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고 간구하라 (빌립보서 4:6,7) 1/2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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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께서 어떤 권사님 댁에 심방하셨습니다. 권사님에게 기도제목이 없느냐고 물어보셨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께서 조금 머뭇거리시면서, 말씀 합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사위가 젊어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딸이 오랫동안 혼자 살았는데 이제 새롭게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는데, 좋은 남편감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조건을 가진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합니다.
첫째는, 초혼이면 좋겠지만, 재혼일 경우, 이혼한 남자는 절대 안되고 사별한 남자여야 하는 것,
둘째는, 자식이 없으면 좋지만, 자식이 있을 경우 부모와 떨어져 따로 살면 좋겠다
셋째는, 안정된 직업과 집은 꼭 있어야 한다는 조건 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고민을 하셨다고합니다. 그리고 그 권사님에게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 드렸다고 합니다. 권사님! 무슨 뜻인 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기도를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권사님의 기도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한 가정을 깨뜨려야 합니다. 아버지와 자식간의 연이 있는데, 그 것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습니까?
어머니로서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기도아닙니까? 우리들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이 권사님정도는 아니더라도 결국 나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고작 우리들의 간구는 아닌지요? 제가 주보에 사도바울의 간구내용들을 실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기도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제 기도와 사도바울의 기도가 너무 다른 것을 발견하고, 기도할 때마다 먼저 사도바울의 이 기도를 몇 구절씩 읽으면서 사도바울의 기도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간구 내용을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간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리는 간구와 사도바울의 간구가 이토록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대답이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기도와 간구"란 말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지 간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도와 간구”란 표현이 32번 나옵니다. 이 중에 단 한번만 빼놓고는 항상 간구와 기도가 아니라 기도와 간구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와 간구라는 표현의 순서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보통 간구와 동일한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지만, 그러나 좀 더 정확히 구분한다면 기도는 간구에 앞서 회개 찬양 감사 등을 포함합니다. 내 사정과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기 전에 먼저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주 설교중에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내 요구나 부탁을 하기 전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하여 음정을 맞추는 시간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7) 간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는 자가 간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처럼, 염려하는 문제들을 위해 간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간구는 근심을 위한 처방약 정도가 아닙니다. 마치 당뇨에는 뭐가 좋다더라하는 식으로, 근심이 있으면 한번 간구 해보라라고 바울이 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수단정도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란 말씀은, 우리가 근심이 있으면 먼저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보아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지, 그 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고 있는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하는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우선권을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게 맞추려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막상 걱정거리가 생기면 결국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존하려고합니다. 물론 우리가 노력해서 해결해야될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당면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염려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13:22)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문제에 처하게 될 때에 걱정거리가 생기게될 때에 먼저 전지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먼저 진정으로 물어보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한 것을 간구하기 전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결국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란 고백이 있는지, 과연 예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신지, 내가 이방인처럼 세상의 것을 구하는 삶을 사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사는지 살펴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가 하나님 자신을 구하고 하나님의 의견을 구하며 하나님과 기도자인 나사이를 조율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간구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나 우리 신앙생활에서 기도와 간구는 구분이 안되고 같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구분하자면 기도 속에는 찬양, 고백, 감사를 통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조율하는 시간도 있지만, 간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구는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면서 간구입니다. 그러나 구하되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구를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구하는 기도가 이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먹을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원해 달라고"간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말라는 말은, 걱정하는 대신에 간구하라는 뜻입니다. 걱정하지 않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대신 간구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나의 걱정을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기도로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므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존하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간구를 가르치실 때 “무엇이든지 구하라”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요 14:12,13; 15:7,16; 16:23)
무엇을 먹고 입을까?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지? 노후대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병에서 어떻게 나음 받을까? 시시콜콜한 문제와 고민을 다 간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지 간구하라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로또복권을 매번 삽니다. 그러나 한 번도 당첨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는 설교를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등에 당첨되면 십일조는 물론 교회 건축헌금도 하겠다며 기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더 기도해야 될까요.” 이 질문을 받은 목사님의 대답은 기도하지 말라였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런 것은 간구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켜 주신 기도의 우선권이 중요합니다.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란 기도를 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을 믿기 때문에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결국 내게 복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같은 뜻으로 말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또 주님께서도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항상 조건이 따릅니다. 14:12-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의 이름과 뜻에 합당하게..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요 15:7)
실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이 것 저것 간구할 수 있지만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이 없으면 진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할지 조차 사실 모릅니다. 복권당첨되면 금방 행복해 지는 삶을 살것같지만 우리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서 가정이 파괴되고 오히려 그전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습니까?
우리가 간구하는대로 다 들어주셨으면 난리 큰일남, 그것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숙제하기 싫다고 학교가기 싫다고 먹고싶지 않다고 혹은 먹고싶다고 놀고싶다고 원하는대로 다 들어주면 어린아이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화가나시면 간구하시는대로 다 들어주신다.”
그런데 정말 비극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간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자기 욕심을 따라 기도하는 기복신앙도 문제지만,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을 비난하면서 스스로는 간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위선자요 교만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무엇이든 간구하라는 말씀은 (요 14, 15,16)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수시간 전에 남기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담대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구할 수”있는 특권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셔야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간구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이 놀라운 특권을 무시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사명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또 간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2-14)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간구하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우리가 지속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15:7-8) 우리가 간구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간구의 특권과 우리를 통해서 계속 이루시고저 하는 주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영광도 추구하지 않는 무책임한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계속 감당하는 사명자로서의 삶,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자로서의 삶은 간구하는 삶과 기도응답의 삶 그 결과로 열매맺는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시고 기도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본인이 있는데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어색하지만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상민 성도님을 존경하는 줄 압니다. 이제 올해 만 60이 되시는데 대부분 60대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편히 건강하게 남은 삶을 보낼가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조상민 성도님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분의 고민은 이 곳에서의 학업을 끝내면 남미로 가서 주님을 섬길까 동남아로 갈까 아프리카로 갈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년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과 그리고 교회를 떠나 홀로 이 곳에서 선교사역을 준비하는 과정 이런 열정과 에너지를 누가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사랑때문이 아닙니까? 이 분에게 특별한 점이 무엇입니까? 이분이 일반 성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도로 밖에는 그 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로 밖에는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7년동안 100명 이상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실
우리가 수년혹은 10년 이상 교제를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
문제가 있었어도 다시 교제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 서로 용서하고 서로의 관계성이 뜨거워 지기를 소원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 기도와 간구의 결과요 기도의 응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도 간구하는 삶 기도응답을 받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사명자로서 그리고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자로서 사명자로서의 삶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것은 간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간구하지 않으므로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약 4: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간청함으로 그 소원을 이루었던 과부와 재판장 비유를 말씀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밤낮 부르짓으라는 말씀입니다.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당장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비유를 이렇게 종결짓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대부분의 사람은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간구할 것을 포기한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간구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라고 말했던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의 일기를 어떤 분이 조사해 보니까 일생동안 그분은 5만번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그 분의 일기 중에 한편을 소개합니다.
"1844년 11월, 나는 다섯 사람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아플 때든 건강할 때든,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18개월이 지나자, 처음으로 한 사람이 회심했다. 하나님께 감사한 뒤, 남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5년 후 두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6년이 지나자 세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 후 나머지 두 사람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 후 한 시간이나 당일 내로 수만 번이나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런 내가 두 사람의 회심을 위해 36년 가까이 날마다 기도했건만 그들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바라고 계속 기도하며 여전히 응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회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남은 두명 중에 한사람은 죠지뮬러의 장례식장에서 회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죠지뮬러가 죽은 뒤에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기도란 응답 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이다.”라고조지 뮬러가 말했습니다.
염려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 염려대신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염려를 넘어 사명자로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며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고 간구합시다..
올해 우리가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16:24 )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 원인 중의 하나는 기도응답의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올 해는 우리가 많은 간구로 많은 응답을 받는 기도응답의 간증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예배자의 삶과 사명자로서의 삶을 감당하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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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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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고 간구하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우리는 anything 다시 말하면 온갖 것으로 (별라 별것으로 다) 염려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쁨을 가장 방해되는 요소는 염려, 두려움,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기쁨의 삶을 누리고 경험 하려면 우리는 염려를 극복하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 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간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는 자가 간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조율된 상태에서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간구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초점이 아니라 하나님자신이 우리의 초점이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 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 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2-14)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간구하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우리가 지속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것이 사명자로서의 삶입니 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것이 예배자로서의 삶입니다 (요15:7-8)
주님의 사역을 계속 감당하는 사명자로서의 삶, 하나님께 영광돌리 는 예배자로서의 삶은 간구하는 삶과 기도응답의 삶 그 결과로 열매 맺는 삶입니다. 우리가 간구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간구의 특권과 우리를 통해 서 계속 이루시고저 하는 주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영광도 추구하지 않는 무책임한 삶일 것입니다.