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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관용하라" 빌립보서 4:4-5 12/18/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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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관용하라"  빌립보서 4:4-5  12/18/2016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지난 주 주일 설교제목을 기억하시나요?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어떻게 지난 1주일동안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셨나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지난 한 주간만 해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많은지...특별히 노목자님 bone scan 결과가 암이 전이된 것이 아니란 판정을 받고 노목자님댁에 모여서 함께 감사와 찬양과 기쁨을 나누었던 시간 그리고 수요일에 목사들부부와 목자들 부부 함께 모여 감사와 기도로 함께 하며 누렸던 기쁨.  그리고 그제 저녁에는 이웃에 있는 어떤  교회 목사님 가정에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모인 분들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한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주님께서 만이 주시는 수 많은 감사의 조건과 기쁨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일이 있던 없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흥분되어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들의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그 사랑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숨쉬는 것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 풀 한포기, 좋은 날씨 궂은 날씨...매사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행복한 일은 물론 고난이나 사고나 죽음까지라도 (매사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줄 믿고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주 안에서의 특권이요 기쁨인줄압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바로 그 다음 절에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관용은 주안에서 구원받고 기뻐하는 자가 갖게 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마땅한 마음 자세인 줄 압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기쁨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관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4:2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3 그리고 나의 진실한 동역자인 그대에게도 부탁합니다. 이 여인들을 도와 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그 밖의 나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힘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던 헌신된 자매님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매님들이지요.  그러나, 이들간의 심한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00마일쯤 떨어져 있는 바울의 귀에 까지 들리게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웬만한 다툼같으면 이름까지도 거론을 안할텐 바울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의 다툼이 교회전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다툼과 분열의 문제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것은 관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관용이 없으면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없고 타툼과 분란이 생기고 주 안에서 기쁨도 빼앗아 버리게됩니다.

사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염두에 두고 빌립보서 2장에 이미 다음과 같이 말했었습니다.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빌 2:2)  우리교회도 빌립보 교회와 똑 같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이미 함께하고 있는 우리들이 한마음을 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무리이지만 우리가 한 마음이 될 때 우리의 (구원의) 기쁨이 더욱 넘쳐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한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관용하므로 기쁨으로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관용이란 말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나 흠이나 약점이 있는 사람을 관대하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또, 내 생각과 틀릴 때, 나와 잘 맞지 않는 면이 있을 때, 나의 마음에 안들 때에레라도 이해하고 품어주고 받아 주는 것을 관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각각 배경과 사고방식과 습관이 각각 다른 사람의 모임이기에 쉽게 흠이나, 약점이 드러나고 여러가지 오해와 갈등과 교만등 서로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 드러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친절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성경은 명령합니다. (엡 4:32) 친절, 불쌍히 여김, 용서 이런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 귀신들린 자, 과부, 배고픈자들, 가난한 자들, 목자 없이 헤메는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문제 있는 자들을 탓하거나 방치 하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여기는 것 이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관용입니다.

성격이 까다로와서 교인들에 대한 불평이 많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 사모님은 단 한번도 교인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그 목사님이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흉이나 원망하는 일을 하지 않소? 싫은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까?"  그러자 사모님이 대답했습니다. " 왜 저라고 없겠어요 하지만 싫은 사람이 있거나 상처를 준 사람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그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목사님이 어느날 외출을 나갔다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는데, 사모님이 안방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문틈에 귀를 대고 무슨 기도를 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그 아내의 기도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 제 남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 중에 누구도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다른 사람들의 관용이 필요로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관용이 필요하고 여러분도 저의 관용이 필요하고 서로 서로에게 관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관용을 일부 사람에게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사람이 관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친절치 못하고, 감사치 못하고, 교만한 사람들 심지어는 억울하게 구는 사람에게도  관용하라는 말씀입니다.

한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직장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급자가 권하는 술을 계속 거절하다가 화가난 직장 상급자에게 뺨을 맞게 되었습니다.  자식도 있고 나이든 사람으로서 여러 사람 앞에서 뺨을 맞고 자존심도 상하고 너무 억울했습니다.  집에 와서 며칠 동안 회사도 무단 결근 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사직계를 내기 전에 산으로 올라가 기도를 드립니다.  뺨 맞은 사실에 대한 억울함과 막상 직장을 그만두면 먹고 사는 문제가 막막한 두려움 가운데 열심히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합니다. “너는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으로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 하느냐? 나는 모든 이에게 멸시천대와 고난을 받았고,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다..”  침뱉음을 당하고, 저주와 욕설, 살을 찌는 채찍으로 맞으시면서, 아무런 자존심도, 혈기도, 변명도 없이 묵묵히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오르셨던  우리 예수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조롱하던 그 무리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음성이 아닙니까? 뺨 한대 맞은 것을 어찌 고난이라고 분노하고 직장까지 그만두려 했을까요?

그 집사님은 그 신비한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동안 회사에서는 일이 벌어져 그 상급자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해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회사에서 처리했던 일들이 문제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는 이집사님의 뺨을 때린 사건도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자신의 뺨을 때린 그 분을 두둔하며, 그 분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이집사님이 적극 나서서 그 분을 도우니, 결국 회사에서도 내리려던 징계를 취소했습니다.  이 상급자는 이집사님의 이해하지 못할 관용과 사랑에 감동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 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직장선교회의 한 지부의 지도자가 되어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관용하자는 것은 단지 우리의 행복한 감정이나 기쁨을 추구하기 위한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 커녕, 교회가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교회내의 파벌과 분열을 낳고 세상의 웃음거리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어떻게?)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 1:27-28)
 *한 마음으로 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수 없고,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할 수도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그리고 구원의 증거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 아닙니까?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삭막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견해에 따라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싸우는 시대처럼 보입니다. 정치가들 간에 그리고 국민들 간의 관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기의 견해와 다르면 다 원수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세상을 향해서 싸우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고 교회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의 눈에 한국교회가 자기들보다 더 많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이 세상의 빛의 역할하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만이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적어도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의 교회로 알려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서로에게 관용한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사도바울은 우리가 관용해야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주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말씀은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경고하는 것이요 빌립보 성도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요 또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분명,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도,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의 이름도,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도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판을 받게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네 형제나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10) 

야고보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 약2:12-13)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마 7:1-2).

지금 다 믿는 우리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우리가 받을 심판이 어떨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만달란트 빚진 종 이있었습니다. 한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가 20년동안 매일 일해야 얻게되는 급료  왕으로부터 20만년의 노동자 급료를 탕감받은 것입니다. 1년데 노동장 급료를 3만불이라고 계산하면 600억불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그러나 왕이 이 종을 불쌍히 여기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나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다구칩니다  한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하루 품삯 100불로 계산하면 만불에 해당합니다.  동료가 좀 참아달라고 빚을 다 갚겠다고 그래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왕으로부터 20만년의 노동자 급료를 탕감받은 자가 100일치 노동자 급료를 빚진자를 탕감해주지 않고 감옥게 가둔 것입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그 종을 다시 부릅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그리고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넘겨 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형제나 자매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 이야기의 탕감받은 종이 바로 “내 눈속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실.  내가 얼마나 자주 600억불을 탕감받은 자란 사실을 잊고 1만불의 죄를 진 남을 용서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께서 우리의 말과 삶을 지켜보시며 다른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그 분 앞에 서서 답변을 해야합니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구원을 믿으신다면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치루신 댓가를 믿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면 관용해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심판도 믿어야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관용”입니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란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리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라란 말씀입니다.  이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러나 또한 특권이기도합니다.

주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은 네가 직접 심판하려고 하지 말고 곧 오실 주님께 심판을 맡기란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롬 12:19 )  또한 심판의 날까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재림 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세대에 오시지 않더라도 곧 우리가 그 분에게 갈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 날이 길지 않으므로 우리는 주 앞에서 심판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신차리고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 기준을 따라 남을 판단 하면서 심판자 노릇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심판자가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이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약 5:7-9).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가 내일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치 못할 대상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내일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는 기간도 제한 되어 있고 주님의 관용을 사람들에게 베풀 날도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날이 점 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리라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의지로 관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용이 성령님의 열매인줄 알고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해야합니다.

어떤 영어성경은 관용이란 말을 graciousness로 표현했습니다. 은혜스로움이란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은혜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스러움을 드러내야합니다. 내가 600억불의 탕감을 받은 은혜를 받은 자란 사실을 안다면, 1만불 빚진 사람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600억불의 은혜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1만불 빚진 사람을 너그럽게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문제가 상대방이 아닙니다. 나입니다.  상대방의 눈에 티가 문제가 아니라 내 눈의 들보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해야합니다.

서로 관용하는 삶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일 뿐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삶이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의미합니다.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죄하며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삶도 화평의 삶도 은혜의 삶도 기쁨의 삶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말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을 먼저 앞세우며
서로에게 관용하므로 기쁨이 충만한 교회 그리고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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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항상 주 안에서 관용하라”  (빌립보서 4:4-5)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1. 1.관용이 필요한 이유: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빌 4: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빌 2:2)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한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관용하므로 기쁨으로 넘치는 교회가됩시다.

2.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빌 4:5)  “서로 친절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성경은 명령합니다. (엡 4:32)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 1:27-28)

3.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빌 4:5)
“어찌하여 네 형제나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10)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 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약2:12-1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마 7:1-2).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이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약 5:7-9).

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빌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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