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4) 12/11/2016 >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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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4) 12/1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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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4)

3주쯤 전에 김동근 목자님과 함께 김종숙 성도님을 방문했는데, 김종숙성도님은 “나는 항상 마음이 기쁨다”란 고백을 합니다. 처음 한 고백이 아닙니다. 가끔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김종숙성도님처럼 내게 항상 기쁨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년말이 다가오면서 내년에는 우리 교회가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으면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습니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는 오늘 본문 말씀대로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항상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난 목요일 제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파킹랏에서 내려서 병원 건물로 가는데 제 아내 앞으로 어떤 젊은 아빠가 애기를 어깨에다 걸치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애기가 바로 뒤에 걸어가던 제 아내에게 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너무 행복해 하는 겁니다.  한 아기의 미소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할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도 또 그 아기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김종숙 성도님을 방문했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용기를 얻게됩니다.  양에릭목사님부부가 김종숙 성도님을 방문하면 위로하러 가셨다가 오히려 기쁨과 격려를 받고 온다고 고백합니다.  기쁨은 전염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서로 만났을 때 미소로 기쁨으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기쁨을 옮기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살다보면 힘든 일 아픈 일 슬픈 일 불행한 일 걱정되는 일 두려운 일등 온갖 종류의 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의심할까봐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한 뒤에 다시 반복해서 “기뻐하라”라고 명령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택권이 없이 기뻐하는 자, 기쁨을 옮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사도바울이 인생의 힘든 면모들을 몰라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강조해서 명령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저와 여러분들이 겪은 것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을 겪은 자입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자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28 그 밖의 것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편지를 쓸 때에도 감옥에 갖힌 상태에서 (1:7, 13,14,17) 재판을 받고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기네스 북이 있었다면 세상에서 최고로 고난 받은자 최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자 명단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한다.” 라고 고백합니다. (고후 12:10)

왜 사도바울이 온갖 말할 수 없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왜 데살로니가 교회가 극심한 핍박과 가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었는가, 왜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주 안에서”란 조건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방법은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란 무슨 뜻인가?  간단한 질문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삶을 보면서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도 바울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그리스도가 주인됨의 우선권을 지키라.  여러분들이 직접 아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가장 기뻐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이 기쁘게 사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종숙 성도님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죽을 고비를 적어도 3번넘긴 분이십니다  지금 계신 양노원에 7년이 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병원입원과 다른 양노원 그리고 집에 계실 때도 혼자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몸도 많이 불편하고 식사하는 것도 불편하고 아직도 목에 구멍을 뚫어 호수로 산소를 공급해야만 정상적으로 숨쉬며 사실 수 있습니다.  김종숙 성도님이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바울의 표현을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하리라”라는 고백이 김종숙 성도님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하리라”란 고백이 있으면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신 더 좋다 (far better)”라고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사는 것이 내 사업이요 내 자녀요 내 남편이요 아내요, 내 명예요 건강이요 내 재산이요 등등으로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모든 것들은 잠시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고 중요하기도 하지만 환경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 결코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고 결코 지속되는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도 교회가 부흥이 안되고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때문에 기쁨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 숫자가 늘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 많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교회부흥이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내게 사는 것은 예수님이시다 말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부흥도 없고 진정한 의미의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소수가 모이더라도 성도들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를 고백할 수 있다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중에 72명의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냈습니다.  누가복음 12:17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보고하기를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였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기쁨의 분명한 우선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으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있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기 보다 오히려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할 수 있는 사건들이 우리의 기쁨을 좌우한다면 우리는 결코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구원받은 것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보장된 것이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가 부흥하도록 기도하고 애쓰며 믿음으로 전진해야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과 기쁨은 내가 구원 받은 것으로 인해서 기뻐할 줄 아는 마음, “주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하는 마음, “내게 사는 것이 예수님이다” 라고 고백하는 마음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고백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삶의 모든 것으로 여기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가 (주로 또 가장 귀한 친구)로 내 안에 거하시게 하라: 두번째로, 주 안에라는 말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신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친구로서 여기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빌립보서 3:8 그리스도란 가장 귀한 친구를 얻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잃었고 오물처럼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내 것으로 소유하게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새로운 것을 소유하게될 때 기쁨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물들은 얼마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거나 고장나서 버립니다. 

물론 모든 선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제 세교회 식구들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축하모임을 가졌는데 각 테이블에 앉은 사람끼리 가장 좋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지 조건은 구원이라든지 예수님이라든지 영생이라든지 배우자라든지  기독교인들이 흔히 나누는 것은 예외로 대답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하얀 색갈의 말, 백마를 선물로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른 분은 손자를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분은 온 식구들이 구원얻도록 신실하게 기도하시던 할머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앞으로 받게 될 고급 차라고 말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3년 전에 저의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목사로 섬기도록 신뢰하고 기회를 준 선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선물은 받을 당시도 기뻤지만 선물을 생각할 때 마다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선물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란 선물이 특별히 귀합니다.  오래 살면 살수록 아내를 알아감에 따라 더욱 감사하게 되고 더욱 기뻐하게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지어 아내보다도 더 귀한 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분은 나를 위해 죽으셔서 자나 깨나 나와 함께 하시며 영원토록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주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감사하라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선물의 가치에 따라서 어떤 것은 몇 주 못가서 버리고 어떤 것은 멸 달 몇년 어떤 것은 죽을 때가지 사용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구세주로 영접하므로 받게된 구원은 죽음 이 후까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4)는 명령은 단지 우리가 받은 구원이 단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 되시고 구원주되신 예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되 나를 가장 사랑하는 가장 친한 친구로서 내 안에 거하실 그 분을 생각하며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선물을 항상 생각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원한 친구 가장 친한 친구되신 주님으로 인해 기쁨이 있습니까?  내가 소유한 재물보다, 명예보다, 직장보다, 심지어 아내나 자식이나 손자보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더 기쁨이 있습니까?  제 질문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재물이나 명예나 직장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손자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3:7)

이런 좋은 것들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의 우선권이 방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의 적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가족식구들의 일, 이웃을 돕는 일, 교회활동, 교회부흥을 추구하는 것, 다 필요하지만 이런 것들까지도 주님께 물어보면서 하지 않으면 주님에 대한 분명한 우선권이 없으면 주님께 영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8  이 모든 것 안에는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바울이 과거 예수를 처음 믿게 되었을 때의 간증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바울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합니까?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빕니다.  16 그 분의 풍성한 영광으로, 그분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엡 3;14, 16-17)

주님께서도.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또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집안 한구석에 모시고 감사치도 않고 기억조차 못하는 선물처럼 예수님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사이에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기가 너무 쉽습니다.  정말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겠다는 각오가 있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주로 그리고 가장 귀하고 친한 친구로 모신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고전 2:2) 직장을 잃어도 건강을 잃어도 재산을 잃어도 명예를 잃어도 오히려 감사하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은 예수님에게만 참 소망을 두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감의 최 우선권을 지키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혹시 제 설교를 들으면서 기쁨보다는 좌절감을 느끼시는 분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또 현실성이 없는 이론적인 설교로 듣는 분은 안계십니까?  더군다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면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한테 너무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한 것을 제가 관찰하고 이해한 대로 밖에 말씀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자신의 간증만 한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빌 3:17) 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하게까지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무릎 꿇고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도록 기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다음의 기도내용이 진짜로 중요합니다.  (앱엡 3:17-20)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요 가장 친한 친구로 거하게 하는 삶은 의무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때문이란 사실입니다. 이런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KJV는 passion이라고 표현합니다. “3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KJV after his passion) 십자가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한 정렬 혹은 열정이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열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렬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그 분이 뜨거운 사랑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처럼 뜨거운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출 31:14)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시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질투란 말은 어떤 영어성경은 “God is passionate about His relationship with you." (NLT)  하나님은 정렬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는다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기를 원치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려면 예수님의 지식을 초월한 사랑을 알아가는 것을 병행해야합니다.  우리가 주인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주님을 더욱 더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빌 3:8)

사람은 알면 알수록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면 알수록 더욱 귀하고 보배로운 예수님의 사랑의 면모를 알게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 한다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시간이 가면서 더욱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알게되면서 자연스럽게 더욱 더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당장 죽어서 주님 곁에 있는 것이 훨씬 떠 좋지만 살아남기로 결정한 이유를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립보서 1:25).  믿음의 진보와 기쁨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성장이 첫번 째 우선권이 아니고 두번 째도 아니며 아마 시간이 정 남으면 한번 해볼까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쁨도 없습니다.  주 안에 기쁨이 있는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 안에서의 기쁨의 삶을 원하시면 예수님을 알아가는 데 우선권을 두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다 머리 수그리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의 질문에 스스로에게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다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닙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었고, 중요한 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그들의 생각이 멀리 떠나, 그리스도께 드려야할  진실되고 순전한 헌신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한다”고 고백합니다. (고후 11:3) 우리가  영적 전쟁을 인식치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간사한 마귀의 꾀에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저와 여러분에게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빌 3:17) 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단지 우리의 기쁜 감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쁨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것을 알므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진정한 주님으로 모시며 예수님을 최 우선권에 두겠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귀하고 가까운 친구로 여기고 그 분과의 교제를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면 세상이 주는 기쁨을 포기할 마음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을 최우선권에 두며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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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4)

1. “주 안에서”  그리스도가 주인됨의 우선권을 지키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하리라” (빌 1:21)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보고하기를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였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눅 12:17, 20)

2. “주안에서“란 또한 “주가 내안에”란 뜻이다. 그리스도가 (주로 또 가장 귀한 친구)로 내 안에 거하심의 우선권을 지키라: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빌립보서 3:8-9

 "그러므로 나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빕니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엡 3;14, 17)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

3. 그리스도를 알아감의 최 우선권을 지키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빌 3:8)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빌 3:17)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엡 3:17-19)

"나는 여러분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립보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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