표 12명의 스파이들이 40일간의 가나안 정탐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12명의 대표들이 똑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이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나머지 10명은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같은 땅을 같이 정탐하고 왔음에도 두가지 상반되는 다른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부정적인 말을 듣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쉽게 전염됩니다.
“이 말을 듣고 온 회중은 떠들썩하게 아우성을 쳤다. 그 날 밤새도록 통곡하며 2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에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도 더 좋았겠다. 3 야훼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리로 데려 내다가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아내와 어린것들이 적에게 붙잡혀 가게 하는가? 에집트로 돌아 가는 수밖에 없겠다!" 4 이렇게 수선을 피우며 그들은 지도자를 하나 뽑아 세우고 에집트로 돌아 가자고 서로 의논하였다.”
이들의 부정적인 말로 결국 모든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고 이 당시 20살 이상 된 사람은 다 광야에서 죽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극심한 환난과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들간에는 부정적인 말이나 불평과 원망보다는 사랑으로 충만했고 격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가? 저는 이번에 예산을 세우면서 지난 한 해동안 우리 교회식구들이 헌금한 액수가 60000불이 넘었고 지정헌금까지 합한다면 7만불이 넘는 헌금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 습니다. 우리가 장년이 20명정도 밖에 안되니까, 계산해 보니까 한 가정당 적어도 매달 500불내지 600불을 헌금하였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우리 가운데 특별한 부자가 없고 평균적으로 가난한 교우들이라고 생각되는데도 가난 가운데 이렇게 헌금하셨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헌금뿐 아니라 식사 당번만 해도 적은 부담이 아닐 것입니다 너무 자주 돌아오는 것을 압니다. 교회성도는 숫자가 적어도 있을 부서는 가 있다보니까 여러가지 책임을 말없이 감당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자 주기 위해서 드리기위해서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삶과 사역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 기뻐하세요 여러분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다면 우리의 관점과 말을 바꾸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축복을 세어보므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벌써 40년전 일인데요. 정확하게 1976년도입니다. 이 해는 제게 가장 영적으로 충만했던 기간이요 전도를 많이 했던 기간이었지만 그러나 또한 영적으로 완전히 바닥을 치는 경험을 했던 해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서 전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실수한 것은 하나님에게 서원을 했던 것입니다.
“뻐스에 올라탈 때마다 뻐스가 아주 만원이지 않으면 전도설교를 하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하던 전도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올라 타야 할 뻐스가 올 때마다 만원이기를 바랬습니다. 날이갈수록 뻐스를 타는 것이 부담이 되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전도를 포기했던 그 순간부터 영적으로 가라앉기 시작해서 하나님까지 부정하는 완전한 바닥을 경험하였습니다.
완전히 영적으로 바닥을 친가운데 매일 저를 찾아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격려를 얻고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했던말은 전혀 기억에 안남습니다. 그들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이 제게 격려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가 되는 말을 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격려”뜻의 헬라어는 ‘곁으로 오다’라는 의미입니다. “Encourage παρακαλεω to call to one's side” 아무 말을 안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은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 밖에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별로 말이 없이 함께 참여해 주시는 이런 분들로 인하여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됩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살 후 2:17) 어떻게 영원한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 요한복음 14:16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란 말은 헬라말 원어로는 파라클레토스 “called to one's side, esp. called to one's aid”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옆에 오신 분이다란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같은 말씀을 오늘 본문 말씀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서로 세워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도 격려하시지만 우리와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하시므로 격려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말로 또 함께 해 주므로 우리는 격려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 10:25)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기 위해서도 모이지만, 우리가 함께 모여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가끔 예배 인도자로서 이 자리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서로 인사하는 시간에 인사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서로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격려가 됩니다.
주일예배와 점심교제가 끝났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몇분이 계십니다. 김동근 목자님이 같이 교제를 즐겨하시는데,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는 사실에 격려를 받음 제가 아브라함 목사님께서 제가 꼭 배워야 되는 것 한 가지는 언제든지 성도들 만나는 것을 즐겨하시며 성도들이 서로 만날 자리를 주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격려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교회전체적 모임과 장막모임은 물론 그리고 정기적인 모임이 아니라도 서로 만나기를 노력하고 즐기며 격려와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란 말을 많이합니다. 신약성경의 첫번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특징은 매일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모이고 집에서도 모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매일 만나서 격려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매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보니까 또 하나의 격려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편지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제 조카애가 루키미아병으로 죽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슬픈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왔는데 편지함에 한 카드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제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든지요.
사실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서는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었지만 또한 격려를 위한 편지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사도행전 28:30)에서 연금된 상황에 있을 때 로마에서 약 1000마일정도 떨어진 골로새의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그들의 사정을 바울에게 전해주고 격려 하였습니다 (골 1:7-8) 이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두기고를 통해 편지를 보냅니다: 골 4:8 나의 모든 사정은 두기고가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함께 종이 된 사람입니다. 8 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음에 격려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care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알리고 알기를 원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몸으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편지를 통해 편지를 전달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에게 2:19 나는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곧 보내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알고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감옥이든 개인주택이던 감금되 있는 상태에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 격려하고 격려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살지만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화나 라인이나 이메일이나 교회 웹을 통하여 서로 만나고 교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지역에 살지만 출장을 가는 분 여행을 떠난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김종숙 성도님이나 림종임성도님처럼 양노원에 계신다든지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타주나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감사하게 이제는 우리가 원조교제가 가능합니다 서로 격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박사라 성도님으로부터 온 편지를 주보에 실었습니다만, 우리가 기도로 박영립성도님을 응원하고 한국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그 분들을 방문하고 또 그 분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선교사역을 감당하시느라 외국에 사시는 분들 우리 교회식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귀한 만남을 허락하셨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격려가 필요하고 우리가 이들을 통해 격려 받을 수 있습니다. R.A. 토레이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교회안에 격려의 사역이 늘어나는 것 만큼 교회는 건강해 질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서로를 세워주므로 더욱 행복해지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격려의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서로 우리의 말로, 또 서로 자주 만나기를 즐겨함으로 그리고 서로 못볼 때에라도 연락하므로 서로 격려하므로 기쁨이 넘치는 21세기 침례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격려는 어떤 인간관계를 위한 기술이나 방법이기 이전에 삶의 헌신이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 곁에 와주시는 그런 격려입니다. 그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자나 깨나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함께 하시는 그런 격려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시겠다는 격려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제 아내에게 큰 짐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아내에게 제 인생 끝나는 날까지 저와 함께 동행해주리라는 사실이 제게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요. 앞으로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살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서로 서로에게 격려하므로 서로를 세워주는 귀한 역사가 지속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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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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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격려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10-11
데살로니가 교회는 기쁨의 교회였다. (살전 1:8; 고후 8:1-2) 물론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였으며 사랑과 서로 격려하며 서로 세워주는 교회였다 (살전 2:9-10; 5:11) 우리는 어떻게 서로 격려하므로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
1.말로서 격려하라 “말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말이 독이 되기도 하고 열매가 되기도 한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잠18:21, Msg).
40일 동안 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군들이 두가지 서로 다른 보고를 하였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따라 원망하며 불평하며 하나님께 반역하므로 결국 40년 동안 방황하게 되었고 반역한 이들 모두가 광야에서 죽게되었다. 기쁨고 행복을 누리려면 관점과 말하는 것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2. 함께 함으로 격려하라 “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히 10:25)
성경에서 “격려”뜻의 헬라어는 (파라칼레오) ‘곁으로 오다’라는 의미입니다. 말도 중요하지만 함께 해주므로 우리는 격려합니다. 성령님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격려란 말과 비슷합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분입니다. 주님도 오늘 본문 말씀처럼 자나 깨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를 격려하시듯, 우리는 함께 함으로 격려합니다.
3. 통화함으로 격려하라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살전 1:1)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서는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었지만 또한 격려를 위한 편지였습니다. 우리는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라인이나 전화를 통해서 주중에도 그리고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분들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분들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